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1961년 로마 강연 "Marxism and subjectivity"를 읽었다. (뉴 레프트 리뷰를 새로 구독했는데 온라인으로 과월호를 볼 수 있더라. 피디에프로 출력해서 읽었다.) 철학서를 읽고 감동을 받은 것이 언제였던지! 물론 이 감동은 상당 부분 감정적인 것이다. 사르트르가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를 다루는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한국에서 공장 노동자로 살 때 일이 떠올랐고 그때 내가 느꼈던 문제의식을 50여년 전에 파리의 카페에 앉아 글을 쓰던 사르트르가 공유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이 작가적 상상력의 결과든 지적으로 훈련된 통찰의 결과든 뭐든 나는 기꺼이 사르트르에게서 관념성의 표찰을 떼어주기로 했다.    

나는 이 로마 강연 문서가 이처럼 오랫 동안 잊혀진 상태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 잡지 "현대"에 실린 것은 1993년이고 "뉴 레프트 리뷰"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린 것은 2014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강연문은 사르트르의 후기 철학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르트르 철학의 전회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물론 이 전회는 실존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로의 개종이라는, 심각하게 유치하고 피상적인 관찰과는 별 상관이 없고 단지 사르트르 철학의 내적 전개 양상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전회에 대해 길게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가지 대비만 예시하기로 하자. 즉, self-deception/non-knowing. 아마 이 예시만 보고도 이 전회의 한 측면을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서가 중요하다. 사르트르는 이 짧은 문서에서 자신이 '존재와 무'의 철학에서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 그렇게 하여 성취한 철학의 의의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명확하게, 그리고 때로는 아름답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철학 문장을 읽은 것은 또 언제이던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 이후로?)

(그러고 나면 철학의 문제가 남는다. 간단하게 말하면 새로 얻은 개념을 가지고 앞과 뒤를 다시 조명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몇 년 치 장부를 꺼내들고 계산이 맞는지 하나 하나 추적하고 대조해 보는 것과 같다. 새로운 개념에는 항상 이런 번거로운 일이 뒤따를 것이다. 이보다 더 우리의 관성, 보수성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있을까? 그러므로 새로움의 의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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