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랩 -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론 M. 버크먼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이커스 랩>을 읽는 내내 인터넷에서 잊을 만 하면 화제가 되곤 하는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명언이 떠오르더라고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될까 안 될까, 어떻게 될까, 뭐가 될까, 하는 고민을 하지 말고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말. 살다보니 정말 맞는 말 같아요. 꼭 창의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중한 건 필요하지만, 그냥 계속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이래저래 재는 것보다는 무모하게 저질러버리고 나서 꾸준히 하는 게 효과가 있을 때가 많잖아요.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천재'와 '영감'과 '뮤즈'와 '광기'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민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구석이 있다는 것 역시 사회 통념이고요. 하지만 최근 들어 절실하게 느끼는 한 가지는, 몸이든 마음이든 건강한 상태에서 나오는 예술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나오는 예술보다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바람직한 창작 환경에서 더 뛰어난 예술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책에 나오는 관점도 비슷해요. 천재성이란 환상이다! 누군가 신에게 선택받아서 귀에 완벽한 작품을 속삭여주는 게 아니다! 

 

 저는 작가도 아니고 창작자라고 할 만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후기랍시고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시작하니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는' 감각이 뭔지 좀 알겠어요. 왜냐면 저도 도대체 이 작품은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라거나 나는 이걸로 도대체 뭘 느꼈고 후기에 뭘 쓰고 싶은 거지? 하고 막막할 때 일단 한 문장을 써보면 그 다음 문장이 흘러나올 때가 있거든요. 창작자들의 거대한 세계관에 비하면 너무 소소한 요소이긴 한데, 타자를 두드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딱 정돈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시작 전에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장이 막 튀어나오고요. 그냥 일개 감상자인 저조차도 이러한데, 정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작자들은 어떻겠어요!


 엄청 인상적이었던 게, 우리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행위들이 당연히 즉흥적인 활동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즉흥 연주나 즉흥 연극에 대한 감각을 알기는 어렵잖아요.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느 순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안다는 감각이 어떤 거지? 하지만 상대와 대화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이해가 확 되는 거예요. 상대방의 반응을 잘 살피고, 적절한 리액션을 하고, 거기에 내가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바를 돌려주고, 그에 대한 답을 받고, 다시 던지고, 받고... 하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창작자들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도구'로 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구나 싶어요.


 결국 예술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라 재밌었습니다. 저자가 수십년간 만나본 많은 기업가, 예술가, 학자, 작가들과의 인터뷰 경험이 곳곳에 잘 녹아들어 있어서 설득력 있었어요.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실용서로 집어들었는데 대중 인문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이런 식으로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논거가 분명하게 이야기해주는 책,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재밌었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
류팅 지음, 동덕한중문화번역학회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이나 유럽, 일본 문학은 꽤 많이 읽은 편인데 이상하게 중국 문학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최근 SF 분야에서 중국 작가들이 눈이 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아직까지 저에게 역사책 속의 중국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중국은 전혀 모르는 나라인가봐요. 이름도, 사회 분위기도, 문화도, 제가 잘 모른다는 게 곳곳에서 티가 났어요. '중국의 일반 서민의 일상이 정말 이런가? 이건 특별히 하층민의 삶인가?' 하고 고민하게 되는 식이랄까요.


 총 12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장 돈이 없어 똥냄새가 진동하는 뒷골목에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시대가 싫으니 전쟁이 난무하고 모두가 고생하는 당나라 시절로 타임워프를 하겠다는 교수나, 작가가 자신의 연인을 뼈앗아간 것에 분노하는 소설 속 주인공도 있습니다. 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만 나오는 건 아니고, 평생을 버스 운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노동자나 가족 모두를 부양했으나 그들 모두에게 배신당한 여성 가장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 중국 사회에서는) 불행합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조차도요.


 소설 곳곳에 이상하달까, 어색한 묘사나 문장이 있습니다. 이게 번역 문제 같지는 않아요. 아마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일 텐데,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거든요. 그런 작품이 몇 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감옥>이 특히 심해요. 거기서 화자는 1인칭 시점으로, 감옥에 갇혀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만 있고 아무것도 볼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계속해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든가, 편지를 꺼냈는데 모두 서른 통은 되어보였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보면서 계속 혼란스러웠는데, 문제는 작가가 이걸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의도했다 해도 개인적으로는 불호 포인트였습니다. 자꾸 시점을 왔다갔다 하니까 읽다가 턱턱 막히더라고요.


 책 홍보 문구로도 쓰이고, 띠지에도 적혀 있는 "누군가의 기괴한 언어로 시를 읽는 것 같았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에 대한 평이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글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 시인은 사랑하는 여성을 쫄쫄 굶기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이 소설의 모든 인물이 그렇듯이 불행해집니다. 작가가 남자라 그런지 화자가 전부 남자인데, 여성 독자로서는 상당히 냉담하게 볼 수밖에 없는 발언을 계속해서 등장인물이 불행해지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어쩌라고? 혼자 죽든가? 싶은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특히 당나라로 넘어갔던 그 인간은 왜 안 죽어서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나 싶었다니까요. 그만 죽지 그래.


