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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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오르한파묵 이니까’부터였으나 점점 ‘오르한파묵 이라도’로 바뀌는 마음은 책두께 때문이었을까요? 추리소설의 플롯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하고 그 두께에 비해 서사의 시간이 짧아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가상의 섬인줄 알면서도 자꾸 민게르섬이나 여러 인물들을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작가의 필력때문이겠지요? 중간중간 나오는 역사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도 상상만 하게 되니 그 그림 역시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전염병이 소재이다 보니 현재의 상황을 떠올리며 읽게 되고 21세기에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대처방법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지금도 세상에서 힘들어하며 살고 있고 저 역시 그 중 하나일테니까요.
책을 덮고 느낀 소감은 ‘역시 오르한파묵이야!’라는 것보다 ‘아니! 내가 이 책을 다 읽다니!!’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 135페이지에 오타가 있습니다.
사십 일은 두 주로 —> 십 사일은 두 주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캬밀 파샤는 이즈미르에서 전염병 관련 뉴스를 자유롭게 싣도록 했고, 그것은 잘한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혹시 민게르에서 발간되는 신문들에 전염병 소식이 실리면 더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이불안해하고 상점 주인들이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야 합니다. 그래야 방역 조치가 시작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지요."

그가 통치한 지난 오 년 동안 총독 파샤는 도시가 그토록 쓸쓸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봄이면 오렌지나무가 꽃을 피우고, 거리에 인동덩굴, 보리수, 장미 향기가 가득 차고, 새와 벌레와 벌들이등장하고, 갈매기들이 지붕에서 미친 듯이 짝짓기를 하던 즐겁고활기찬 분위기 대신 정적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 없는 사람과 건달들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희롱하던 길모퉁이, 신사들이 웃으면서 잡담을 나누던 거리 카페, 룸 부인과 하인들이 세일러복을 입은 아이들을 산책시키던 인도, 그리고 총독이 개장한하미디예 공원과 ‘파크 두 레반트‘라는 이름의 유럽식 공원 두 곳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역사에서 ‘성격‘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를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역사는 어떤 개인보다 훨씬 더 거대한 바퀴다. 일부 역사가들은 역사상의 사건들에 관해중요한 인물과 영웅들의 성격에서 설명을 구한다. 우리는 역사 인물의 성격과 기질이 때때로 역사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특징을 정하는 것 역시 역사 그 자체다.

하지만 질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은 서로 껴안거나악수조차 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여느 때와 달리 손등에 입 맞추기, 상대의 손을 이마에 갖다 대대며 인사하기, 포옹하기 같은 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에 결혼식은 짧게 끝났고, 행복한 신부와 신랑은 곧 마부 제케리야가 모는 총독파샤의 랜도 마차를 타고 스플렌디드 호텔로 향했다.

일상에서 거짓말과 징조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희망을 찾지못하면 깊은 ‘체념‘의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와 논쟁한적이 있는 이 정신 상태에 대해 누리는 ‘운명주의‘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 생각에 ‘운명주의‘는 아니다. 왜냐하면운명주의를 믿는 사람은 위험을 알지만 신에게 자신을 맡겼기 때문에 조치를 하지 않는다. 체념에 휩싸인 절망‘인 경우 위험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 부마 의사는 때로 총독이 하루의 업무를 마친 다음 ‘이제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혹은항상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인력 혹은 여력이 모자라거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잠시의 행복과 위안을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는 것임을 총독 파샤나 콜아아스나 누리나 이제는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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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2022-04-2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무래도 오타 건은 ‘십사 일=두 주‘라는 뜻이 아니라 ‘사십 일이라는 격리 기간이 두 주로 줄었다‘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해당 단락 두 번째 줄인가에 격리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면서 ‘사십 일‘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vooc 2022-04-26 15:4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 문해력이…ㅠㅠ
 
[전자책] 요즘 사는 맛 -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요즘 사는 맛 1
김겨울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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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마주하는 여러분의 첫 식사가 조금은 달리 보이길 바랍니다. 부디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닌 나를 챙기는따뜻한 감각으로 자리하길 빕니다. 결국 모든 건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니까요.

