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inoza Problem. 네덜란드 레인스브르크 스피노자거리 29번지에 있는 스피노자 하우스에 가보지 않았었다면 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폰으로 샘플을 받아 첫 몇 문장을 읽었을 때는 그저 그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 생각이 전혀 안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읽어나가자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내가 스피노자 하우스에서 집지기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가 소설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 하우스의 거의 모든 전시품들은 스피노자 자신의 것이 아니다,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도 어떤 사람이 스피노자 사후 작성된 물품 대장을 참고로 스피노자 당대의 판본으로 다시 사모아 놓은 것이다... 등등.

이 소설은 스피노자와 (나치의 이론가이며 뉘른베르크에서 교수형을 언도받고 처형된) 로젠베르크의 삶을 교차해서 그리고 있는데 그 접합점이 바로 스피노자의 장서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여기서 로젠베르크와 동일시되고 만다. 내가 스피노자 하우스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로젠베르크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의 장서 목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나도 그도 스피노자 철학의 원천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 예를 들어 스피노자에게는 콘트롤 센터로서의 자아가 없다. 내 사유 안에 두 개의 경쟁적인 관념이 존재한다고 하자. "나"라는 자아가 있다면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피노자의 철학에는 자아가 없다! 그러므로 관념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싸워 이긴 관념이) 스스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도대체 스피노자는 이런 철학을 어디에서 베꼈는가? (이 책에 보니 아인쉬타인이, 독창성의 비결은 아이디어의 원천을 잘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더라.)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지만, 로젠베르크와 동일한 이유로 시작부터 좌절을 겪어야 했다. 즉, 그 책들의 표지에 적혀 있는 라틴어, 히브리어 등을 알지 못한다는...-.- 물론, 로젠베르크가 스피노자의 철학의 원천을 알고 싶어한 까닭은 나와는 다르다.)

이 소설은 페이지의 절반 이상이 대화들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한 언어로 진술한다. 소설적 장치들이 많이 포기되고 있지만 덕분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일 것이다. (스피노자의 대화 상당 부분은 그의 저술들에서 인용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철학이 약화된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약간 간지럽다는 느낌. 물론,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내게도, 그리고 아마 그 어떤 독자에게도.)

소설에서 로젠베르크는 자신이 숭배하는 위대한 독일인 괴테가 유태인 스피노자를 숭배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아마 저자가 책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싶었다면 이 테마를 좀 더 발전시켜야 했을 것이다. 독일의 국가 철학자 헤겔, 헤겔의 적대자로 정반대편에 서 있는 쇼펜하우어, 그리고 누구보다도 니체, ( 그리고 스스로를 철학자라 칭하는 나치의 이론가 로젠베르크) 다시 말하면 나치의 위대한 철학적 계보의 가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스피노자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로젠베르크의 탐험 중에 속속 드러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스피노자의 철학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럿셀은 그의 철학사에서 스피노자를 가장 사랑스럽고 윤리적으로도 으뜸인 철학자라 소개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스피노자는 가장 사악한 인간으로 비난받았다고 덧붙인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사랑스럽고 조용한 은자의 철학인가, 아니면 냉정하고 독단적인 강자의 철학인가? 누구보다도 스피노자 자신이 자신의 철학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검색을 해보니 이미 독일어판과 프랑스판이 나와 있는 것 같더라. (스피노자의 대중성에 더하여) 나치 문제를 직접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렇듯 빠르게 번역판이 나왔을 것 같다. 적어도 내게 이 책의 백미는 로젠베르크의 탄생과 종말을 다룬 부분이다. 뉘른베르크의 재판 과정을 (비소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마지막 장을 나는 긴장감 속에서 매우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로젠베르크의 탄생을 다룬 부분은 소설적 장치들이 매우 허술한 이 책에서 소설적으로 가장 빼어난 부분일 것 같다.

반유대주의 연설을 한 소년 로젠베르크를 학교 선생들이 불러다 꾸짖고, 괴테의 자서전에서 괴테가 스피노자에게 경외를 표현한 부분을 암기에 오도록 과제를 준다. 로젠베르크는 암기를 잘해오지만, 자신이 암기한 문장들의 의미를 묻는 선생들의 질문 앞에서는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더하여 자신이 숭배하는 괴테가 그토록 존경했다는 스피노자라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하는 호기심은 그의 머리에서 결코 일지 않는다. 선생들은 낙담하면서도 안심한다. 로젠베르크가 치유불능임에 낙담하면서도, 그의 지적 능력으로 보아 유해한 인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He has a lack of curiosity that is, most likely, incurable."
"This young man has neither the intelligence nor fortitude to cause mischief by swaying others to his way of thinking."

물론, 그는 나치의 이론가가 되었고, 그의 손으로는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음에도 그 이론에 대한 댓가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