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제9장을 읽고 있다.
1. (이하는 "미디어랩"에서의 인용)
-폴은 그의 저서 "자유의 기술(Technologies of Freedom)"에서 그 문제를 추적했다. "저작권의 인정과 로열티의 지불은 인쇄매체와 함께 생겨났다. 전자 출판의 도래로 이를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자출판은 18세기의 인쇄소보다는 오히려 저작권법이 적용된 적이 없는 구두 커뮤니케이션과 유사하다."
-정보의 대가로 무엇을 청구하며 어떻게 그를 거두어들일 것인가? 정보의 질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지 않을 것이다. 시시한 전화 한 통도 중요한 전화와 같은 값이다.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이나 가격은 같다. 꼼꼼히 읽히는 신문도 곧바로 아무렇게나 쓰이는 신문과 같은 가격에 팔린다. BBC가 방영하는 수준 높은 새로운 드라마도 재방, 삼방되는 통속 연속극과 비용의 차이가 없다. 이 중 어느 것도 불만스럽다고 해서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자들은 정보의 질에 대해서도 청구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의 질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에 대한 평가가 소급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원의 질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보원의 신뢰도에 따라 정보의 가치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체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가치를 보상받게 되어 정보원으로서의 신뢰도의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독서의 가치는 읽는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정보의 경우 그 가치는 그를 쓰고 말하는 사람의 평판과 전문지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누가 그것을 말하든 지혜는 지혜라고 믿고 싶었던 것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2. 예를 들어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우리는 곧장 그 정보의 신뢰도를 확인하려 든다. 만약 그 정보의 최종 출처가 어떤 개인의 블로그라면 그것을 토대로 진지한 대화나 사고를 벌이는 건 우스운 일이다. 만약 뉴욕 타임스라면? 우리는 진지해진다. 우리는 뉴욕 타임스를 신뢰성 있는 정보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3. 뉴욕 타임스가 신뢰성 있는 정보원으로 자신을 가꾸는 노력의 일단은 http://estima.wordpress.com/2011/05/28/nytpublished/ 에 소개되어 있다(한국어 사이트다).
4. 우리가 뉴욕 타임스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그리고 비트겐쉬타인적으로 표현하면, 언어가 실재에 잣대처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미는 직접성이다.
5. 그러므로 확실성의 한 요소에는 직접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직접성의 공간으로 신체를 말하든 실존을 말하든. 어떻든 그 공간은, 말하자면 언어와 실재, 사유와 연장... 등등이 직접 만나는 곳일테다.
6. 웹 콘텐츠 시장의 현황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 더 질 좋은 콘텐츠에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런 틈새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걸 현실화시키는 것은 정치인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닌 기업가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나 머독.
7.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게이트를 통해서만 음악을 구할 수 있는 꽉 막힌 구조의 기기인 아이포드를 시장에 내놓으며 음악을 훔치지 말고 우아하게 즐길 것을 권했다. 우아하게.
8. (아래는 "미디어랩"에서의 인용)
-"경제학자에게 있어 공공재란 부가되는 분배와 관련된 한계비용이 본질적으로 없는 것을 말한다. 가장 좋은 예가 TV 방송이 된다. 일단 고정된 제작비용이 발생하고 그 프로그램이 전파로 송출되면 그를 한 가구가 보든 2천1백만 가구가 보든 방송사에는 비용의 차이가 없다."(벤자민 콤페인의 "Who owns the Media?"에서)
9. 그러므로 음악을 훔친다와 우아하게 즐긴다는 도덕적, 법적 범주에서 크게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닐테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소유권이나 저작권과 관련하여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우아함이란 생태계, 혹은 문화적 토양의 고양과 관련 있는 말일 것이다. 예컨대, 음악을 우아하게 즐긴다는 것은 음악 생산의 문화적 토대에 기여하면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10. 다시 말하면 우아함이란 전체로서의 삶의 질과 관련있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후손에 DNA를 전해준다. 이것은 생식, 혹은 생존 차원의 문제다. 그 이상의 가치, 그 이상의 질, 그 이상의 문화적 토대를 전해주는 현재 나의 행위는 전체로서의 나의 삶의 우아함을 정의한다.
11. 그것이 바로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의 의미다.
"지적 탐구 부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한 가지 있어요.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너무나 빨리 상황이 변해서 80년대 후반 쯤 되면, 근본 통찰부터가 최고의 통찰이 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겠지요.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이요. 우리의 어깨를 타고 미래를 보는 겁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출처는 http://www.albireo.net/forum/showthread.php?t=13617&highlight=%BD%BA%C6%BC%BA%EA+%C0%E2%BD%BA)
12. 그러므로 선이란 그러한 가치의 생산이다. 그러므로 악이란 그것의 반대다. 그리고 선도 악도 가치도 모두 사회성이란 맥락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13.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발단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코나투스에서 시작하여 참된 것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짜여져 있으므로. 에티카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로 옮겨간다).
(아래는 "플랫폼 전략"에서의 인용)
1). 생리적 욕구
2). 안심 안전의 욕구
3). 애정이나 소속의 욕구
4).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5). 이상적인 자신이 되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구
14. 그러므로 다시 질문.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