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존재와 무를 읽고 있다. 그렇다는 걸 기록해 두고, 또 느낌 몇 가지를 적어두자.

1. 어떤 의미에서 보면 존재와 무는 기적과 같다. 존재와 무 이전까지 사르트르는 철학자로서 분량이 그리 많지 않고 주제 범위가 작은 책만을 썼다. 그런데 존재와 무는 철학사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백과사전적인 저작이다. 게다가 20세기에는 보기 드물게 체계 철학, 혹은 총체성의 철학을 표방한다. 이런 도약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2.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를 쓰는 데는 2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빽빽한 활자로 700 페이지 안팎을 가득 채우는 데 이 정도 시간 밖에 들지 않았다니! 그러나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책에는 자잘한 실수가 넘쳐 난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를 출판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어 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사르트르는 텍스트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다.

3. 존재와 무의 영역 표준판, 그러므로 국제 표준판은 헤이절 반즈가 번역한 것이다. 5년 정도 걸렸다고 하고, 또 거의 혼자 힘으로 한 것 같다. 이 분은 철학자가 아니라 불문학자다. 번역 원고를 인쇄에 넘길 때까지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한 사람은 역자 한 사람뿐이라고 역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번역에 많은 오류가 없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럴 수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 영역판은 문제가 많다. 문제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 아닌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반즈도 영역판 출판 이후 텍스트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반즈는 이후 사르트르 전문가로, 뛰어난 번역자로 명성을 얻었다. 존재와 무의 영역판을 그 상태로 놔둔 채로...

4. 사르트르가 남긴 모든 것은 양녀 아를레트에게 유증되었다. 아마 사르트르는 아를레트가 직접 자신의 저작과 유고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실무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를레트는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사르트르의 이름 아래 박아 놓을 수 있었다. 뭐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이야!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비판을 받는다. 내가 읽고 있는 존재와 무는 아를레트가 교정을 보고 색인을 단 판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누락된 문장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 영역판에는 있고 아를레트 교정판에는 없고. 나는 사르트르의 1943년 판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를레트 교정판의 문장은 문맥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으므로 이 교정판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철학서의 텍스트 문제는 유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화이트헤드까지. 그러나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사상일 것이므로) 

5. 내가 존재와 무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은 20세기에 출간된 가장 위대한 철학서 중 하나로 꼽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책장 위로 먼지가 쌓여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먼지 아래에는 '여전히' 유망한 출발점이 놓여 있다. 나는 이것을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