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들 서문문고 124
장 콕토 지음 / 서문당 / 198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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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전위 예술가로 유명한 장 꼭또의 소설이다. 꼭또의 작품을 접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인의 피>같은 초현실주의 영화 역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고, 그 영화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나 스틸컷만 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이름만 허다하게 듣고 정작 진품을 구경조차 못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일 개인의 힘으로 안 되는 건 나라에서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가 있고-'라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한 구절이 아이러니컬하게 다가온다.

여하튼 제목에서도 그 분위기가 느껴지듯이 이 작품은 세상과 단절된 채 자폐적인 삶을 살다 자살로 끝을 맺는 오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아로 남겨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죽음들을 체험하고 끝내 그들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 전반에서 사건을 진행하는 계기들이 모두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암울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오누이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자멸적인 대사와 행동, 비밀과 거짓말은 이것이 과연 아이들의 세계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들의 일탈과 자멸에는 어떤 논리적인 설득력도 없다. 그들의 말과 행동, 내면은 제각기 분절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묘한 동경과 경멸을 품은 채 새장 속의 새처럼 자폐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꼭또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는 부조리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구현하는 존재들이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섬뜩하고 차가운 느낌은 더한다. 그래서 무서운 아이들일까? '떼리블 앙팡'이라고 불려지는 세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예전 판 문고본이라 번역에 있어 의고투가 완연하지만, 번역에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 소설의 가치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꼭또'라는 점에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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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디로 가고있는가
롤랑 바르트 / 강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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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내가 한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비해 몇 권의 책이 더 번역되기는 했으나, 초기의 핵심적인 저작인 <글쓰기의 영도>나 <S/Z>는 번역되지 않는다. 주요 저작이 번역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어 보인다. 번역되지 않은 그의 저작은 대체로 문학 비평 영역에 놓이는 것으로, 출판의 상업성을 고려할 때는 수지 맞는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출판사의 역량에 맞기기에는 버거운 책들에 대해서는 공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 나는 바르트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는데, 번역의 수준과 정도는 한 나라의 지식 문화를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문학은 어디로 가고있는가>는 후기 바르트적 관점을 견지한 바르트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대담 형식인 데다가 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생각하고 문화 일반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전 바르트를 읽을 때의 감회를 가지고 읽어나가다 보니 바르트적 문제 의식이 새롭게 다가온다. 문화 생산물의 저자성, 그리고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읽을 수 없는 텍스트, 저자와 독자의 육체성, 쾌락과 향락 같은 문제 의식은 60-70년대의 낡은 사유 틀이 아니라 현대성을 문제삼는 경우라면 언제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후기 바르트는 다소 낭만주의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식과 과학성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이 책에서 보여지는 바르트는 한층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바르트의 사유 폭에 조금 가까워진 탓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여하튼 바르트를 읽고자 하는 결심을 굳힌 사람이라면 두꺼운 개론서를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선택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바르트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문제 의식을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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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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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의 책을 읽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서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과 미적 체험에 있지 않을까 싶다. 평소 이해하기 힘들었던 분야의 지식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열어 주는 책이야 우리 주변에 넘쳐 나지만, 해당 분야의 문외한까지 끈기를 잃지 않게 사로잡을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멋진 책 한 권을 접하면서 흥분하는 경험은 독서 애호가로서는 적잖은 기쁨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 자랑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평소 나는 자연과학의 문외한이라는 사실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생각하면 '저네들은 뜬구름 잡는 몽상가나 현실 부적응자일 거야'라며 가벼운 조소를 날리는 것이 나이다.(나 역시 그들과 호형호제할 수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모처럼 결심을 하고 이 쪽 분야의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눈에 들어온 책이 이 책이다. 유클리드, 이름은 뉴스에서 대통령 이름만큼이나 많이 들었으면서도 정작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도 아는 바 없었고, 아인슈타인이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큰 관심도 없었던 터에 기하학의 역사를 개괄하는 이 책은 나에게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이 책은 해당 방면 문외한으로서는 그다지 쉽지는 않은 책이다. 다 읽고 나서도 기하학의 수 천 년 역사에 대해서 개략적인 윤곽만 잡았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는 독서 후 굉장한 포만감을 느꼈다. 지식의 차원에서 보면 사람들의 생애를 약간 훑었다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과정 자체를 충분히 즐겼던 셈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전문 지식을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일은 전문지식 그 자체에 깊이 탐닉하여 새로운 성과를 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대중서'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전문 지식을 지루한 감 없이 전달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의 저자 몰로디노프는 일급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거의 천부적인 개그맨이다. 실재의 추상에 의존할 수 없는 기하학의 특성상 공리나 명제만을 다룬다면 그 얼마나 지루할까.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아들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할리우드 코메디의 기지 넘치는 대사를 연상할 정도로 센스가 대단한 사람이다. 기하학 책을 읽으면서 박장대소한다는 일이 과연 상상이나 가능한 일일까. 이 불가능한 사건을 현실화하고 있는 이 저자의 재치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좋은 책은 관심을 증폭시키고 새로운 책을 찾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 책은 독서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유하고 독서의 즐거움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좋은 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이번에는 무슨 책을 찾아볼까 즐거운 고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이 책을 출판한 까치 출판사는 이 나라의 지식 보급 역사에서 길이 남을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까치는 존경스러운 출판사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 사람 좀 이상한데...'라며 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리이다. 까치 출판사 책을 사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읽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다시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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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연구
손정목 지음 / 일지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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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저자가 추구해 온 일련의 연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희귀한 일제 시대 문헌과 일본 자료를 섭렵하여 정리하고 해석을 가하는 일을 십여년 넘게 추진하여 탄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하니, 저자가 들인 공력을 생각할 때 이런 책이 나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것같다. 이 책은 상업적 출판의 기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순수한 연구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책들과는 그 종류를 달리하는 그야말로 '역저'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시대 하면 타율적 근대화 속에서 종속적이고 기생적인 생활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시대 역시 요즘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총독부가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데 꺼리지는 않았으며 총독부 역시 하나의 정부로서 고심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고 있다. 물론 총독부 정권의 위압적이고 안하무인적 태도야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일제 시대 서울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도와 서민들의 생활 양태를 각종 자료를 통하여 고구하고 있는, 지금 현재 우리가 이와 비슷한 종류로는 책 자체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도로 교통, 주택, 직업, 매춘 등 다방면의 도시 양태를 통해 그 당시 우리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특히 매춘업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이 책에서 단연 빛나는 부분이다. 최근 공창제 부활을 운운하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주장이 있다는 사실만을 접수하고 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일제 시대 공창제가 일제의 교묘한 기획 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고서는 현재의 논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 책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성과이므로, 적어도 대학생 이상이라면 한 번쯤은 넘겨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회 경제사 방면으로는 더할 나위 없지만 그 외 문화적 측면이랄까 여가 생활 같은 문화인류학에 해당할 만한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까지도 저자에게 바란다는 것은 선을 넘은 요구라 하겠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자가 머지 않은 장래에 좋은 책으로 내줄 것을 희망한다.