 중국에서 요즘 엄청 핫한 작가래요. 요즘 중국 문단 분위기는 이렇구나 하고 보심 될 것 같아요. 우리랑 비슷하기도 한 것 같고~ 다르기도 한 것 같은~ 그런 오묘한 느낌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점의 힘 - 독자는 모르는 작가의 비밀 도구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샌드라 거스 지음, 지여울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점의 힘>은 얼마 전 발간했던 <묘사의 힘>의 후속작입니다. 워낙 호평을 받았던 책이었어서 언젠간 꼭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 후속작을 먼저 읽게 됐네요. 확실히 글을 잘 쓰는 사람 특유의 간결함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실용서잖아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예시도 알기 쉽게 써놓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연습 과제도 내줍니다. 만약 작가 지망생이거나 작가라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고 싶다, 하는 작가로서의 욕망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책입니다. 서사를 많이 접하다보면 자기 나름대로의 법칙 같은 게 쌓이게 되는데, 작법서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규칙에 대해서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이거 나도 생각했는데! 아, 그걸 이론화시키면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하는 부분이 많아서 책 진도도 엄청 쑥쑥 잘 나갑니다. 물론 진짜로 내가 글을 쓰려고 덤벼드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면 하나하나 읽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소요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정도의 욕심은 없기 때문에(ㅋㅋ) 가볍게 쓱 읽으면서 요즘 제가 읽었던 작품들은 어디에 속할지 가늠해보고 있었어요.


 여기서 지적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는데, 많은 작가들이 실수한다는 '머리 넘나들기'가 인상깊었습니다. 여러 시점을 작품 속에서 의도적으로 녹여낼 때는,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장이 바뀔 때,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장면이 바뀔 때 시점을 바꿔줘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과 '머리 넘나들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서 쓴다는 거예요. 전지적작가 시점은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대신 등장인물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술하지는 않거든요. 외부에 아주 분명한 화자가 있는 거죠. 그런데 머리 넘나들기에 사용하는 시점은 등장인물 본인이 되어서 속마음을 생각하는 게 독자에게 그대로 문장으로 노출되는 거예요. 그게 A였다 B였다 하면 독자들은 도대체 누구에 이입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의외였던 게, 책 속에서는 로맨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쓰는 걸 별로 추천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체감상 요즘 웹소설에서 로맨스 장르는 대개 1인칭 시점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좀 신기했습니다. 사실 1인칭 시점이야말로 주인공 몰입의 최강자이니까,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판타지나 로맨스 장르에서 많이들 선호하잖아요. 그런데 정보량의 제한 때문에 오히려 3인칭 깊은 시점을 더 추천하더라고요. 같은 장면이나 서사를 여러 시점으로 써 보는 연습도 작가들에게 엄청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책이 맘에 쏙 들어서, 시리즈인 <묘사의 힘>과 <첫문장의 힘>도 사려고요! 셋 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넘넘 재밌을 것 같아요ㅎㅎ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티고 있습니다 - 대책 없이 부족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치열한 책방 미스터버티고 생존 분투기
신현훈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에세이를 읽다 보니 느끼는 건데, 작가들이 하나같이 '나는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내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읽고 공감해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고, 다들 책 한 권쯤은 내고 싶어하는 시대라 그런 걸까요? <버티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쨌거나 책을 집어든 독자로서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하는 걸 보고 있으면 살짝 괴롭습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당신의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니, 걱정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얘기하고 싶어요ㅋㅋㅋ


 본문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왜냐면 저도 다독가는 아니지만 종이책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독서모임이나 동네 책방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도서정가제와 대형 인터넷 서점의 시대에 동네의 책방 혹은 헌책방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이런저런 뒷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엄청 현실적인 얘기들이 잔뜩 나오더라고요. 

 제 생각에 동네 책방 주인장이 되는 길은 작가가 되는 길보다 더 험난한 것 같아요. 굉장히, 매우, 아주, 극히 드물지만 어쨌거나 작가는 대형 스타가 되어 큰 돈을 벌 가능성이 0.0001%라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동네 책방이 갑자기 인기가 미친듯이 폭발해서 갑자기 큰 돈을 벌 가능성은... 음...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로또를 연속으로 막 20번 맞고 그런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ㅋㅋㅋ 그런 직업을 선택하면서 낭만이 없기는 힘들잖아요? 현실에 아무리 치여도 책과, 독자와, 책방에 대한 애정은 숨겨지지가 않아요. 읽다보면 저도 저절로 평온하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그리워지는 힘이 있어요. 

