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연구계획서>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의 하위문화
- 억압된 문화실천의 생산과 수용을 중심으로



바람구두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그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 - F. 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

연구문제를 선정하게 된 사회 ․ 문화적 배경과 의의

책의 운명 : 역사의 변동기에 태어난 한 권의 책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운명을 겪는가?

『해방전후사의 인식』 초판이 발간된 것은 1979년 10월 15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란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고 우리들 독자들에게도 독서가 한가로움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바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고, 1980년 3월 20일에는 이미 제3판이 발행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교적 이 책을 늦게 만나본 셈이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책을 확인해보니 이 ‘2판’이었다. 그 판수가 어떻든 열심히 읽었다. 밑줄을 그어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연일 계속되는 토론이 캠퍼스를 매우고 있을 때, 이 이야기들은 그저 책 속에 누워 있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원 주최의 한 심야 토론회는 바로 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기도 했다. - 김광식(1986), 「살아움직이는 책들」, 『우리시대 출판운동과 오늘의 사상신서』, 100~101쪽

책의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2004년 초가을이었다. 그 무렵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은 젊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불이 나거나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 번씩 한다”며 “그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 득세하는 역사”를 비판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접했다. 대통령은 이미 우리 현대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는 식으로 평가한 바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정치권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여러 법안이 구체화되고 있었는데,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을 이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몇몇 지인들에게 뜻을 물었고 세 분이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편집진이 구성되었다.
우리는 정책결정권자들이 그런 역사 인식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1979년에 출간되기 시작해 현대사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 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 엮음(2006), 『해방전후사의 재인식1』, 11~12쪽


얼마 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006)이 출간되면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의 의식세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한 권의 책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우리 역사는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인 시각에서 서술되어왔다. 1979년 첫 권이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전6권)은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를 대변하는 책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을 민중사관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지적 기원을 이룬 책으로 평가받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1987년 6월 항쟁 20년이 다가오는 시점인 오늘날 다른 한 측면에서는 민족주의, 좌편향적인 역사서술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광식(1986)이 『해방전후사의 인식』라는 한 권의 책에 대해 20년 전에 던진 질문, “역사의 변동기에 태어난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운명을 겪는가”라는 물음은 20년 세월을 거슬러 2006년 오늘 우리에게 되돌아온 질문이 되었다.

미셸 드 세로토는 “신문이든 프루스트(Marcel Proust)든 텍스트는 독자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한 권의 텍스트가 지닌 의미 역시 독자를 통해서 생성된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책 읽기’라는 특정한 문화실천 행위는 특정한 시공간과 문화적 태도에 따라 변화한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의미가 생산되고 메시지가 기호화되는 의미 구조와 수용자에 의해 해독되는 의미 구조가 결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 홀의 지적은 텍스트를 생산하는 자로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텍스트를 생산하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미를 형성하고 그것을 구성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놓여 있는 각각의 맥락과 환경 안에서 해당 텍스트를 해석한다. 텍스트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그 자신의 해석을 통해 의미를 재구성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텍스트의 의미는 생산자의 의미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수용 과정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텍스트를 둘러싼 관계들 간의 투쟁과 타협의 소산이며 주체는 담론의 투쟁을 통해 형성된다.

청년문화 :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의 하위문화
본 연구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1980년대의 청년지식인들은 이른바 민주화세대로, 일반적으로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구자에 따라 1970년대 유신독재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 함께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19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을 지칭한다. 1987년 6월 항쟁과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급격히 변화시켰다. 분단 이후 한국전쟁을 통해 형성된 50년 체제, 5.16 군사쿠데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 각 부문에서 형성되었던 권위주의 개발독재 체제는 반공이데올로기를 통치 기반으로 삼았다. 198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복권되는 중요한 반전을 가져왔고, 이후 권위주의 체제는 급격히 해체(최근엔 87년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현재의 체제를 87년 체제, 87년 혁명이라 규정)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의 하위문화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주류문화, 지배문화(지배적인 가치와 윤리)가 이단시하고, 검열의 대상으로 삼았던 좌파적 이데올로기들을 하위문화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청년문화가 지배문화를 거부한 것은 그 내부의 능동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이다.

