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죽어가는 땅 위로
우리들의 만신창이 땅 위로
오늘도 매캐한 바람이 불고
오늘도 뿌연 산성비 내리고
푸른 하늘을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고운 미리내를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마른 땅에 꽃을 심는 이 누구인가
어둔 땅에 길을 내는 이 누구인가
오늘도 어디선가 검은 강은 흐르고
오늘도 어디선가 아기들이 태어나고
푸른 하늘을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싱싱한 소나무를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지
그 어느 날에나 올까 평화의 아침은
떠날 것들 다 떠나간 그 빛나는 아침은
작사,곡 백창우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983563
지난 봄, 대추초등학교에서 열렸던 비닐하우스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꿈도 꾸지 않았던 '빈 집'에 고무되어 마지막에 다 함께 이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정겹고 익숙하다는 느낌이었다. 원래 알던 노랜가 했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나팔꽃의 세번째 음반에 실려있다. 나팔꽃은 아시다시피... 김용택, 안도현, 도종환 등등의 시인들과 백창우, 김현성, 홍순관, 이지상 등등의 가수들 그리고 기타의 사람들이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느슨하게 활동하는 시노래동인의 이름이다. 나름 세레머니용으로 만든 노래같기도 하지만 처음 마주쳐도 금세 눈이 익는 정겨운 시골 풍경처럼 편안하고 좀은 애틋한 노래다. 그리고 그제 학교에서,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었다.
학교에서 열렸던 신영복 선생님 퇴임 기념 콘서트. 오락가락하는 비로 높아진 습도만큼 불쾌지수도 높아진 사무실에서 내내 쩔은 땀에 시달리다보니 귀찮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학교 사람들 얼굴도 볼 겸 장사(924 4차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 모집)도 할 겸 퇴근 후 학교로 향했다. 물론 나는 초대(장) 받지 못한 손님이었지만 학교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들이 그렇듯 위화감이나 거리감 같은 것 없이 편한 마음으로 나선 걸음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부터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같은 책을 읽으며 예전에 느꼈던... 차마 감동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송구한, 도저한 존경심의 몸서리 속 저 먼 곳의 신영복 선생님. 학교를 다니며 심심찮게 교정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수업도 듣고 하면서 그 존재 자체에 압도 당하며 느꼈던 피상적인 신비감과 거리감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물론 나는 여전히 수많은 독자와 학생 중의 이름 없는 하나일 뿐이지만, 어렴풋이나마 한 공간에 속해있다는 물리적 친근감과 옅어진 거리감은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만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의 주위에는 그야말로 만인이 있다. 그는 만인에게, 나의 혹은 우리의 누구가 되는 것이다. 당연한 걸. 그래서 그제, 신영복 선생님은... 이학수의, 현정은의, 김근태의 그리고 또 누구누구의 신영복 선생님. 이름을 들자면 끝도 없을 것이고, 진정 이것이 더불어숲? 너무더불어숲이구나, 하는 불퉁한 마음에 주제 넘게 씁쓸해졌다. '다 친구'라며 냉소를 날리던 선생님이 문득 그리워졌다. 공연 중간 잠시 내린 비에 나눠준 비옷을 입은 초대 받은 사람들과 여기저기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비를 맞으며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 형이하학적인 반응이지마는... 바로 따라붙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함께 맞는 비'가 무색해 괜히 혼자 낯을 붉혔다.
하여간 불만 많은 년은 뭐 좋은 걸 봐도 이렇다니까, 라고 말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내 느껴지는 착잡함에 제법 심란했다. 물론 그런 자리 자체가 당사자인 신영복 선생님께는 무척이나 고사하고 싶은 낯 뜨거운 자리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돈도 줄도 없는 너무 작은 학교, 성공회대가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고 늘어지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 현실은 거기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교수중창단 더숲트리오는 '상록수'를 불렀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돈 없고 줄 없는 학교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은 학교발전기금을 향한 절절한 갈구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이렇게 주절대지만 나 역시 시건방지게 굽어보며 떠들어대는 건 아니다. 그냥 빈정거리고 말기에는... 이게 현실이구나, 너무 외롭고 높고 씁쓸했다.
그래도 장사익 아저씨의 절창, 한영애의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노래까지, 좋은 것도 많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렬한 현혹 앞에서 늘 무릎 꿇고는 했던, '이름 난 좋은 사람'을 향한 나의 흘깃함에 대한 급반성. 아마 지금 마음이라면, 난 이전과 다름없이 '안전한' 고인을 주로 사모할테지만 이름 난 채 살아가는 누군가를 새로 추가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참,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이 노래는 그제의 학교보다는, 추웠지만 오붓했던 대추초등학교의 비닐하우스에서 훨씬 더 정겹고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