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을 때에도 불행한 사람들을 안타까워 할 줄 알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눈부신 미래를 꿈꿀줄 아는 작가님의 예쁘고 귀여운 마음이 돋보이는 여행기 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곤 하지’라는 작가들의 허세가 없어 좋았습니다. 오히려 여행을 싫어하고 앞으로도 여행은 안가고 싶다는 작가님의 다짐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상태가 너무 신기하지 않은지? 꼭 개인적 얘기,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 지구가 초속30킬로미터로 빙글뱅글 날아가고 있는데 그 위에서 온갖 동식물이 38억 년 동안 생겨났다 멸종했다 하며 보글보글 지내왔다는 것이……. 우주는 죽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어떻게 다들 살아 있지? 거의 매일 놀란다. 심장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었다니?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호흡이 계속된다니? 산책만 나가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환경주의자가 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특히 동료 작가들에게)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일년에 스무봉지 정도의 라면을 먹는 정도로 셈이 되니까요. 하지만 주변에서 모두 칭찬받을 정도로 라면을 잘 끓이는 편이고 라면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최선과 진심을 다합니다. 우선 배고프니 먹을 게 없는 상태에서는 라면을 먹지 않습니다. 정말로 라면이 먹고 싶을 때 라면을 먹지요. 딱 1인분만큼의 냄비에 물을 끓이고 물이 끓는 동안 계란을 준비합니다.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를 완벽하게 분리해 흰자에는 파를 넣어 풀어 라면에 넣고 노른자는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라면냄비 가운데로 모셔줍니다. 간단하게 먹으라고 만들어진 라면에 온갖 번잡스러운 과정을 거쳐 맛있게 라면을 먹는 것이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라면을 먹는 그 시간을 누군가에게 보였을 때 왠지 한심하거나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요. 작은 한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나를 아끼는 마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유정 작가님이라면 새로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쓰실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실제하는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신 걸까요? 읽는 내내 그저 정유정 버전의 ‘꼬꼬무’를 보는 듯 했습니다. 차라리 실재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면 작가의 惡에 대한 이야기중 손꼽힐 만하였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미미여사의 현대물은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시대물은 영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몇번을 읽어보려 했지만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 완독이 어려웠지요. 하지만 얼마전 ‘눈물점’을 재도전 한 것을 시작으로 에도시대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장편이라 하기에는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의 짧은 사건들이 담겨 있어 읽기가 수월했습니다.그리고 제가 에도전문가가 되지는 않을 바에야 어려운 단어는 그냥 건너 뛰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음을 알게 되니 이야기가 더욱 재밌어졌지요. 게다가 등장하는 사건들은 무시무시하기도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 인물들은 어찌나 다정한지 같이 차한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 기분입니다.그리하여 새로 시작하는 미미여사의 시리즈를 놓칠 수 없었지요. 이전 시리즈는 방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라 정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귀여운 기타군이 있어 더욱 활기차게 느껴집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기타도, 마쓰바 마님도 무척이나 다정하니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어지고요. 특히 이번에는 번역자님이 뒤편에 간략하게 에도시대에 대해 설명해 주신 부분이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보았다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