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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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건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서 낳아준 부모님의 공(?)이고, 특별한 굴곡 없이 평범했지만 결코 짧지만은 않은 나의 삶 속에 녹아든 경험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평생 내 손을 거쳐 간 모든 책들도 한몫 단단히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고. 
 

늘 움츠려있고,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고개를 숙이는 갈대처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내가 어느 날 “나 이거 하고 싶어요..” 라는 말 한마디를 꺼내고,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지금, 하고 싶다던 그 일의 언저리나마 배회하면서 여기까지 흘러온 건 어느 한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 것도, 한 권의 책이 마음을 돌려놓은 것도 아니었다. 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어딘가에 쌓이고 쌓인 결과일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늦은 나이에 직장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다니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난 항상 한비야를 이야기한다. 다 그 사람 때문이라고.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한비야는 강렬했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비야는 왜 그토록 강렬했으며, 한 권의 책은 내 가슴을 뛰게 했는가. 그건 순수함이었고, 열정이었으며, 진심이었다. 그래서 난 한비야의 손에서 내 손으로 촛불 하나를 건네받고 싶었고, 그 시작점에 선 즈음인 지금도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어질 때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첫 장을 펼친다.

그건 사랑이었네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비하면 강렬함은 덜 하다. 오지를 헤매고 구호 현장을 뛰어다닌 그녀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두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알리고 싶었던 간절함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었고, 영화 필름처럼 재생된 치열한 현장이었다.

그에 비해 그건 사랑이었네는 그토록 모진 현장에서 방금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후에, 막 끓여낸 따끈한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차분히 노트북을 열고는 창밖을 무심히 보면서 회상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강렬함을 대신하는 따뜻함, 가슴을 뛰게 했던 눈물을 대신해서 책의 한쪽 귀퉁이를 접게 하는 기억해 두고 싶은 글귀들이 자리한다. 물론 한비야 특유의 열정은 그대로이다.

「지금도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현실적인 꿈만 꾸자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바보, 멍청이, 미련 곰탱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굶주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세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청춘과 인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건 한마디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꿈을 가슴에 가득 안고 바보들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룰 수는 없을지언정 차마 포기할 수는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이기 때문이다.」  p.151-152

책은 온통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자신에 대한 자랑부터 취미, 첫사랑, 구호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 좋아하는 책, 종교 이야기까지... 마지막, 구호 현장을 떠난 지금 무엇을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가까지 쏟아낸 글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부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비야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의 하나는 부러워만 하다 책을 덮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비야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늘어놓고는 은근슬쩍 괜한 사람 옆구리를 찌르곤 한다. 당신도 한 번 해봐! 그러면 나는 또 입맛을 다시는 거고. 어디 한 번 해 볼까?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돈키호테에 나온다는 이 구절이 나를 또 다시 설레게 한다. 이 글귀를 툭 던지고는 한비야는 또 다시 쿡쿡 옆구리를 찔러 댄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마니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버리겠다는 말인가, 여러분.」  p. 152

이러니 내가 ‘다 저 사람 탓’이라고 하는 것이다. 책임 질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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