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문장 그만 쓰는 법 - 어휘, 좋은 표현, 문장 부호까지 한 번에
이주윤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NS 시대가 되면서, 제가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틀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적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떨 때는 글자 수 제한 때문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그런 잘못된 맞춤법이 유행이라서 그러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있었슨' 같은 말투가 특유의 그 무해함 때문에 인기를 얻을 때 저도 그런 말투를 종종 썼었죠. 귀엽고, 재밌잖아요. 아무도 놀리거나 바보를 만들지 않는 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자꾸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그렇게 '틀린 문장'에 익숙해져 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전만큼 글을 매끄럽게 쓴다는 느낌도 점점 줄어들고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묘한 위화감을 느끼다가 <이상한 문장 그만 쓰는 법> 표지를 보고서 이거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들을 함께했지'라는 문장이 잘못된 문장 예시로 적혀 있었는데, 제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였거든요. 단수형을 써도 되는 부분에서도 꼭 복수형을 쓰는 거요. 그래서 갑자기 책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올라가면서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대한 감상은 만족! 대만족입니다! 방금도 '책은 만족'이라고 쓰다가 이상한 문장이다 싶어 얼른 고쳤습니다ㅎㅎ 너무 국어사전스럽지 않으면서(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요), 적당한 일러스트로 시각적 이해를 도와주는데다(아무래도 그림이 텍스트보다 직관적인 면이 있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헷갈려 하는 부분을 정확히 콕 집어서 설명해주는 게 정말 좋았어요! 예를 들어 '같이'나 '마저'처럼 띄워도 쓸 수 있고 붙여서도 쓸 수 있는 경우, 어떻게 써야 정확한지 알려주는 방법 같은 게 쉽고 재밌었어요.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원칙을 정리하고 연습 문제를 던져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연습 문제가 너무 쉬워서 '어라 나 제법 맞춤법에 강할지도?' 하면서 풀었는데 후반부에는 이미 앞서 정리한 내용이 있는데도 순간적으로 딱 봤을 때 헷갈리는 문제도 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점점 문장력이 떨어지던 게 기우가 아니었던 가봐요. 실제로 실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거였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옆에 국어사전처럼 놔두고 헷갈릴 때마다 뒤적거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었어요! 실용서로서 만점입니다. 제가 알았지만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던, 그리고 아예 몰랐던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단어와 문장에 대해 알려줘서 크게 도움이 됐어요. 더 정확한 문장, 더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런 버핏 투자 방식 - 3시간 만에 만화로 마스터할 수 있는 책
구와바라 데루야 지음, 강모희 옮김, 베지코 만화 / 지상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한달간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안타까움과 후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계좌의 잔고를 보면서 '아 이거 계좌를 찍고 싶어지는 게 휴먼 지표라고 했는데..?' 라고 생각한 게 10월 29일이더라고요? 지금 거의 한 달이 지났는데 그때부터 완전 곤두박질쳐서 천만원 가까이가 날아가 버렸어요. 훠이훠이~ 저는 아직 재테크 초보인지라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너무 슬퍼진답니다. 다행히(?) 때맞춰 도착한 <워런 버핏 투자 방식>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 워런 버핏이 장기투자 하랬어...


 요즘 이렇게 온탕-냉탕을 오가다 보니, 워런 버핏의 원칙이나 투자관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반성도 되고요. 특히 '가공의 손해'라는 개념이 콕 박혔어요. 아무래도 재테크를 하다보면 '아 그때 그걸 했어야 되는데!'라는 후회가 계속되잖아요. 그때 그걸 샀어야 했는데...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코로나 이전 시기의 비트코인...ㅋㅋㅋ 그런데 그런 게 사실 다 가공, 그러니까 내 상상의, 가짜 손해라는 거죠. 생각해보면 70% 할인을 하는 쓸데없는 상품을 사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70% 할인이 가짜 이득이라면, 상상 속의 투자 이득은 가짜 손해인 거죠.


 전반적으로 '모두가 돈을 버는 주식이라도 꼭 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데, 이게 전문투자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조언이었어요. 하루종일 주식 창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대기업, 모두가 핫하다고 말하는 테마주라도 '사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라고 계속해서 말해줍니다. 전문가들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다고 해도, 뭔지도 잘 모르는 기업과 제품에 투자하지 말라고요. (실제로 버핏은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IT 쪽 투자는 몇십년이 지나서야 시작했다네요.)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실천하기는 좀 어려운 조언 같기도 합니다. 내가 투자하는 모든 기업을 다 잘 알고 있는가? 하면 저는 사실 NO에 가깝거든요ㅠ 반성ㅠ 


 책 마지막 부분에 워런 버핏의 인생이 연도표로 쫙 나와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도마다 워런 버핏이 몇살인지 적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00년생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몇 살에 뭘 했는지 같은 요소가 확 보이지 않아서 그 점은 아쉬웠어요. 예를 들어 41년에 누나와 처음으로 주식을 구입했을 때 버핏 나이가 겨우 12살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몇 살에 뭘 했는지 눈에 딱 띄었으면 더 직관적으로 와 닿았을 것 같거든요.


