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수학자의 뇌로 산다면 - 복잡한 일상의 현명한 결정을 돕는 수학자의 생각법
크리스 워링 지음, 고유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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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수학을 배우는 모두가 한 번쯤 푸념처럼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이걸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써 먹어?" 흔히 국영수/언외수라고 불리는 3대 과목 중 하나이면서도 도대체 나머지 두 과목만큼 실용성이 와 닿지 않는 학문이잖아요.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준다고는 하는데, 내 머릿속에서 논리력이 길러지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모로 수학은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학문처럼 느껴집니다.


<딱 하루만 수학자의 뇌로 산다면>은 바로 이 지점은 안타까워한 수학자가 최선을 다해 실생활에서 뽑아낸 수학 개념서 같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먹고, 자고, 움직이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수학이 응용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책입니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많은 수학 개념이나 공식이 우다다 쏟아지는데, 그건 본문 중에 혹시 헷갈리거나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앞에서 찾아보라는 친절한 부록 같은 개념이라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저처럼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다시 읽어보셔도 좋고요. 오랜만에 싸인, 코싸인, 탄젠트 이런 개념 읽으니까 아주 추억이 방울방울 맺히더라고요ㅋㅋㅋ


사람마다 흥미롭게 보는 챕터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다이어트와 관련된 3장, 그리고 '유령 체증'이라는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는 5장, 어쩐지 이력서를 넣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7장이 재미있었습니다. 3장의 BMI 지수(몸무게÷키의 제곱)나 BMR(몸무게x10+키x6.35-나이x5-161) 같은 건 아마 계산기 켜고 금방 계산해보는 독자들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7장 마지막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서울의 사례가 등장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지금길을 만들었더니 오히려 모두가 더 느려지는 신기한 현상에 대한 거였죠. 또 수많은 이력서를 볼 때 도대체 얼마만큼의 면접을 봐야 최선을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확률론적인 이야기도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건 사람을 뽑는 기업 입장이지만 반대로 구직자 입장에서도 해당 확률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흥미로웠어요.


수학.. 재밌긴 한데 정말 쓸데없는 학문이지.. 하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애초에 수학에 큰 흥미가 없으신 분들이라면 약간 힘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 개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나 지식이 이렇게 활용된답니다 짜잔! 하고 보여주는 것에 가까워요. 원주율이 뭔지, 삼각법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진도가 안 나가거나 매우 빠르게 휙휙 다 넘어가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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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스터리 사건 수첩 - 금은방 강도 사건부터 도깨비집 사건까지, 기이하고 괴상한 현대사
곽재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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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프로그램 중에 <서프라이즈>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도 한때 무척 즐겨봤었는데, 외국에서 떠도는 갖가지 신기한 이야기나 '썰'들을 재현하면서 풀어주는 형식이었어요. <대한민국 미스터리 사건 수첩>은 마치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흥미로운 지점이 꽤나 많은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곽재식 작가는 이런 기묘한 사건들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냈나 몰라요!


소문이나 썰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정도로 당대에 떠들썩했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작가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록을 소홀히 하는지를 지적하는데, 읽다보면 그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후속 조치라든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 꽤 많아요.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누군가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재판에서 경찰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말을 바꿨고, 그럼에도 진범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후속보도가 없어서 조사하는 데 꽤 애를 먹었나 보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의 잔혹성에 대해서 자극적으로 떠들다가도, 그 범인이 어떻게 되었다거나 혹은 그런 비슷한 사건을 막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법과 제도가 정비되었다든가 하고 정리된 후속 보도는 잘 없잖아요.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1940년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1960년대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현대'라는 느낌이 팍팍 들거든요? 그런데 사건 당시에는 1959년이 아니라 단기 4292년이라는 표현을 써서 갑자기 거리감이 확 생겼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느 시점까지는 단기를 썼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게 1960년대까지일 줄 몰랐어요. 해방 직후 정도까지일 줄 알았는데... 정말 빠르게 확확 변하는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어 새삼 좀 신기했습니다.


