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저녁 8시면 영국 사람들은 집 앞에 나와,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NHS(영국의 국가 의료 체계) 의료진 등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고 등등을 한다. 오늘은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응원 대열에 참여할지 모르겠다. 그만 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바램이다.


나는 그 박수 행사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동양에서 온 개인주의자인 나에게, 영국 사람들의 이런 집단주의적인 행동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내게는 이 괴상한 행사가 코로나 사태에 대해 딴 소리를 내지 말라고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죄다 길가로 나오다보니 누구네가 박수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는지도 금방 드러난다. 솔직히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없지 않다. 


영국 정부가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고 있다. 나의 결론은 영국 정부는 국민들, 의료진들의 안녕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온갖 거짓말과 무책임과 뻔뻔함이 난무한다. 대표적인 것 하나씩만 적어보자.


거짓말: 현장에서 보호 장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도 영국 정부는 재고가 충분하다고 2, 3주 동안 거짓말을 했다. 주문한 물품이 해외에서 올 때까지 거짓말로 버틴 것이었다. 


무책임: 영국에서는 아직도 마스크를 쓰느니 마느니 논쟁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마스크를 쓰는 게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려면 어디선가 마스크를 구해와야 하는데 영국 정부는 그게 귀찮은 것이라고 나는 판단하고 있다. 


뻔뻔함: 영국 보건부 장관에게 영국 정부의 코로나 대처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장관 왈, 영국은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세계에서 최고로 준비가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 의료 붕괴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코로나에 감염되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다. (런던에 수 천 병상 규모의 병원이 얼마 전에 개장했다. 그런데 그 병원의 병상 중 현재 이용되고 있는 것은 고작 30개 정도란다. 병상은 있는데 의료진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안좋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망자 수이다. 공식적으로는 2만 명 대이지만, 몇 칠 전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4만명 이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었다. 영국은 그제까지만 해도 요양원이나 지역에서 사망한 사람들 수를 공식 사망자 수에 넣지 않았다. 이러니 영국 코로나 사태의 전모가 어떠한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 의료진에게 보호 장구는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의료진에 대한 바이러스 검사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사망자 추이는 어떤지, 등등...


개인적으로... 한국과 영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 모습을, 어떤 통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었다. 말하자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 그러나 지금 깨닫는 것은 그런 통시적 관점(철학자들이 좋아하는)은 이런 사태에서 극히 무력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이토록 성공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거의 전적으로 한국의 현 집권 세력이 민주당 계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나 이명박이었으면 지금 영국 정부처럼 쉬쉬하고 감추기에 바빴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도 지금과 다른 정권이었으면 이토록 무능하고 무책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튼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희생자 수를 낳게 된 것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상태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어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그 쓰나미가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것도 안했기 때문이다. 엊그제 비비씨에서는, 영국 정부가 그 기간 동안 의료진용 보호 장비를 비축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비비씨같은 언론에서도 영국 정부의 준비 상태에 대해 전혀 취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영국 국민들도 그에 대해 아무런 요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영국은 평온하다. NHS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인 100세 노병에게 생일 축하 카드가 백 만통 넘게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양에서 온 개인주의자에게는 이런 것들이 죄다, 여기 말로 레드 헤링red herring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진정한 관심사에서 주의를 자꾸 딴 데로 돌리는 것이다. --- 그러므로 영국에서 나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국가적 사태에서 최악의 결과를 내고 있는데도, 이 다원성의 사회에서, 그 수 많은 전문가들과 이익 집단들이 산재해 있는 곳에서, 안개처럼 뽀얀, 회색의, 정체도 불명한 단일한 의견만이 이리 저리 떠도는 것이 믿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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