문화연구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등장한 하위문화의 개념이 주요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시대적으로 주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이다. 대체로 1980년대 하위문화로서의 청년문화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혹은 정치학, 사회학의 영역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인 하위문화의 등장은 통기타와 청바지로 대변되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하위문화는 그 개념을 산출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것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촉발한 사회변동이 노동계급의 생활 터전을 위협하고, 부모 세대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출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한국사회 청년지식인의 하위문화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초래된 체제억압적인 정치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출현했다.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은 부모세대들이 간직했던 전통(지배)문화의 정체성 - 반공이데올로기, 독재체제에 대한 의식 ․ 무의식적 복종과 합의,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 과 충돌했다. 청년지식인들은 억압적인 체제에 대해 불만과 공포, 정치적 자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새로운 청년문화를 만들어냈고, 1980년대의 청년문화는 다른 시대와 구분되는 하위문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문화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곧 정치적 행위가 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정책은 사회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의 통합을 추구한다. 80년 광주를 제물로 삼은 5공 정권은 정치적 정당성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문화를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육성과 통제를 주요 문화정책으로 삼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의 교육은 ‘국적 있는 교육’, ‘주체적 민족사관 정립’을 명분으로 국사교육을 강화했고, 이에 따라 모든 한국사교과서가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뀌었으며, 국민윤리교육도 강화되었다. 국사와 국민윤리는 모든 공무원 시험에서 필수 과목이 되었으며 대학에서 군사교육이 강화되었다. 이렇듯 국가주의와 획일적 교육, 반공 이데올로기가 주입되던 시기에 민중지향적인 진보적 사상과 학문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제시되었다. 이 시기에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이 창간되었고, 김지하의 담시와 희곡들이 발표되었다. 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텔레비전의 보급은 1975년에는 180만대, 1980년대에는 690만대에 이르러 100가구당86.7가구가 TV를 소유하는 등,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로 대중사회가 도래했으나 대중문화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말할 수 있는 권력을 요구하는 자발적인 세력의 등장, 진보적, 민중지향적인 사상과 학문들을 담은 텍스트들의 등장은 실제 대중의 삶과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1980년대의 청년문화는 다른 하위문화 일반과 마찬가지로 부모문화와 지배문화라는 두 가지의 문화형태들에 대한 반발을 통해 생성되었다.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가 온존해있는 봉건적인 부모문화와 자본주의적인 권위주의 억압체제였던 지배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같은 지배적 문화의 위치에 있었지만 그것의 형태는 동일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위문화로서의 1980년대 청년문화는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부모문화의 윤리의식과 규범 등 봉건적인 부모문화, 정치적 ․ 경제적 착취와 문화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억압적인 지배문화에 대해 이중의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부모세대가 내면화시켰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검열과 지배문화의 공식적인 지식을 무력화하는 일상적 문화실천을 통해 지배체제의 문화재생산에 저항했다.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의 이러한 거부행위는 그들만의 세대의식(generational consciousness)과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 -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용어를 빌자면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 - 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수용자 연구 : 억압된 지식(문화)의 생산과 수용과정은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의 세대의식(generational consciousness)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1980년대를 살아낸 청년지식인의 하위문화는 어떻게 다른 의미구조를 체현했는가?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기형도, 「대학시절」<全文>

19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내며 서울의 우울을 노래했던 시인 기형도는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고 읊었다. 1980년대 대학의 풍경은 “플라톤과 총성, 감옥과 군대, 시를 쓰던 후배와 기관원”으로 상징되었고, 시인은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비록 시인 기형도는 1980년대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198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같은 1980년대 세대들은 대학을 떠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류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과거 1980년대 청년지식인들이 피땀으로 싸워 얻어낸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들, 자유와 민주, 평등과 다원성의 원칙들은 우리 사회의 지배문화로 성장하지 못했고, 그들이 저항했던 부모문화의 역공은 물론 같은 1980년대 세대 내부에서도,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혜택을 받는 1990년대, 2000년대 청년들에게 환멸과 희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해럴드 가핀켈(Harold Garfinkel)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사소한(비논리적인) 대화와 행위에도 대화당사자들 사이에는 복잡한 공유 지식을 대화 과정에 투사하는 것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버릇처럼 반복하는 일상의 수많은 행위들이 실제로는 현실에 대한 동일한 기본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핀켈(Garfinkel)은 사람들이 일상의 현실에 대해 이와 같이 동일한 기본 가정을 공유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험했다. 그는 실험자인 대학생들에게 친숙한 존재들인 친구와 가족을 만났을 때,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실험자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처음 만난 낯선 사람처럼 행동했고, 가족과 친구들은 이들에 대해 자제력을 잃고, 흥분하여 화를 냈다. 평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상적인 대화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호명(interpellation)’에 응답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모든 문화실천은 이와 같은 일상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한 개인의 인격(personality)이란 이와 같은 일상적 문화실천 과정의 축적물이다.

