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떤 (한국) 아이에게 철학 수업을 해주었다. 현재 사립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내년에 이튼 학교 진학이 확정된 아이다. 많은 부분 아이 엄마의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주제는 faith. 아이가 신앙인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belief와 knowledge를 구분하고 knowledge의 기반이 belief일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었다(말하자면 신앙의 가능 근거를 미리 마련해 주고 싶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둘을 구별해 낼 줄 알았다. 놀리지는 솔리드한 푸르프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다. 물론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가 강하게 엄습해 오긴 했다. 초등학생이 도대체 왜 안셀름의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에 대해 토론 해야 하는가? 그럭 저럭 토론을 끝마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얼마나 소화해 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에게 키에르케고르의 아브라함 사례를 가지고 키에르케고르와 신앙지상주의와의 관계를 논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키에르케고르를 신앙지상주의자로 분류한 교재에 대한 내 나름의 복수였다. 그러나, 물론 키에르케고르를 이런 식으로 다루어선 안된다는 등등으로 내가 교재에 불만족을 표한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학교 선생님한테 온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방학 동안 놀지 말고("anything is better than nothing") 뭐든 읽고 공부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리스어, 라틴어 단어 공부할 것, 시사 뉴스 흐름을 결코 놓치지 말 것 등등. 12살부터 16살까지의 필독 리스트도 첨부되어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도 있었고 "풍요의 사회"도 있었고 사무엘 헌팅턴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저녁을 먹는데 아이가 밥 먹는 내내 (내가 밥 먹을 때 보는) 시사 주간지에서 눈을 떼지를 않았다. 보통 같으면 한 마디 했을 텐데 어느 순간 나도 아이에게 특권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아이와 오스테러티 정책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물관 요금을 유료화하는 것은 싫다는, 다행히도 아이스러운 의견을 내주었다.

이런 것이 이른바 영국의 엘리트 교육이구나 싶었다. 영국은 엘리트 학교와 일반 공립 학교의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 동네에는 강이 흐르는데 일요일마다 요트, 커누로 분주하다. 강 주변에 어떤 사립 초등학교 요트부 요트 격납고가 있다. "공립" 학교 다니는 어떤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너도 요트부에 들었니?" 아이는 대답했다. "요트부는 사립 학교에나 있어요." 공립 "중"학교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배운다(나는 그걸 두고 장래 황색 저널리즘의 독자를 만들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비아냥 거렸었다). 반면 사립 "초등" 학교에서는 니체의 짜라투스투라에서 인용한 문구가 시험 문제로 등장한다. 공립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공부를 하루 정도 봐 준 적이 있었다. 사다리꼴의 면적을 구하라는 문제가 있었고 아이는 공식을 이용해서 잘 풀었다. 그러나 그 공식을 유도할 줄은 몰랐다. 아니,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공식도 유도할 줄 몰랐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수학은 언제나 100점이다. (한국 사람이니까.) 수학만 그런 것이 아니지만 예를 들자면 길기 때문에 각설하기로 하겠다. 내가 영국의 공립 교육 제도에 지극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결론만 이야기해 두자. 바보 만드는 교육...

영국의 이런 극심한 엘리트 교육과 공립 교육의 격차에 비하면 한국은 격차가 그다지 심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 제도가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는 영국은 계급 사회고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배경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보편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보편적으로 고학력이 요구되는 수업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한국 학생들 고생이 심하다. 그런데 엘리트들의 수준에서 보면 일부 선별된 영국의 엘리트 학생들의 수준이 당연히 한국 학생들을 압도할 것이다. 영국의 엘리트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이미 아이가 아니라 사회의 지성인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도 엘리트 교육을 강화해야 할까? 글쎄... 나는 여전히 제도적 엘리트 교육에 반대하는 쪽에 생각이 기운다. 초등학교때부터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을 논할 수 있었던 사람이 반드시 대학교때 처음 안셀름을 접한 사람보다 안셀름에 대해 더 나은 논문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영국 엘리트 교육의 표준과 같은 사람이랄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이 거둔 성취는 엘리트 교육을 밟지 않은 사람에게는 접근 불능의 수준인 것일까? 아마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소화하지 않은 유산은 단순히 짐일 뿐이라는 괴테의 말에 동의한다. 아직 자신의 관심과 입장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입력되는 자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사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사고를 계발하도록 지도받는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출력되는 사고는 현실과의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한낱 연습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습을 그렇게 오래해야 할 필요가 도대체 무엇인가?

더 해야 할 얘기가 있으나 줄여야 겠다. 결론만 말해두면 내 생각에는 엘리트 교육은 어떤 문화권들(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이러 저러다 보니 (역사성과 사회성 속에서) 만들어낸 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보통 교육을 상당히 낮은 수준에 방치한 채 이루어지는 엘리트 교육은 일종의 죄악이라고 본다. 엘리트 교육을 수행하는 사람도 이런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아까 말한 사립 초등 학교 엄마에 의하면 이튼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 언제나 제1순위의 덕으로 가르치는 것은 "겸손"이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