사건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여러 가설을 상상력으로 덧붙인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현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환기해야 할 지점을 짚어주는 면이 참 좋았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언론의 행태라든가, 몇백 년 전에는 환상의 보물로 여겨진 금속을 지금은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든가 하는 부분이요. 그저 흥미 위주로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렇게나 기묘한 사건들이 많았는데, 이 중에서는 아직까지도 영영 미제로 남은 사건도 있는데, 대부분의 대중이 모른다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지점이고요.


역사, 그 중에서도 소소한 일상사에 관심 있는 분이나 미스터리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보시면 재밌으실 거예요. 곽재식 작가님의 잡학력은 언제 봐도 존경스럽네요. 저도 이렇게 잡학다식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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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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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은 5명의 작가가 동일한 배경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기담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미스터리 사건들이 담겨있어요. '허실시'라는 가상의 도시가 배경인데, 읽다보면 이 도시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 것이, 한국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왜 없죠?! 서울의 높으신 분들이 별장을 짓는 구역이 있고, 빵집이 유명하고, 어딘가 의뭉스러운 사건들이 시시각각 일어나 주민들 모두가 괴이에 어느 정도 익숙한, 그런 도시 말이에요!


'허실시'라는 가상의 도시뿐만 아니라 극 중 일어난 괴이나 기담을 수집하고 다니는 향토사 연구자 진설주 씨의 존재가 이 연작을 한층 더 통일성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미 여러 작가의 연작인 걸 아는 상황에서 책을 펼쳐들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서문에 진설주 씨가 남긴 글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어떤 작가의 이야기길래 작가명을 안 써놨지, 궁금했어요. 아마 이 연작을 의뢰한 쪽이 만든 아주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건에서 진설주 씨가 관찰자 혹은 정리자의 역할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했던 건 첫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최애빵 구출 레시피>였습니다. 저는 괴이를 다룰 때 어느 정도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걸 좋아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딱 과학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도 불가능하거나 혹은 재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과학은 지금 이 순간도 발전하고 있는데, 지금의 과학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이 다 설명될 리가 없잖아요? 머지않은 미래에는 밝혀질 사실이라도 지금은 괴이로밖에 볼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일어난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최애빵 구출 레시피>는 '영혼'의 존재를 가정한 이야기라서 좋았습니다. 영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앞뒤가 딱딱 맞게 설명할 수 있지만, 영혼이라는 것 자체는 괴이인 거잖아요~


전반적으로 한국형 괴담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드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초능력물, SF, 호러 같은 장르물이 많이 나와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확실히 작가와 시대적 배경이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독자에게 엄청난 메리트인 것 같아요. '주변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팍팍 드니까요! 괴이 좋아하신다면 재밌으실 거예요!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에 오타가 좀 많습니다. 일부러 낸 오타일까 고민해봤는데 앞뒤 맥락상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282 페이지에서 '형과 네겐 남은 예산으로 산 싸구려나 동생이 갖고 놀다 질린 게 떨어지곤 했어요.'는 당연히 '제겐'이겠죠? 282 페이지의 '동생의 생일의 생일을 기념하려'는 '동생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일 테고요. 289 페이지에서 '살길을 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문장도 바로 뒤가 내려갔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니 '산길'일 테고.. 뭐 이런 식으로 오타가 꽤 있더라고요. <H골 여우 누이 설화 변이형에 관한 한 가지 해석> 꼭지에 오타가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검수가 꼼꼼히 안 된 느낌이라 이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2쇄에는 고쳐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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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엎는 돈의 심리학 - 돈을 보는 관점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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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무생물입니다. 그냥 종이쪼가리죠. 하지만 사람들은 돈에 그냥 종이 이상의 의미를 불어넣었어요. 그러다보니 돈에는 별별 의미와 감정이 다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돈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곧 돈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뒤엎는 돈의 심리학>이 경제/경영도서가 아니라 인문, 그 중에서도 심리학에 관한 도서가 되는 거겠죠.