우리들이 느끼는 일상의 현실이란 세계 혹은 세계관을 타인과 공유함으로 형성된다. 이 말은 우리의 ‘문화적 기억’이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주고, 그 기억을 통해서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을 상실하거나 그로부터 소외된다면 민족이산(diaspora)의 이방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인류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통의 기억과 감정구조를 습득하게 만드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디아스포라가 혈연적 민족구성원의 이질화를 초래한다면, 각각의 세대가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과 타협으로 구성해내는 문화실천(책읽기)은 세대 간 세계인식의 두드러진 차이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극복하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르는 문민통치의 새로운 전통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세대간 문화충돌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해 국내외 수많은 현안들을 놓고 첨예한 논쟁과 사회적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겠다 말하자 1,500여명에 이르는, 이른바 국가원로들이 나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들 세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나 이들 발언의 정치적 동인에 대한 분석, 이들의 전력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있었으나 이들이 과연 어떤 문화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은 물론, 이들이 규탄해 마지않는 1980년대 청년지식인 세대의 하위문화에 대한 문화분석 역시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어째서 한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악법으로 기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원로를 자임하는 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국가의 중차대한 위기로 의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들이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 문화실천의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간 문화의 차이, 감정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사회는 지난 197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동안 경제성장은 물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양적, 질적 비약을 거듭해왔다. 20세기 후반 40년 동안 한국은 흔히 이중혁명으로 불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관문을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개성이랄 수 있는 이중혁명은 수많은 고통과 희생의 대가로 얻어진 한국사회의 결실이며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형 이중혁명은 빛과 함께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한국 모더니티 형성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루는 기본 틀이 짜인 시대로서 이 시대를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식과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상호 대질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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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통과하는 거니까. 대단한 건 아니지만, 대략 2주 정도 나름대로 발목을 잡고 고민하게 한 결과물입니다. 연구계획서만 원고지로 150매 가량 되는데 윗글은 문제제기의 사회문화적 배경 부분만 올린 것입니다.

* 혹시라도 제 논문을 위해 인터뷰에 응해주실 분들은 비밀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게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아니면 제가 색출하겠습니다. 특히, 알라딘 서재의 1980년대 학번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 말은 꼭 80년대 학번이 아니더라도 무방하다는 말씀입니다. 비밀글에 실명과 이메일, 연락처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 협조해주신 분들의 신상은 원하신다면 비공개로 할 것이며, 논문이 완성되는 대로 한 부씩 우송해드리겠습니다.

* 어쨌거나 저는 다시 잠수 탑니다.
제게 용무가 있으신 분은 windshoes@naver.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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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0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축하드립니다. ^^ 주제가 넘 어려워요.

바람구두 2006-12-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은 인터뷰 여부랑 상관없이 우리 한 번 만나야 하지 않나요?
논문 핑계 대고 내년 봄까지 사람들 실컷 만나볼 욕심입니다.

진/우맘 2006-12-0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쯧.....제가 너무 어린게 한스럽군요. 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시작이 반!!!! 홧팅~

2006-12-0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7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6-12-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인터뷰인가요? 저도 너무 어려운 주제같아서 별로 드릴말씀이 없을 듯 하지만...

antitheme 2006-12-0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주제로 논문을 쓰시는군요, 결과가 기대 되네요. 인터뷰 없이 논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마늘빵 2006-12-0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넘 어려서. 아 난 왜 일케 어린거야.

바람돌이 2006-12-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은 원래 어려운거 맞지요? 열심히....!!! ^^;;
저는 그동안 놀면서 팔랑팔랑 소설이나 열심히.... ㅎㅎㅎ (힘드시겠습니다. 연구계획서도 이리 어려운데 논문은 얼마나 어려울라나? ㅎㅎㅎ)

해콩 2006-12-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만 탐내면... 나쁜사람일까요?
암튼 바람구도님... 너무너무 반가워서 이름 보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왔어요. ^^
축하드리고... 건강하시죠?