 한 페이지는 관련 설명, 한 페이지는 만화로 되어 있어서 엄청 술술 읽혀요! 통근 시간에 한 꼭지씩만 후루룩 읽어도 될 것처럼 완전 소화가 쉬운 책입니다. 저는 아예 통으로 만화로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만화로 표현하기에는 좀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내용도 있어서인지 텍스트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지한 재테크 방법론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입문서? 워런 버핏이라는 투자 대가의 원칙을 먹기 좋게 쪼개서 소화하기 좋게 떠먹여준다는 느낌이에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등의 짧은 역사 -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탐 그래픽노블 11
세바스티앙 바상 그림, 스테판 데스베르크 글, 장한라 옮김, 토마 피케티 원작 / 탐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토마 피케티의 <평등의 짧은 역사>는 2021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으로, 원작은 만화가 아니라 경제학에 바탕을 둔 인문서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평등의 짧은 역사>가 새롭게 출간되면서 원작을 만화로도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만화로 풀어내면 훨씬 더 접근이나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론적으로 반반이라는 느낌이에요. 전반적으로는 더 술술 잘 읽히지만, 만화로 짧게 압축하다보니 사전지식을 원래 가지고 있어야만 이해가 될 것 같은 부분이 꽤 있더라고요.


이 책은 인류의 계급의 역사를 주로 경제적인 불평등 관점에서 다룹니다. 그런데 재산에 관한 제도는 언제나 정치적이고 사회적일 수밖에 없어서, 경제적인 평등/불평등은 언제나 사회적 계급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책에서는 바로 초기부터 이 부분을 지적하죠.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농노에게 지주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들은 나를 딜레마에 빠뜨리는군. 내가 어쩔 수 없이 자네들을 모두 없애 버린다면, 내 들판에서 일할 일손이 부족해지겠지. 그러면 나는 이웃 성을 공격해서 그곳 농민들을 빼앗아 올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저기 살고 있는 자네들 이웃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겠지. 그러니 어떤 노동 조건이 자네들 이웃을 돕는 길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평등의 짧은 역사> 중


마치 착취하는 쪽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쪽이 나쁜 것처럼 말을 하는 거예요! 만화는 거의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직접적으로 말한 지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품위와 명예를 찾게 되잖아요?) 그 당시 지배 계급의 사고방식을 대놓고 보여주는 거죠. 좀 설명적이고 기능적이긴 한데, 전개가 빠르고 풍자가 넘쳐서 재밌긴 해요!


상당히 흥미로웠던 지점이, 어느 시점까지는 분명 유럽과 거의 비슷거나 혹은 앞서 있던 아시아가 왜 뒤처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었어요. 저자는 이를 '국민총소득의 몇 %를 세금으로 부과했느냐?'를 가지고 판단했더라고요. 아무래도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되면, 그 돈으로 국가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잖아요? 유럽은 그 돈을 군사력에 몰빵했고, 그래서 어느 순간 아시아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고 판단했더라고요. 원작에서는 꽤 정교한 데이터로 주장을 뒷받침했다고 들었는데, 여긴 아무래도 만화다 보니까 데이터는 거의 다 날리고 주요한 내용만 있긴 합니다. 만약 꼼꼼하게 데이터까지 체크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원작까지 함께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불평등 이슈가 전세계적인 규모의 착취 시스템에 기반한 만큼,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민족주의적인 지금의 태도'를 버리고 훨씬 더 폭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주문합니다. 전 조금 놀랐던 게, 원 저자가 프랑스인이어서 그런지 제국주의 비판하는 것도 프랑스 위주로 조목조목 깠더라고요. 아이티에 대한 국가적인 착취 시스템을 어떻게 생성했고,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같은 요소를 예시로 들면서요. 자국 이야기인 만큼 더 잘 알 수 있지만, 또 자국 이야기라서 쓰기 망설여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 본인부터가 그런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려고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의 계급주의를 벗어난 더 평등한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확실히 원작보다 훨씬 더 쉽고, 읽기 좋은 것 같아요. 다만 전반적으로 압축하면서 설명 톤으로 말하는 부분이 많아서 완전히 '만화'같은 서사를 기대하고 읽으시는 것보다는 요약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 속의 남자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어둠 속의 남자>는 폴 오스터가 '상실 이후'를 그려낸 소설입니다. <환상의 책>과 묶어서 디자인 및 번역이 새로 되어 나왔던데, 읽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두 소설 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든요. 극복하기 위해 현실이 아닌 무언가, 나에게 가족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비슷하고, 비극 안에서 조그마한 희망이 남겨져 있는 듯한 결말도 비슷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어둠 속의 남자>는 확실한 판타지라서 더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거예요.


