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까지 재력을 유지한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받 는다.그게 존경받을 일인지는 몰라도, 존경받는 노인이 대부분 그 조건을 충족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 눈치 보고 맞춰 사는 게 정말 피곤해. 젊어선 그 냥, 아님 말고 식이었지. 그런데 나이란 건 말이야, 하나의 옷 이에요. 입고 싶지 않은 미운 옷. 벗을 수도 없고 점점 두꺼워 지기만 하지. 미운 옷을 입으면 어떻겠어? 사람이 안 예뻐지 잖아. 똑같은 행동을 해도 늙은이가 하면 추하고 못나 보이지.그러니까 말이라도, 행동이라도 조심, 또 조심해야 되는 거야.
늙은 사람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그들은 소비도 안 하 고 생산도 안 해. 노인들은 뭔가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드 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삐거덕거리게 하고 느리게 만드는 존재들이야. 그들은 물건도 거의 안 사. 공연도 잘 안 봐.뭔가를 사거나 소비해도 우대권, 할인권, 초대권으로 해결하 니까 실제로 쓰는 돈은 거의 없지. 더 이상 효용성 있는 뭔가 를 생산하지도 못해.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 사회와 경제가 굴 러가는 데 하등 보탬이 되지 않아. 노인들은 그냥 시스템의 얼 룩 같은 거라고, 그저 노인 부양 시설의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 게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면 역할이겠지. 네가 유카시엘에 서 일하고 내가 요양원 간호사인 것처럼. 그래, 백배 양보해서 노인은 수입원이 줄기 때문에 아끼는 게 당연하다 쳐. 그렇다 면 최소한 젊었을 때 아이라도 한 명 낳은 사람이 더 당당한 거 아닐까. 적어도 새로운 소비 주체, 미래의 납세 주체를 만들어 낸 거니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평생 자기의 개인적인 외로 움을 해소하기 위해 개, 고양이만 키우다 늙어버린 사람의 노 후를 왜 너랑 내가 지탱해줘야 하냐고.
엘리야, 너도 모를 거야. 태어난 땅에서 이방인이 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원래부터 이 땅에 살면서도 주인일 수 없는 사 람의 심정이 어떤지. 너 같은 이민자를 배려해주느라 속에서 이렇게 조심하고 저렇게 조심해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 고 불편한지.너는 차별이란 단어를 무기로 써서 네 속을 거리낌 없이 표 현할 수 있지만 내가 가진 무기는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그 렇게 흥분하지 않아도 돼.
이해는 간다. 죽음에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니까. 더 쾌적 할수록, 더 간단하고 고통이 없을수록 비용은 높아진다. 높아 진 비용을 뜻하는 다른 단어는 존엄이다.그렇다면 자본주의 끝단에서 존엄의 다른 이름은 돈인 걸까.
-왜 저런 방식으로 일하지? 로봇이나 기계로 해결될 것들 을 왜 구닥다리 옛날 방식으로 하는 거야?오베론이 나를 애처롭다는 듯 바라보며 내놓은 대답이 잊 히지 않는다.-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 리 인건비가 오른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서 가장 싼 건 사람이야.
이 책은 잠시 멈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의 공모를 밝혀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면, 그 길은 아마 어디에도 가닿지 못할 것이다.