사마천 2006-12-0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위문화라는 표현이 좀 와닿지 않습니다. 당시 '대안'이라고 생각했지 이를 고상한 '상위' 문화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생활도 당구도 치고 술도 과외비 늘어나면서 1학년때 막걸리,2학년 소주,3학년 맥주,4학년 양주 이렇게 급속도로 상승했습니다. 이걸 하위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분들도 있지만 꼭 그걸 하위라고 개념짓기에는 ....

기인 2006-12-0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주제이고, 제가 관심가졌던 분야이기도 합니다! 정말 반갑네요. 바람구두님 좋은 논문 나올 거라 믿습니다. :) 천정환 선생님, "근대의 책읽기"나 관련 연구들에 호감을 갖고 앞으로 박사논문은 아예 그쪽으로 잡아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습니다. ㅎㅎ 저도 80년대 학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

stella.K 2006-12-0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난 구두님이 이만큼 쓰신 것 반도 못 따라갈 것 같군요. 대단해요! 제가 80년 대 학교를 다녔던 건 사실이지만 워낙에 학교와 상관없이 다녔던지라...ㅜ.ㅜ 어떤 인터뷴지 궁금하긴 하구료.

바람구두 2006-12-0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마천님의 글에만 답을 해올리면...
학문적으로 "하위문화"라는 것이 상위문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먼저 밝혀드립니다. 하위문화라는 것은 부모문화/지배문화/주류문화에 반대되는 다른 종류의 문화를 말하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제 연구에서는 운동권, 비운동권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일단 제 연구의 주요대상층인 1980년대 학번 구분과 상관없이 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습니다. 이건 앞으로 향후 연구과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기인님을 비롯해 다른 분들도 가능하답니다.^^ 관심 보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게 비밀글로 연락처남겨주신 분은 아직 아무도 안계시네요. 저는 이 분야 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꼭 해야하거든요.

2006-12-07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12-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다운 주제로군요.^^ 저도 80년대 학번은 아닌지라 ^^ ...제가 지방 살다보니 지방대학의 문화는 또 서울 중심의 상위/하위문화랑 또 다르지 않았을까 싶네요.세대간의 문화적 간격도 있겠지만 미시적으로는 수도권 중심으로 문화구심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지역이라는 공간의 문화배치 개념이 들어가면 또 다른 연구가 나올것 같기도 하네요.제가 대학원 갈 일이 생기면 한번 해볼까요 ^^ 그런일은 없을것같지만.^^ 수고하셔요.

2006-12-07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6-12-0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팀전님도 같이 인터뷰하면 좋겠습니다. 일단 문화연구가 비판받는 것 중 하나가 도시 중심이라는 것인데, 서울과 지방(비록 대도시라도)의 편차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허점이 노출되는 것이죠. 서로 엇갈려 살고 있으므로 인터뷰 일정 잡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정 어렵다면 메신저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고, 인터넷 설문조사도 병행할 예정이므로 그때 참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게다가 학번상으로만 따지자면 저도 80년대 학번은 아닙니다. 물론 제가 몇년 꼻긴 했지요.) 그리고 2006-12-07 19:32 속삭이신님... 우리 한 번 만나죠? 흐흐, 인터뷰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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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계획서는 이리 썼지만 박사 논문도 아닌 석사 논문에서 너무 많은 분야를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게다가 리뷰나 페이퍼와 달리 논문은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겠죠. 미리부터 엄살을...) 아마도 실제로 논문 진행 단계에서는 많은 부분을 내버려야 할 테지요. 일단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현재까지는 태부족인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다시 잠수 탑니다.
제게 용무가 있으신 분은 windshoes@naver.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글샘 2007-01-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주제군요.
그래요. 날마다 길거리에서 돌 던지고, 소리지르다가 밤새 술에 쩔어 살았던 그 시절의 삶은 <하위문화> 그대로였죠.
기형도 시인보다 조금 더 늦게 학교를 다닌 저는 정말 '대학 졸업하는 게' 꿈이었답니다.
저도 80년대 학번이니 인터뷰가 필요하시면 메일 주세요. (태부족인 상황이란 말씀에 맘이 아파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