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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15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장은 유키를 위한 장이었다. 그의 마음, 심정, 그가 느꼈던 고통들, 그리고 그것이 극복되는 과정, 그리고 느낀 유일한 위안,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구, 사랑할 대상에 대한 갈구들.
이런 생각을 한다. 대체 언제까지일까, 이 십이지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그들의 고통의 근원은 대체 언제 밝혀지는가, 그들의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은 언제쯤 치유될까. 뿌리깊이 남아있는 그 상처들은 그 누가 낫게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토오루라고 생각했다. 왜냐, 주인공이니까. 그리고 십이지들의 상처를 하나하나씩 보듬어가는 것이 그녀였고, 그들이 길고 긴 외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힘을 준것도 역시 그녀니까, 그들의 슬픔이 끝나는 것은 아마도 그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 그리고 막연하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했다. 토오루는 너무나도 완벽해, 아무런 사심없이,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너무나도 쉽게 그들을 품에 안아버린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 단 한마디로 너무나도 쉽게 열어버리고 그 눈물을 닦아 버린다. 그들이 모든 고통을 안고, 견디고, 그리고 치유해준다. 이 얼마나 환상적이면서도,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하고 말이다. 토오루가 이 후르츠 바스켓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면서도, 그녀의 내부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저렇게 한도 끝도 없이 착할 수 있을까. 의구심의 눈도 보냈었다.
누구나 자신의 성이 있다. 그 성 안에 들어앉아서, 사람들에게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킨다. 자신의 상처, 자신의 슬픔, 자신의 외로움, 고통, 그리고 자신안에 있는 이기심, 추한 욕심들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깊숙이 자기 안에 들어올까봐, 그랬다가 떠나버리면 또한 자신이 상처를 받을까봐, 꼭꼭 문을 걸어잠근다. 그리고 위장한다. 난 이런 사람이야, 자기 암시를 걸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면서 그러한 자신이 진실하다고 속이면서.
나도 모르게 토오루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나 보다. 그녀도, 가장 의지하던 어머니를 잃은 과거가, 슬픔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도 그늘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의 두 권에서 토오루의 마음의 그늘이 약간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그늘의 깊이는 생각했던 것 보다 깊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앉아, 상하고 썩어 곪아서 뿌리를 내려, 더더욱 상처는 벌어진다. 더더욱 음침한 곳으로 스며들어가서, 빨갛게 피를 흘리게 해 버린다. 언젠가, 그 상처는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돌아와서, 모두를 상처입히고, 그리고 또한 상처를 터트린 본인 역시 상처를 입는다.
이런 생각을 한다. 상처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설혹 상처를 입게 될지라도 그것을 터트려버리는 것이 나은가. 아마도 정답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가, 그 누군가가, 누가 될지는 몰라도 그 어떤 대상에게 상처는 터트려버리면 차라리 쉽다. 난 이런 상처를 가졌어. 라고 말해버리면 쉽다. 그것을 숨기고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위장하고, 성안에 틀어박혀 앉아 있어 더더욱 깊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난 이런 상처를 가졌어 하고, 뻘겋게 피를 흘리는 상처를 내보이는 것이 더욱 낫다. 그 누군가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상처를 보듬을 대상이 있을테니까. 그 상처에 같이 아파할 사람이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