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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멜과 테리, '나'와 로라는 가볍게 진토닉을 마시며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그들은 두 쌍의 부부이며, 재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상대에 대해 폭력적이며, 자기 자신조차 주체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사랑인가. 테리의 전남편에 대해 테리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멜은 부정한다. 그들은 조금씩 술을 들이키며 말한다. 술이 한 모금씩 넘어갈수록 감정의 선이 흔들리며. 어쩌면 그들 사이에 어른거리던 '사이'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드러난다.
그들은 가신에 대해 말한다. 옛날 기사의 사랑.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채 여인의 스카프를 지니고 다니는 가신. 어느 들판에서 죽어가는 다른 기사를, 자신의 사랑을 위한다는 이유로 맹세를 하며 죽이는 것. 그 사랑은?
멜은, 가볍게 로라에게 사랑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여러 현실적인 상황이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한다. 그들은 한 잔씩 마시며 한 모금씩 토해낸다.
의사인 멜은, 병원에 입원한 노부부에 대해 말한다. 두 노부부는 깁스로 온몸을 싸맨 채인데, 할아버지가 죽어가던 이유는 할머니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있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점점 쇠약해가는.
멜은 전처를 죽이고 싶어, 양봉업자로 변장할까 생각했다는 고백도 한다. 전처는 벌 알레르기가 있다. 하지만 한때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것은 진실인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인간적인 소음', 사랑에 대한 소문들로 넷 사이는 무성하다.
이 단편 소설집은 쇠락의 풍경집이라 할 만하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쇠락의 풍경. 첫 작품, <춤 좀 추지 그래?>는 어떤 쇠락한 풍경을 말로 그리려 했으나 실패한 젊은이들 이야기다. 이 단편집이 시도하는 바를 직접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모든 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속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고, 그녀는 그걸 말로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다음 작품, <뷰파인더>. 팔이 없는 사진 찍는 남자의 방문으로 인해 쇠락을 깨닫는 한 지점을 그리고 있다.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쇠락의 한 지점. 그래프를 그린다면 정점, 떨어지기 직전의 그 한 점.
그 다음 작품 <미스터 커피와 수리공 양반>이나 <정자> 역시 파국의 상태, 혹은 파국을 깨닫게 되는, 더는 어찌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인물들을 그린다. 그들은 어떻게 할 줄 모르지만 계속 행동해야 하고 계속 어긋나고 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서 어긋나는 대로, 그대로를 그린다.
<봉지>-아버지와 딸이 공항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그들은 아버지의 외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는 딸의 아이들을 위해 봉지에 먹을 것(?)을 준비해왔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아버지도 반복적으로 그 봉지에 대해 말하지만, 그 봉지는 버려지고 만다.
<정자>-모텔에서 일하는 두 남녀. 남자가 외도를 하게 되고 여자는 끝없이 그 일을 상기하며 알콜릭이 되어간다. 남자는 이제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거기 빠져있다.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아이가 있는, 한때 놀았던 두 남자가 가족 파티를 벗어나 여자들을 꼬시고 그녀들과 잔다.
<청바지 다음에>-아내는 아프다. 우리는 빙고 게임에 가고 게임은 잘 되지 않는다. 그들 자리에 있던, 불량스러운 남녀는 돈도 내지 않고 게임을 해서 상금을 챙긴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불행은 그들이 아니라 아내와 나에게 있다. 나는 다음 불행이 그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남편과 친구들이 낚시를 갔다가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며칠간 방치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나는 그 말이 진짜라고 믿지만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일어난 강간살인을 생각하고 남편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꾸 어긋나고, 그리고 섹스한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 세번째 이유>-어린 시절 동네에 살던 아버지의 동료 더미는 베스라는 물고기를 자신의 집 연못에 큰돈을 주고 들여온다. 더미는 그 일이 너무도 중요하다. 베스는 아버지가 소개한 물고기다. 더미는 아버지와 내가 낚시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여긴다. 아버지 역시 어느 정도 욕심으로 더미를 이용한 것 같다. 어느 날 홍수가 나며 물고기떼는 난리가 난다. 더미는 상심한다. 더미의 아내가 외도한다. 더미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물속에 빠져 죽는다. 그 이후 아버지는 이상해진다. 이것은 첫번째 이유가 아니다. 세번째 이유다.
<심각한 이야기>-버트와 베라는 이혼했다. 버트는 가끔 베라를 찾아온다. 그는 이해하고 싶고 배려하고 싶지만 결국 이상한 행동을 하고 베라는 이를 참을 수가 없다.
<고요>-이발소에 있던 사람. 나는 머리를 깎던 중. 그들이 사슴 사냥 이야기를 나누다 두 명이 다툰다. 싸움은 일어나지 않고 둘이 차례로 나간다. 나머지 손님도 나간다. 나도 나가야 할 것만 같고 이발사도 이를 묻는다.
<대중 역학>-남자는 떠날 채비 중이다. 남자는 아가를 마지막으로 데려가려 한다. 여자는 못 가져가게 한다. '하지만 그는 놓지 않으려 했다. 그는 아기가 자기 손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다시 아주 세게 잡아당겼다./그런 식으로 문제는 결정되었다.'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모든 것>-젊은 두 남녀. 한때 사랑했고 아가가 있다. 남자가 오랜 친구와 사냥을 나가려는데 아가가 운다. 그런데도 남자는 나가려고 한다. 여자는 점점 남자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결국 옷을 벗고 다시 눕는다. 이것은 속이야기다. 겉이야기는 두 남녀가 이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것은 변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한 마디 더>-소설 끝으로서 아주 좋다. L.D.는 아내와 딸과 잘 지내려고 와서는 결국 다시 그들을 비난한다. 이곳은 정신병원이야, 말한다. 아내와 딸은 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L.D.는 면도용품 가방 등으로 여행용 가방에 채울 수 있는 것을 잔뜩 채워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만 더'하고 싶다. 그 말이 무언지 그는 모른다.
내가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리해보니 더욱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에 뻗어있다. 앞에서 말한 극지점이다. 그 극지점에서 어긋나는 사람들.
2012년
1월 13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