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작사,곡 이제하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115069

 

 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참 좋다. 친족의 90% 이상이 경상도민인 관계로 어려서부터 일관되게 전라도에 열광해왔지만, 의식 이전에 익숙해진 것들이 근본적으로는 영향을 미치고 있던 탓인지 유독 목소리만은 경상도feel에 혹하고는 한다. 아쉽게도 또래 중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 심지어 지금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 대다수가 격하지 않은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들이다. 이제하님의 목소리는 사실 노랫말에서도 선연히 느껴질 만큼 격한 사투리를 자랑하지만, 이마저도 참 좋다.

 이 음반과 시집을 손에 넣은 건 꽤나 예전 대학로 어느 까페에서였는데, 그게 어디였는지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우스개처럼 '오프대학로'라 불리우던 학전-라이브1관 뒷골목에 몰려있던 자그마한 까페들 중 하나였던 것도 같고...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보니, 그 중 '깡통차기'였던 것도 같지만, 한편 여전히 살아남아 오히려 의아한 반대편 블록의 '작가폐업'이었던 것도 같다. 이제하님이 문을 열었다는 '까페 마리안느'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막상 대학로엘 나서면 늘 잊어버린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졌지만 그의 소설 제목을 딴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라는 까페 간판을 보며, 혹시? 하며 괜한 친근감을 오래도 품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난 그의 책을 얼마 읽지 않았다. '소녀 유자'와 '유자약전'을 이상한 의무감에 휩싸여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게 벌써 십여 년 전이고, 후에 몇몇 작가와 함께 낸 여행산문집을 읽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게 이제하라는 이름은, '빈 들판'에 담긴 목소리로 더 친근하고 처연하게 다가오는... 진한 경상도 억양으로 노래하는 사나이, 비슷하다.

 문단의 한~참 어른인 게 벌써 오래 전부터겠지만 난 그 줄은 아니니 해당사항 없고, 처음 들은 날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껏 모란 동백 꽃 피는 시절과 무관하게 마음이 쓸쓸할 때면 늘 떠오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노래는 스스로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나레이션(?)이 덧붙여진  live 버젼도 따로 실려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청춘과 나이듦, 인생 뭐 이딴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모든 게 참 쓸쓸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즈넉한 쓸쓸함마저 땀에 절어 너저분해지는 너무 더운 날들은 이제 물러갈 모양이다, 내일이 처서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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