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가 재미있다길래 찾아서 봤다. 컨셉이 좋고 출연진이 호화찬란하더라. 재미는 있었지만 3회쯤 되니 나올 얘기는 다 나온 것 같았다. 더 볼 생각은 없다.

이 프로그램의 짜증나는 점. 나는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 테레비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꽃보다 할배는 전형적으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캐릭터를 잡는다고, 스토리를 만든다고 특정 장면을 세번이고 네번이고 반복해서 편집해 보여주는 데, 이거 정말 참기 힘들다. 나는 보면서, 다 알아들었으니 제발 그만해!를 외쳐대야 했다. 3회에서는 피디가 출연자 하나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약을 올리던데, 이런 것도 반칙이다(이런 프로그램에서 이런 것까지 지적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양념을 최소로해도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편집을 최소로 해도 좋은 그림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재미와는 별개로 꽃보다 할배는 초호화 캐스팅의, 질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서양에서라면 꽃보다 할배의 컨셉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할 것 같다. 나이는 있지만 사지 멀쩡하고 정신이 올바로 돌아가는 남자 넷이 왜 젊은 남자 하나에 철저하게 의지하며 여행을 해야 하나? 이쪽 사람들은 자아가 크다. 노인, 아이 아빠, 여자, 시아버지 이전에 무엇보다도 '나'는 '나'다. 그러므로 '너'는, 노인이고 아이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너'다. 예를 들어 여기 영국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잠자리 정리하고 세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부모가 아이 대신 이런 걸 해주지 않는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친척들이 놀러 왔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아이 엄마가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 씻겨주는 걸 보고 나는 문화적 충격을 먹었다.) 이런 물리적 독립성이 정신적 독립성을 수반하리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정신적인 독립성이 어른됨의 조건이다. 한국에서라면 (부모가 되어) 부모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어른이다. 그러나 여기 기준에서는, 예를 들어 지하철 빈자리를 향해 돌진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이가 있고 아이 부모이긴 해도, 여전히 미성숙한 인격의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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