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중국의 시진핑 대통령을 펍(한국으로 말하자면 호프집이나 고깃집)에 데려 가서 칲스에 맥주를 마시며 환담하는 장면을 테레비젼에서 보았다. 참 펍 땡기는 장면이었다. 맥주와 함께, 농부 엄지 손가락만큼 두툼한 칲스를 소금을 약간 쳐서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맛은, 적어도 내게는 영국 문화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이다. (이번 주말에 나도...)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중국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해 한국 뉴스들에서 결례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화장실 표시가 보이는 곳에서 영국 외무부 장관이 중국 대통령을 맞았다든지 하는... 중국의 대통령을 맞는 영국 정치권의 태도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캐머런 총리나 왕실은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지만 영국 의회의 지도자들 입장은 또 다르다. 중국에 인권 문제 등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뻣뻣한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일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 표지 같은 것은 그냥 영국스러운 에피소드로 보면 될 것 같다. 사람들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공간을 찾아 파티션 하나 치고, 소파 하나 놓고, 그리고 나서 중국 대통령을 맞은 것 뿐일 것이다. 중국 대통령이 왔다고 다우닝가 수상 관저 출입문 앞에 빨간 융단도 깔더라. 그래봤자 수상 관저 출입문 크기 정도 밖에 안되는 융단이다. 우리가 보기엔 우스울 수 있다. 한때 우연히도 전세계를 재패했던 나라의 수도 모습치고는 많이 소박하지만 그게 또 영국이다.
엥겔스든가 마르크스가 괴테를 몇 트럭 갖고 와도 셰익스피어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괴테에게는 없고 셰익스피어에게는 있는 것? 그것은 서민성이다. 소박하고 실용적인 것에 대한 취향. 영국 사람들이 가장 안들으려고 조심하는 말은, 물론 '인종주의자'라는 것이겠지만, 그 다음은 아마 '속물'일 것이다. 영국 문화는 전반적으로 바로 이 소박하고 실용적인 취향에 의해 틀지워져 있는 것 같다. 총리 관저의 소박한 출입구는 흔한 예 중 하나일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 현상에는 이면이 있다. 영국의 서민성은 영국이 계급 사회라는 이면을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이동이 연속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나보다 부자가 있고 그 보다 좀 더 부자가 있고... 등등으로 연속된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영국에는 그 수직선이 연속적이지 않다. 저쪽 너머에 태생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비연속성이 너무도 완강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그 너머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사는 모습과 비교하여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그냥 자족하며 산다. 한국 사람들이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아득 바득 성취지향적으로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 사회에 아직 성취의 한계가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 영국 사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영국의 이런 계급 사회적인 면모가 결국은 영국의 발목을 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의 서민성의 이면은 계급 사회이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 관계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