 

돈을 어떻게 벌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돈을 아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물론 구체적인 조언이나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요. 예를 들어 딱 맞아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 그에 대해서 상대방이 값을 깎기가 훨씬 힘들어진다든가, 말도 안 되게 부풀린 원가가 옆에 붙어있으면 (설령 그 원가가 거짓인 걸 안다고 해도) 괜히 이득 본 기분이 들어서 자기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든지 하는 식의 내용이 나오거든요. 돈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온갖 사회학적 심리 실험이 잔뜩 등장해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렴한'과 '비싸지 않은', '저렴하지 않은'과 '비싼' 사이의 미묘한 구분에 대한 실험이었어요. 저는 가격을 쭉 줄세운다면 '1.저렴한 <2.비싸지 않은<3.저렴하지 않은<4.비싼' 순이지 않을까 했는데, 본인이 어디에 신경을 쓰는지에 따라 인식하는 지점이 갈리는 게 재밌었습니다. 현재 가격에 민감하여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3,4번이 묶여서 생각되고, 반대로 비싼 가격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2,3번이 묶여서 생각된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 역시 최저가 쇼핑을 할 때는 '비싸지 않은'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헤맸던 것 같아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거하게 선물하고자 할 때는 '저렴하지 않은' 정도의 선물로는 영 마음에 차지 않았고요. 이런 걸 보면 비슷비슷한 표현인데도 명확한 차이가 나서 재밌어요ㅋㅋㅋ

 

돈에 감정 태그를 단다는 내용도 흥미로웠어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긍정적인 태그가 달린 돈은 간직해두고, 부정적인 태그가 달린 돈은 빨리 써서 얼른 털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하네요. 상금이나 당첨금 같은 건 쉽게 써버리는데, 사망보험금처럼 안 좋은 일로 받은 돈은 쉽게 쓸 수도 없을 뿐더러 타인을 위해서 쓰는 경우가 많대요. 이런 식으로 의외로 예측과는 반대로 나온 실험도 꽤 있어서, 책을 넘기기 전에 예측해보고 이건 왜 그럴까 생각하면서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더 책을 몰입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이 책으로 독자들이 부자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자기가 돈에 느끼는 감정이나 의미를 자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양 겸 실용 겸 해서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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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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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은 댜한민국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 등 온갖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신 박미옥 형사님의 에세이입니다. 본인이 겪었던 아찔하고 다양한 현장과 거기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어요.

 

이런 종류의 직업 에세이를 볼 때마다 비밀유지에 대한 직업 윤리를 걱정하는 편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알 만큼 유명한 사건이나 범인도 몇 있었는데, 훨씬 더 자극적으로 떠들 수 있는 내용임에도 담백하게 서술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같은 경우에는 그냥 아예 이름 언급을 안 하시고 '범인'이라고만 퉁치시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다른 사건들도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잘 각색하셨겠거니 하고 믿음이 생겼어요.

 

저는 엄벌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어릴 때 꿈이 경찰이었어요. 어떨 때는 검사이기도 했고, 판사이기도 했지요. 언제나 '나쁜 사람을 잡아서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에 대해 동경하는 어린이였답니다. 점점 크면서 현실적으로 그 꿈과 멀어지고 말았지만, 아직도 세상의 모든 나쁜 놈들을 다 잡아서 벌을 주고 싶은 그 마음만은 생생합니다. 세상의 나쁜 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오히려 어릴 때보다 단죄의 욕구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형사님께서 범죄자에 대해서 인간적인 이해나 연민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저보다도 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을 것 같았는데 아니라니, 뭔가 신기했어요.

 

예를 들어 절도범을 잡았는데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형사님이 인간적인 공감으로 대화와 자백을 이끌어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뭔가 미심쩍어서 유전자 감식을 해봤더니 초등학교 5학년을 강간한 흉악범이었어요. 여기까지 보면 저는 해당 범인에게 뭔가 인간적인 미안함이나 연민이 딱히 생기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형사님은 자신을 믿고 마음을 열어준 범인에게 최소한 '한 번 더 대화할 기회'는 주었어야 한다고 부채감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범인과 형사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미안함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거짓말과 위선을 지켜보고도 그렇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예의를 놓지 않을 수가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모든 형사님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무용담도 많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만난 분들의 말씀에 괜히 찡해지기도 하고요. 저 역시 엄청나게 좁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구나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어요. 세상은 넓고, 악인에 지지 않는 선인도 이렇게나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 웬만하면 선하고 따뜻하게, 잘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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