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처음 듣는 일도 아니다.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관대해지잔 말이고, 반대로 관대해지지 말자는 말이다. 관대해지잔 말은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므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법이니 그 자체로 조직 전체를 불신하거나 존재의미를 폄훼하지는 말잔 말이다. 일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니 관대해지지 말아야 한다.
'조직의 논리'란 것이 있다. 우리는 조직에 비해 개인을, 논리에 비해 감성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다른 말로 인정주의라고도 한다. 대체로 '조직의 논리'란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접하게 되는 대개의 조직이란 가족, 학교, 직장 같은 집단이다.
선택 불가능하거나 겉으로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듯 보이나 실제론 선택할 수 없는 조직일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대개 상대적으로 개인은 약자이고, 조직은 강자이므로 '조직의 논리'란 강압으로 먼저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와 같은 조직의 논리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자가 자본가나 정부에 비해 약자이므로 우리는 오랜 세월 투쟁해가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단순한 계급적 입장만 취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노동자조합총연맹이란 조직을 만들고 그 앞에 '민주'란 말을 붙였다.
'민주'란 말을 붙인 까닭은 이전과는 다른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상명하복이 아닌 노동조합,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노동조합, 탈정치적인 조합주의가 아닌 정치적인 노동자의 조직,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는 노동조합, 그것이 이 조직의 논리였다.
조직의 논리가 늘 합리적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인정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냉정해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조직의 논리가 관철되지 못했다. 자체조사를 실시하고, 회의를 몇 차례나 하는 과정이 내부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의 시선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사회라는 더 큰 조직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조직 내부의 성차별 문제나 여성에 대한 성적 희롱, 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조직이 조직으로서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명분이나 정당성의 문제라고 한다면 민주노총은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
좀더 자세한 내용이 알려져야만 명확해지겠으나 민주노총이 이 지점에서 '시간끌기'를 했던 것은 분명히 자충수로 보인다. 조직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없다면, 혹은 잘못된 생각을 합리적 선택으로 오인한다면 조직은 이미 조직의 논리를 잃게 된다. 조직의 논리를 잃은 조직은 조직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민주'노총! 민주에 방점이 찍히지 않는 민주노총의 존재 의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이 지점에서 민주노총은 이미 전과가 있다.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어떤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진보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주었다. 지금 무엇을,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지 출발점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