 '누가 더 잘 버는가보다 누가 더 많이 버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는 문구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소스라쳤습니다. 아니 글쎄 제가 순간적으로 '똑같은 거 아닌가?' 하고 있지 뭐예요! 머리 한 쪽은 이해를 했는데 다른 한 쪽은 이해를 못해서 어리둥절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럼 많이 버는 거 말고 제대로, 좋은 돈을 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바로 답변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남을 도우면서 버는 돈? 하지만 액수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지 아니면 잘 번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제가 사회에 너무 찌들어서 오염된 언어를 쓰는 것 같아 입이 쓰네요. 휴, 돈은 잘 벌면서 많이 벌면 좋을 텐데!

 저도 어쩔 수 없는 종이책 인간이라서, 항상 읽고 좋았던 책들은 꼭 반드시 사서 소장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집이 책으로 꽉꽉 들어차는 바람에 산처럼 쌓아놓고 그 속에서 자곤 합니다. 그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을 비용으로 환산해본 적은 없었는데, 10억짜리 30평 아파트에 3평 크기 서재를 꾸미면, 책에만 1억을 쓰는 거라는 말에 새삼 '와 공간이 정말 비싸구나' 싶었어요. 부동산이 너무 비싸니까, 집은 좁고 책은 무겁고 부피도 크니까, 다들 전자책으로 갈아타더라고요. 하지만 종이책이 주는 그 질감, 그 냄새, 그 무게감이 너무 좋은 걸 어떡합니까ㅠ 저도 언젠가는 사고 싶은 책을 다 사서, 원하는 책은 전부 소장해 서재에 두는 호사를 누리고 싶네요ㅋㅋㅋ

 주인장 본인도 동네 책방을 대형 쇼핑몰로 옮긴 걸 후회스럽게 생각하던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전의 버티고 책방이 아직 있었다면, 꼭 한번쯤 방문해보고 싶거든요. 들러서 별 얘기 안 하더라도 ("책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정도는 했을 것 같아요) 그냥 거기서 책 사서 읽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독립적인 느낌이 사라졌다니 괜히 제가 더 아쉬워요. 동네에 있는 그런 자그마한 가게들만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 그리고 로망이 있는데 말이에요ㅠ

 그래도 동네 책방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신 그 의지와 애정에 박수를!!! 언젠가 슬쩍 한 번 들러서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을 집어들고 찬찬히 읽다 오고 싶네요. 그 날까지 화이팅입니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키리시마가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각양각색의 청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면서도 결말이 현실적이라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었지 뭐예요! 당장 사서 읽어봤죠! 역시 원작도 영화만큼이나 좋더라고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그 영화의 원작 소설가, 아사이 료가 새롭게 내놓은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아직도 왕이 있는 국가라, 연호를 쓴대요. 우리가 조선시대에 세종 12년, 정조 3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떤 시대를 기억할 때 우리처럼 90년대 같은 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연호로 기억한다고 하네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여러 소설가가 '산족과 바다족의 대립'이라는 주제와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각자 다른 장르, 각자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풀어나간 연작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1989년에서 2019년까지 이어진 헤이세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인 셈이죠. 어떻게 쪼개어 이름을 붙이냐에 따라 같은 것도 얼마든지 다르게 묶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우리로 치면 90년대, 00년대, 10년대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특징으로 나누는 긴 세월이 하나로 묶인 거잖아요. '선'을 어디에 긋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 소설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게 결국 서로 너무나도 다른 성향과 특질을 가진 두 친구가 평생 아슬아슬한(!) 우정을 이어나가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마음이 참 미묘해지더라고요. 이 둘의 우정은 결국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받아줘서 유지가 되는 거거든요. 사실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게 맞다고 그냥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면, 또 서로 같은 사람을 더 경계하고 배척하게 되어버리겠죠. 그렇게 서로 '다름'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도 영 마뜩찮고... 이런 고민을 소설 속 인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답니다.


 이 작가가 청춘을 잘 묘사한 것 중 하나는, 자기를 부풀리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사실 이건 청춘만의 특징도 아니죠. 모두들 자기를 좀 더 대단한 사람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어하잖아요.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넌 멋져, 대단해!' 같은 사회적 주문을 끊임없이 들었던 세대는 그게 좀 더 심하게 나타날 뿐입니다. 자기가 빈 깡통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남들이 자신을 좀 그럴싸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인생을 걸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남들 위에 설 만큼 대단한 재능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뭐지? 나는 왜 사는 거지? 내가 이렇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어떡하지?


 그렇게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은 낮은 상태에서 자의식만 비대해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의 디톡스입니다. 마지막에는 작가의 메세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살짝 교장님 훈화 말씀처럼 되긴 했지만, 그래도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렇게 '산족'처럼 굴 때가 있었던 인간으로서 마음 한 켠이 콕콕 쑤시더라고요ㅋㅋㅋ


 우리가 미움의 연쇄를 끊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