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용히 들어봐
물이 낮은 데로 자연스레 흐르고
바람은 잔 가지 사이를 지날 때
가장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그대는 왜 불도저가 밀어놓은
황토 벌판에 쓸쓸히 서서
듣는 이 없는 노래를 부르며
날로 외로움 더해가는 거야
어차피 사는 일이 마찬가질진대
누구는 열심히 작업하며 기쁘고
누구는 또 세상의 아픔 짊어지고
스스로 침몰해가는 기쁨 가지는지
그대는 말해
세상은 이렇듯 분주해지고
사람들은 물 흐르듯 밀려오고 가는데
그대는 이 쓸쓸한 들판에 서서
지고천 흐르는 뜨거운 바람되어
아무런 걸릴 것 없이
서천으로 뻘겋게 기우는
구름 보고 노래하면 무얼해
엄봉훈 시, 작곡 한동헌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7217606
1980년에 녹음했다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두번째 음반에 첫번째로 실려 있는 곡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98년에 복각한 씨디인데 3년 전 청개구리 모임에서 김의철 아저씨한테 선물로 받아 그 여름과 가을 내내 일상의 배경음악 삼았었다. 군부독재의 서슬 퍼렇던 80년 여름, 그들이 얼마나 간곡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간을 졸이며 노래를 퍼뜨렸을까를 생각하면 싸구려 감상을 잔뜩 실어 듣고 또 들었던 게 미안스럽고 송구하기도 하지만... 엄혹한 시절 저항의 노래 역시, 노래는 노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노래의 힘은 국경만 초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안치환도 어느 음반에선가 다시 불렀다는데, 난 김광석 아저씨의 '나무'를 너무나 좋아했던 탓에 그 곡을 붙였던 한동헌님의 목소리가 괜히 더 절실하고 진정하게 들려서 좋다. 듣다 보면 절절한 가사에 괜스레 마음이 처연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되다보니 혼자서는 적잖이 '신개발지구에서'에 대한 향수를 뿜어댄 편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여름보다 훨씬 전부터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즈음 우연히 퍼슨웹에서 인상적인 한동헌님의 인터뷰를 보았고, 오락가락하며 자기고백을 잔뜩 토해놓은 인터뷰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노래는 그런 노래인가봐 하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