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틴 한글 사전
가톨릭대학교 라틴어연구소 엮음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 2006년 2월
평점 :
라틴어 문헌을 읽고 싶어 하면서도 라틴어 문법서를 공부하기보다는 전화번호부를 외우는 것이 덜 고통스럽겠다고 투덜대는 게으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요령 부리기를 좋아하여 문법서 없이 사전만 가지고 라틴어 문헌을 뜯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가톨릭대학교 고전라틴어연구소가 편찬한 라틴-한글 사전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벽돌색으로 양장된 아담한 사전이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quousque를 찾아본다. "어느 정도까지"라고 되어 있다. 다음은 tandem이다. 표제 아래에 "quousque tandem ~ ...?(C.) 결국 어디까지"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 보인다. C는 키케로를 의미한다. 키케로의 카틸리나에 대한 연설 첫 부분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바로 키케로의 저 연설을 가지고 라틴어를 공부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 사전이 좋아졌다. 개별적인 단어들은 온라인 라틴어 사전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어형 변화까지 다 분석해 주는 소프트웨어도 공짜로 웹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전들은 관용어나 숙어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키케로의 연설에 있는 "Quem ad finem"의 경우 quem, ad, finem을 나열해 줄 뿐이다. 그러나 라틴-한글 사전은 "Quem ad finem?(C.) 언제까지, 얼마동안?"이라고 친절하게 해설해 준다. 자기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텍스트에 대한 해설을 사전에서 읽으니 행복해지더라.
그러나 이 사전은 나같은 완전 초보를 위한 사전은 아니다. finem을 사전에서 찾으려면 원형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걸 전혀 모른다. 사전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도 않다. 사전 찾는 법은 고작 문장 몇 줄에 불과하다. 부록으로 동사 변화표 같은 것을 담고 있지도 않다. 물론, 사전을 직접 뒤적여 보면 finis가 그 원형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덩달아 주변 단어들에도 눈길을 한번씩 주게 된다. 그러나 어떻든 이 사전은 초보용은 아니다.
내가 갖고 공부하는 키케로 영어 대역판이 꽤나 상세하여 아직 이 사전을 많이 참조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어를 찾아볼 때마다 행복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좋은 사전이라는 뜻이리라. 예를 들어 볼까? 키케로 연설에 "furor iste"라는 말이 나온다.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that madness"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that 정도의 뜻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iste를 이 사전에서 찾아보면 "가끔 경멸의 뜻이 있음"이라는 해설이 보인다. "canis iste 저 놈의 개"라는 부분을 읽고나면 만사가 분명해 진다. 오, 나는 키케로 연설의 뉘앙스까지 파악하고 있다! 눈물이 주룩 주룩^^
내가 다른 라틴어 사전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고, 라틴어에 완전 초보라서 단언할 자격은 안되지만, 적어도 내게는 훌륭한 사전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씩 장만하여 집안에 들여 놓을 것을 추천한다!
[부록: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words라는 라틴어 사전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words는 웹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공짜이다(google을 이용하라). words를 이용하면 finem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emacs에서 불러들여 사용한다.
=>finem
fin.em N 3 3 ACC S C
finis, finis N (3rd) C [XXXAX]
boundary, end, limit, goal; (pl.) country, territory, l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