이야기는 2가지 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할아버지-딸-손녀가 함께 사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가 머릿 속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입니다. 할아버지-딸-손녀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각각 사별/이혼/전쟁으로 인한 죽음으로 잃었고, 각자 조용히 그 슬픔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할아버지는 작가로서, 자기가 늘 잘 하는대로, 방 안에 틀어박혀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내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되, 그러나 누군가 내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이야기. 이건 어떻게 보면 아주 허무맹랑하고 천천히 진행되는 자살이에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겠지만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죽여야 하는 세계를 자기 상상 속에서나마 만들어내는 거죠.


만약 혼자만 상실에 빠졌다면 그는 결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사랑하는 손녀 역시 상실의 구덩이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기 때문에, 결코 자기 잘못이 아닌 일들을 끊임없이 곱씹으면서 자신을 탓하고 있기 때문에, 손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기 자신을 구해야만 합니다. 나 자신을 죽이는 결말을 만든다는 건, 손녀가 스스로를 죽이는 결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2개의 축으로 나누어졌던 세계는 중후반부에 하나로 봉합됩니다. 사실 세계가 하나로 봉합되는 방식이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달라서 당황스러웠어요. 저는 환상이 현실과 훨씬 더 혼란스럽게 뒤섞일 거라고 예상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후에 보여주는 다정함이 좋아서, 전반적으로는 꽤 마음에 들어요.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던 혹은 나가기 싫었던 시기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입니다. 아직 그런 적이 없으시다면? 축하합니다! 괴상한 인생의 주사위 게임에서 이기고 계시네요. 하지만 혹시 언젠가 지는 순간이 오신다면, 한 번쯤 <어둠 속의 남자>를 떠올려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의 책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나왔습니다.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데,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어둠 속의 남자>와 세트로 꽂아두면 두 배로 예쁩니다ㅎㅎ 


 <환상의 책>은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 그러니까 모든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던 짐머라는 한 남자가 그 상황에서 잠시라도 자기를 웃게 만들어준 코미디 무성영화에 대한 평론을 쓰면서 휘말리게 되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단히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재능은 있었던,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사라져버린 라틴계 코미디언 '헥터 만'. 하지만 짐머는 그의 실종이나 사생활, 가십보다는 영화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그를 웃게 만든 건 코미디 영화에서 헥터 만이 보여준 재능 때문이니까요. 영원히 곁을 떠나버린 가족들 이외에 다른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데이비드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합니다. 바로 헥터 만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죠.


 <환상의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헥터 만이 나타나기 전과 후. 개인적으로 헥터 만의 실체가 앨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왜냐면 그때의 짐머는 평소와 다른 큰 일을 겪은 후라서,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지만, 일단 예기치 못한 일을 겪고 나면 그런 일이 또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는 이 문장에 엄청난 공감을 해 버려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착시 효과가 생겼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엄청 희박한 일을 겪은 직후에 또 그런 희박한 일을 겪을 거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하루에 이변은 한 번이면 족하단 말입니다!


 초반이 '헥터 만은 왜 사라졌나'를 슬쩍 건드리면서 독자가 헥터 만을 사랑하게 한다면, 후반부는 '헥터 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여주면서 독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입니다. 여기서 저는 헥터 만에게 품었던 많은 호감을 조금 덜어내게 되었는데, 이 부분은 성향 차이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고, 그이 때문에 인생의 항로가 뒤바뀔 정도였는데 또 다음 순간에는 다른 사람을 또 그렇게 열렬히 운명적으로 사랑하고 있으면 이게 뭔가 싶어지거든요. 심지어 헥터는 그런 사랑이 3번이나 있는 거잖아요;; 흠, 그러고보니 짐머도 그렇네요. 폴 오스터의 남자 주인공이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라는 건 믿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ㅋㅋㅋ


 그 모든 사건과, 사고와, 사랑과, 미움과, 증오를 뒤로 하고... 결국 이 세상에 헥터 만의 이야기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짐머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짐머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죽기 전까지 세상에 내놓지 않을 거고요. 그럼 이제 짐머가 죽게 되면 이 세상에 헥터 만의 삶과 영화 모두 없는 셈이 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래서, 오히려 마음 한 켠으로는 간절히 그 증거를 바라고, 증언하고 싶어지는 것. 이 공허와 슬픔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나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 바라보기를 바라는 것. 그게 바로 이야기가 가지는 힘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헥터 만의 필름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좋겠네요. 짐머의 글도 함께. 그리하여 그 모든 이야기는 다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그게 비록 헥터와 짐머를 구해주지 못할지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