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난민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독일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나라들이 차례로 국경을 봉쇄하거나 국경 출입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불과 얼마 전 메르켈의 우호적인 선언을 생각해 본다면 많이 실망스럽긴 하다. 그래도 독일을 이해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고, 그 중에는 시리아 난민이 아닌 사람도 끼여 있고, 테러리스트가 끼여 있다는 소문도 있고, 국민들이 불안해 할 수 있고 불만도 높아갈 것이고, 어쨌거나 독일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니 유럽 전체가 고통을 분담할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하고 등등...

그런데 바로 이 순간이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기에 적당한 때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메르켈이 위선자라고 주장한다. 혼자 지고지선한 척, 잘난 척 하더니... 쯧쯧쯧. 이 사람들은 독일이 지금까지 받은 난민의 수와 앞으로 받게 될 난민의 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독일이 난민을 더 열심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독일이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메르켈이 혼자 잘난 척 하더니 현실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고 조소할 뿐이다. 이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이인화의 "영원의 제국"을 보면 영조(정조인가?)가 책상을 발로 걷어 차며 화를 내는 모습에 주인공 화자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성군이 일개 평민들이나 하는 행동을 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인화의 이런 멘탈리티는 물론 유치하다. 이런 유치함은 이인화를 어디로 이끌고 갈까? 허무주의. 이인화식 허무주의다. 세상에는 완전한 인간도 절대 선도 절대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많이 유치하다. 그런데 이인화는 이런 의미에서라도 허무주의자이긴 한 것일까? 아니다. 이인화는 무엇인가를 긍정하기 위해 세상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인화가 긍정하고자 하는 것은 박정희다. 박정희의 과를 물타기 하기 위해 이인화는 허무주의자가 되어야 했던 것 뿐이다. 절대선은 없어. 다 똑같은 놈들이야. 그렇게 세례를 베풀고 나서 이인화는 박정희를 자신의 영웅으로 모셔온다. 지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쓸데 없는 위장, 우회가 정말 짜증스럽다. 왜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철학적인 척 해야 하지?

김홍도의 "새벽을 깨우리로다"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어떤 대학생들이 경찰서 창문에 돌을 던지고 도망간다. 지켜보던 김홍도가 그중 한 대학생의 팔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당황해 하는 대학생에게 김홍도는 말한다. "너가 정말 정의로운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왜 도망치는 것이냐?" 경찰이 민간인을 곤봉으로 내려쳐도 김홍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학생이 경찰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김홍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학생이 경찰을 피해 도망치려 할 때 김홍도는 별안간 절대 정의의 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김홍도는 정말 절대 선의 심판관일까? 물론 아니다. 그는 단지 데모하는 학생들이 싫었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경찰이 죄다 잡아 갔으면 할 뿐이다.

이런 것들은 사르트르의 자기기만이라는 개념의 고전적인 예다. 이런 예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후원을 한다는 사람에게 왜 국내 아이들에게는 후원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국내 아이에게 후원을 한다는 사람에게 그 돈을 왜 자기 부모에게는 쓰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후원을 하다가 경제적 사정 등으로 끊은 사람에게 그럴 거면 애초에 왜 후원을 한 것이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선행을 한 것에 대해 선행의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며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이지 피곤하다. 현실에서 마주치면 정말 갑갑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네이버 댓글란에 몰려 있는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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