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들을 위한 우정의 사회학 -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의 재발견
케일린 셰이퍼 지음, 한진영 옮김 / 반니 / 2022년 7월
평점 :
저는 어릴 때 연인이나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서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온갖 버전의 '세기의 로맨스'를 보고 자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정작 현실에서는 한 번도 그렇게 행복하고 서로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커플을 본 적이 없었는데도 (한국의 수많은 커플들은 거의 역할놀이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잖아요?) 어릴 적부터 제가 봐온 모든 창작물이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도 언젠가는 그런 영혼의 짝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점점 커 가면서 사랑보다는 오히려 우정이 제가 꿈꾸는 사랑의 모습에 더 들어맞지 않나 싶어지는 거예요ㅋㅋㅋ 이 책은 꼭 저 같은 사람이 자신과 자신 주변의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에요.
저는 책에 등장하는 아미나투처럼 보험수령자에 친구를 적어놓은 건 아니지만, 내 죽음으로 혜택을 받는 누군가를 내가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다면 그 관계에 '친구'나 '동반자' 같은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는 데는 적극 동의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수두룩뺵빽하잖아요. 아니면 가족이나 연인, 친척 같은 다른 관계가 없는 사람도 있고요. 진심으로 나를 위해줄 사람, 나를 위해 기꺼이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포기하거나 희생을 감내해줄 사람이 단지 혈연이나 성애로 엮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법적인 보증인이 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요?! 정말 한국에도 빨리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이 연사 힘차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갑분이지만 진심입니다)
"저는 제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했어요" 하는 멘트를 제가 좋아하는 영화 배우의 인터뷰에서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친구는 친구, 연인은 연인, 이렇게 떼어놓고 생각했던지라 그 둘을 묶는 사고방식 자체가 충격이었거든요. 늘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베스트 프렌드가 배우자가 된다면? 너무 멋질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고, 사실 그렇게 권장할 만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듣고는 좀 놀랐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 모든 인간관계를 쏟아붓게 되면, 다른 관계들이 단절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과 틀어졌을 때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해요. 서로에게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도 문제고요.
읽는 내내 요즘 제 주변에서 저를 든든하게 지원해주고 있는 여자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저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거든요. 세상은 요즘도 우정보다는 사랑에 더 방점을 찍고, 아직도 온갖 창작물들이 영원한 세기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죠. 하지만 어떤 우정은 사랑보다도 더 강력하고, 사랑보다도 더 영원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정이야말로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일지도 모르겠어요. 내 선택으로, 어떤 구체적인 바람도 없이 그저 함께하는 관계잖아요.
수많은 여성들이 자기 소울메이트에 대해, 단짝에 대해, 친구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