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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평점 :
아주 옛날에 이 책을 읽고 이 블로그에 리뷰를 쓴 기억이 나는데 찾을 수 없다...
여튼 오랜만에(어쩌면 10년 정도 만에) 쇼펜하우어의 이 대작을 다시 읽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공감을 하느냐 여부를 떠나 읽는 재미를 주는 몇 안되는 철학 저작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미리 읽어놓아야 한다고 일러준 책들을 읽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그 책들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제1권의 중반부 정도까지 읽어낼 수 있으면 나머지 부분을 독파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두 가지 형이상학적 사유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첫째는, 세계가 나의 표상은 아닐까, 세계는 내가 꾸는 꿈이 아닐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 이 우주의 드라마는 어떤 우주적인 맹목적인 힘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기본적인 발상을 칸트 철학에서 빌어온 개념과 구도로 짜맞춘다. 쇼펜하우어는 칸트 철학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고, 칸트에 많이 빚진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내가 읽기로 그의 철학과 칸트 철학은 별 연관이 없는 것 같다. 개념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둘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철학의 주된 기조, 그 뼈대와 분위기는 인도 철학에서 직접 빌어온 것 같다. 인도의 철학자가 서구에 유학하여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쓴 책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말하면 쇼펜하우어가 좋아할라나?)
이 책의 백미는 예술론을 다루고 있는 제3권, 그리고 윤리학 일반을 다루고 있는 제4권이다. 3권까지는 어느 정도 도식적이지만 4권의 첫 중반은 매우 풍부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4권의 나머지 절반은 대놓고 인도 철학적이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는다. 4권의 첫 중반이 풍요한 사상적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그리고 있는 구도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러한 구도를 전제하지 않고도 충분히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몇몇 현대 철학자들의 영감의 원천이 거기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 스스로 말하듯 아주 단순한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책의 부피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니 무수한 반복은 피할 수 없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자는 페이지 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템포에 맞추어 아낌없이 하고 있구나. 그러므로 독자로서 이 작품을 최대한 즐기는 방법은 그 여유로움을 느슨하게 따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여유로움은 도대체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툼한 저작을 몇 십 페이지로 요약했을 때, 그 요약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정신적 경험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마치 관광 버스를 타고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들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경험일 것이다. 노고단에 버스를 타고 오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곱 고비를 기어오르며 거기에 도달하는 길도 있다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문명의 진화가 이 후자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