행복은 웬만해선 먼저 노크를 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문을열고 나서야 겨우 만나지는 게 바로 행복이다. 말 그대로 다행스러운 복. 별거 아닐지라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슬며시 감고 안도하는 마음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뻘짓을 한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노력은 쉽게 뻘짓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뻘짓 없는세상은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내 뻘짓이 뭘 캐낼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하고싶은 뻘짓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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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에 따르면, 우리는 침팬지혹은 코끼리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인간의 특질을 기준으로 평가해온 관행을 재고해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침팬지와 코끼리의행동 양식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동물을 판가름하려는 시도 또한재고되어야 한다. 염소의 생각과 감정도 생각과 감정이다.

그렇다면 닭의 슬픔은 염소의 슬픔이 아니다. 닭의 슬픔은침팬지의 슬픔도 아니며, 코끼리의 슬픔도, 인간의 슬픔도 아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그런데 종과 종 사이의 차이 못지않게 같은종 안에서 나타나는 개체 간 차이 또한 중요할지 모른다. 20세기동물행동학이 얻은 위대한 교훈은,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이치는 하나가 아니라는 진리가 침팬지나 염소, 닭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타라는 벨라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타라는 무덤으로부터 90미터 정도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나무 몇 그루 뒤에 있었다. 하지만 끝내 오지는 않았다. 타라는 이미 작별 인사를 한 게분명했다. 이 장례식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행사였던 것이다. …다음 날 직원들은 타라가 한밤중에, 아니면 새벽에 벨라의 무덤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가슴 아파했다. 벨라의 무덤근처에 오래되지 않은 코끼리 배설물과 곧장 벨라의 무덤으로향한 듯한 코끼리 발자국이 있었던 것이다.

공물의 우울증, 자해, 자살문제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가운데, 우리는 두 가지 서로 연관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우리 종이 이 문제의 일부이며 해결책의 일부도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민 어린 마음은 콘월에서 좌초한 돌고래 10여 마리의 목숨을 구했고, 코끼리 상아 밀렵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들을 단단히 뒷받침한다. 연민 의식은 현재 어딘가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코끼리,고등 유인원, 돌고래를 포함한 많은 동물이 야생 보호 구역까지는아니더라도 최소한 생추어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운영되는 동물원이라 해도 이 동물들에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제공해줄 수는없다. 더불어 담즙 농장은 곰들을 감금하고 어마어마한 해악을 가하는 곳으로, 세상에서 아예 사라져야 마땅하다.
둘째는, 동물의 슬픔과 관련지어 말하자면, 우리 인간이 동물의 슬픔 현상을 연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동물들에게 슬픔을 안기고 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이건 포획된 동물이건 동물들을 스스로와 다른 개체들의 고통을 절감하고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로 밀어넣은 것은 우리다. 중국의 담즙농장에서 어미 곰이 벽에 몸을 부딪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어미 곰을 살해한 것은 인간의 탐욕과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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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새의 선물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5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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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보았습니다. 진희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 안에서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저는 이제 어른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진희는 그저 되바라진 아이의 얼굴로 “세상이라는 건 이런 거야”’라며 또랑또랑하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진희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어때? 세상은 그렇지?”하며 묻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내가 어른들의 비밀에 쉽게 접근한 것은 바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어린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루기 쉽도록 어린애를 그저 어린애로만 보려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애로 보이기 위해서는 예쁘다거나 영리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특기만으로 충분하다.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스스로 어린애임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린애답게 보이는것이다. 어린애로 보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비상시에는 강력한 무기도 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이제 성숙한 나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린애의 책무인 ‘성숙하는 일‘을 이미 끝마쳐버렸으므로 할일이 없어진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어린애로서의 삶이 지루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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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님의 글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공부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추석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이번 책에서도 정치라는 것은 하나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정치가들과는 평생 만나고 싶지도 않은 저에게 그럴 수 없음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알려주시네요.
교수님의 필력으로 쭉쭉 읽어 나갔지만 뒤로 갈수록 너무 드립력에 힘을 주시는 것 같아 오히려 지루해져 아쉽습니다.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사람과 함께 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비록 엎어진 수레를 방관하거나 과일을 밟고 다니거나 등 뒤에서과일을 깎아 먹거나 굴러다니는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선시대의 문인 조찬한(趙續韓)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납게 굴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잘 따랐으니 우아하지 않습니까.
얽어매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스스로 복종했으니 단정하지 않습니까. 자리를 맡았을 때는 직무에 충실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백성들을 생각했으니, 바탕과 겉멋이 잘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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