말은 민감한 동물이며 잘 알려져 있듯이 위협이 감지되면 재빨리 달아나는 반사반응을 보이는데, 전쟁터에서 나는 소음과 냄새, 폭발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도 큰 고통을 겪지만 적어도 인간은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일부는 애국심과 영웅주의, 영예, 나라를 위한 희생 등의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은 그런 위로도 없이 탈출할 길 없는 상태로 이해 불가한 공포를 무작정 견뎌야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말과 당나귀와 노새 800만 마리가 죽었다
전쟁 수단으로 동원된 동물들의 그림과 조각, 기념비들은 대개 인간 병사들의 착취를 미화하고 국가 정체성 의식을 고취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인간은 다른 종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면 자신은 위험한 상황에 덜 노출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세, 근대를 통틀어 동물은 전쟁을 준비하고 확대하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사실, 인간이 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소유해 온 역사만큼이나 동물은 전쟁과 충돌의 무기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다. 그러고 보면 전쟁 맥락에서 동물은 살아 숨 쉬는 도구, 그들 자신의 의지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특정 임무를 달성하도록 사육되고 훈련되는 한낱 도구로만 여겨지고 취급되어 온 셈이다. 어떤 동물도 전쟁에 아무런 이유 없이, 목적 없이 투입되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인간 사상자와 재산 손실을 줄이거나, 늘리는 그들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기본적으로 동물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은 동물에 대한 끔찍한 억압을 목격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에 미칠 영향 때문에, 동물 없이 치러지는 전쟁의 대가가 너무 클까 봐, 너무 위험할까 봐, 너무 끔찍할까 봐 두려워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전쟁이라는 총체적 사회구조에 저항하기보다 항상 동물을 이용하는 편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진짜 원흉은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과는 고사하고 같은 인간끼리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막는 사고방식을 부추기고 강화한다. 동물을 동원하든 동원하지 않든 전쟁은 대가가 너무 크고, 너무 위험하고, 너무 끔찍하다. 우리는 포용하고 전환하는, 적극적인 평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전쟁 속에 내재하는 문제와 그외 폭력의 징후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자에게 땅이 ‘소유된다’는 개념이 성립한다면 지구 어디서든 동물이 어떤 인간보다 오래 살았으니 동물의 소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 채 동물의 삶터에 대한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사실을 외면한다.
동물은 단수를 써서 복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서술된다. ‘멧돼지wild boar, 야생염소wild goat, 물소water buffalo, 호랑이tiger’는 각각 동물 한 마리가 아니라 종 전체를 가리킨다. 가축livestock, 농장동물farm animals, 야생동물wild animals, 야생생물wildlife, 집짐승domestic animals은 동물의 쓰임새나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동물이 정의된다. 인간이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동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이중성을 만들어 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장벽을 지키는 데 이용되었던 7,000마리의 오브차카(러시아산 견종) 개들은 대부분 사살되었다.
음흉하게도 새로이 지정된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군사 활동으로 환경이 너무 심각하게 오염되어 인간이 안전하게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만일 사고할 줄 알고 옳고 그름 사이에서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면, 같은 자질이 있는 코끼리와 돌고래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코끼리와 돌고래는 복잡한 사회적·정서적 삶을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군사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강제동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보통 전쟁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위험한 장소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전쟁 지역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물도 위험에 처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서문에서도 설명했듯이, 인간 쇼비니즘이라는 만연한 문화적 특성 속에서 과학자와 연구자, 그들의 조교와 스태프들은 군대와 민간을 막론하고 연구 대상 동물을 단지 실험도구, 실험실 장비 그 이상의 아무런 가치나 중요성도 없는 물체로 바라본다. 이 뿌리 깊은 태도는 특히 거액의 돈이 걸려 있을 때에는 더욱 바뀌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산업에 걸려든 동물들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그런 실험이 자꾸 실패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것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마하트마 간디
평화 연구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이며, 이성애자이고, 신체 건강한 기독교도 남성이며, 이들이 지역사회 조직화와 행동주의에 대해 책으로만 배웠지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매우 가까이서 목격해 왔다.
"연민은 약한 게 아니며, 잔인성은 강한 게 아니다"(p. 86).
그놈의 리마스터는 왜 자꾸 하는 걸까? 큰 차이도 없는 것 같은 데.·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면, 앞머리 길이가 미세하게 바뀌어도 크게 느껴 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의 변화는 더 크게 느낀다. 그런 작은 변화가 삶의 새로운 자극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역시 페이지터너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작가님의 소개글은 왠지 낚시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별 대단한 주제는 아니잖아요??)
최근 어느 자동차 CF에서는 그동안 지겹게 보아 왔던 4인가족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딸만 나오는 것을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놓고 싱글대디라는 설정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가족도 구성도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결혼과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가족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나눌 수있는 범위까지 의미를 넓히다보면 그렇게 걱정하는 저출산, 독거노인 등의 문제에 더 다양한 해결책이 생기리라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