비록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대이기는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백지장같은 시간이 일제 강점기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일제 시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때, 이 책을 비롯한 다방면의 역사 연구는 우리의 자기 이해가 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손정목 선생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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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작품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진웅기.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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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감독 쿠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원작자로 잘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이 세계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놓는 작가 중 단연 윗자리에 놓인다. 영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의 <라쇼몽>과 <덤불속> 이 두 작품을 기초로 각본이 짜여진 것인데, 이런 사실은 실제로 소설을 접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하나의 사실에 접근해 가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서 진실이란 자명한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주관적 욕망이 투영된 거울이라는 점을 테마로 삼은 이 작품은 거장의 놀라운 형상화 작업을 통해서 훌륭하게 묘사되었다.

아쿠타가와는 심신의 병으로 인해 30대에 자살한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소화 10년 이후로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해서 해마다 신인 작가에게 상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한번씩 그 해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아쿠타가와를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일본 문학가 하면 그가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 세계를 접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같다.

우리에게는 아쿠타가와보다는 소세끼가 한층 친숙한 듯 보이는데, 이는 아쿠타가와의 다소 병적이고 심각한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점이 없지 않으나 '카파'같은 작품은 서구의 명작 동화 이상으로 흥미 깊은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작가의 어두운 자의식마저도 미학적인 장치를 통해서 드러내는 아쿠타가와의 성향은 그리 무겁지는 않은 편이다. 일본 문학의 높은 품격을 느끼는 데 있어 아쿠타가와, 소세끼, 그리고 일군의 자연주의 문학자들은 좋은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한동안 일본 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올 여름에는 손에 꼽기만 했던 작가들을 죽 일람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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