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식빵에 버터를 발라 커피와 함께 먹는다. 요리하느라, 설겆이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 아주 좋다. 음식 쓰레기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식빵은 아주 싸다. 중간 크기는 1 파운드 정도에 살 수 있다. (빵이나 커피는 한국이 분명히 더 비싸다.)

점심 때까지 집에서 공부한다. 점심 먹으며 텔레비젼을 본다. 제임스데이빗 카메론과 사르코지가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공동 기자 회견을 한다. 카메론이 이번 혁명은 전적으로 리비아 인민들의 것이며 혁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카메론 일행이 병원을 방문하여 손발이 잘린 리비아 사람을 위로하고 리비아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샛님처럼 생긴 영국의 수상과 그리 잘 어울리는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감동을 먹는다.

집을 나선다. 역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던 영국 애들이 차창 너머로 몸을 반쯤 내밀고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엄지를 아래로 향하는 손짓을 한다. 어제는 여자애가 그랬었다. 이러다 타겟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학원 가는 시간을 바꿔야 겠다.

역에서 가디언을 산다. 어제자 신문에서 유니셰프가 영국의 아이 양육 문제를 지적한 게 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값비싼 브랜드 상품으로 보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영국은 선진 21국 중에서 아이들 양육면에서 꼴지란다. 문제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다는 것. 결국 정치 경제적인 문제라는 이야기. 가디언의 다양한 컬럼이 유니셰프의 보고서를 한번씩 인용한다. 이쯤해서 나도 카메론 정권에 분노가 느껴진다.

(어제자 가디언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대학 학비가 비싼 나라는 미국, 한국, 영국 순이란다. 한국이 이런 순위에 들다니!) 

학원에서 라이팅 테스트를 한다. 외국인으로서 런던에 사는 장점과 단점을 쓰란다. 장점은 런던이 매우 국제화된 도시라는 데서 나온다. 각종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다. 단점은 런던이 아직 덜 국제화되었다는 점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든가, 젊은애들이 외국인에 적대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

작문을 제출하고 밖에 나와서 친구랑 전화로 떠들다 보니 시간이 지났다. 급하게 교실로 다시 들어간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강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디 사는가, 어디 산다, 교통비가 너무 비싸다, 서울 지하철은 국영인가, 아니 서울시에서 운영하든가 한다(맞나?), 영국은 다 사기업 거다, 레일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고, 차량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고 해서 요금이 비싸다, 매년 요금이 죽죽 오른다, 블레어가 수상할 때 왜 국영화 하지 않았나, 블레어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친 자본주의자다, 젊었을 때 뽕 맞고 다녔고 지금도 엘튼 존 등이랑 놀러 다닌다, 지금 카메론 정권이 토리냐, 보수당이냐, 그렇다, 정확히는 연정이다, 얘네들이 무수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 폭동도 그렇다, 신문에서 spending cut이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읽었다(요즘 가디언에 가장 흔하게 나오는 단어가 austerity다), 블레어는 대처랑 똑같다, 한국도 지금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는 진보적인 당이 정권을 잡을 거다, 한국의 진보라면 좌파당을 말하는 거냐, 아니다, 중도다, 블레어도 중도다, 중도는 안좋다... 이러는데 학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디언을 읽는다. 요즘 유로존은 그리스 문제로 난리다. 경제가 안좋으면 사회가 보수화되고 그러면 약자에게 가장 먼저 타격이 간다. 아까 낮에 나에게 소리를 질러댄 영국 청년들도 돈 많은 집 자제들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가난한 외국 유학생도 사회적 약자다. 나는 영국 사회가 좀 더 관대하고 여유롭고 진보적이기를 바란다. 이상이나 이론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안녕을 위해 하는 말이다. 똑같은 이유로 한국 역시 관대하고 평등하고 여유롭고 진보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사회에 대한 나름의 지표. 아이들과 부모들 간의 관계가 얼마나 넓고 깊으냐 하는 것. 그 전제. 부모들이 직장에서 해방되어 아이들과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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