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 - 한나 아렌트, 성난 개인들의 시대에서 인간성 회복의 정치로
이인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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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인용되는 통에 이름은 익숙해진 사상가입니다. 아마 한나 아렌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도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에는 익숙하지 않으실까요? 직관적인 그 용어는 지금 다시 봐도 감탄이 나와요. 그렇게나 수많은 역사의 비극을 하나의 단어로 응축시켜 버렸잖아요! 그 단어 때문에라도,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철학/사상 책은 읽어봐도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려서 망설여지더라고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은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초보자용 가이드 같은 책이었어요!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양심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건 한나 아렌트의 저서 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룬 4장에 나와요. 나치의 고위 관리가 실무자들이 겪는 양심의 가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주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하인리히 힘러라는 친위대 수장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친위대가 양심 대신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살해하면서도 '내가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끔 유도했다는 거죠.


한나 아렌트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나치 전범에게조차 양심이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어떤 사회체제 하에서는 양심이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사회가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나치 전범 같은 경우는 양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다고 말합니다. 국익을 위해 유대인을 죽이는 것은 나의 의무이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만,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케이스가 바로 아이히만이었다고 해요.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가스실은 유대인을 고통 없이 죽게 하려는 그의 '배려'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게 역사에서 예외적인 단 하나의 케이스가 아닐 것 같다는 점이 무서웠습니다. 지금도 자식을 죽이면서 '너를 위한 거야' 하는 부모가 종종 있잖아요? 사람이 양심의 방향을 엉뚱하게 몰고 가기 시작하면 객관적인 미친 짓을 하면서도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게 되나 봐요. 무섭습니다...


그 외에도 천부인권을 부정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천부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하늘이 내려줬다', 즉 신의 권위에 기댄 단어라는 지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이 경우 힌두교처럼 신이 인간을 불평등하게 태어나게 했다는 교리를 만나면 인권은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돼요. 왜냐면 신이 인간을 고귀하게 했다 vs 신이 인간을 비천하게 했다 이렇게 동일한 위치에서 싸우게 되잖아요. 결국 어느 신을 믿느냐에 따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불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서로를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공공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쪽의 인권론이 훨씬 마음에 드네요.


사실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고, 언뜻 이해된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니 못 하겠는 부분도 많습니다. 역시 한 번 읽어서 될 게 아니었어요. 몇 번 재독하고, 한나 아렌트의 저서도 직접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제 안에서 제대로 소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가이드 덕분에 처음 접근은 좀 스무스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ㅎㅎ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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