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잠시 멈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의 공모를 밝혀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면, 그 길은 아마 어디에도 가닿지 못할 것이다.
말은 민감한 동물이며 잘 알려져 있듯이 위협이 감지되면 재빨리 달아나는 반사반응을 보이는데, 전쟁터에서 나는 소음과 냄새, 폭발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도 큰 고통을 겪지만 적어도 인간은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일부는 애국심과 영웅주의, 영예, 나라를 위한 희생 등의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은 그런 위로도 없이 탈출할 길 없는 상태로 이해 불가한 공포를 무작정 견뎌야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말과 당나귀와 노새 800만 마리가 죽었다
전쟁 수단으로 동원된 동물들의 그림과 조각, 기념비들은 대개 인간 병사들의 착취를 미화하고 국가 정체성 의식을 고취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인간은 다른 종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면 자신은 위험한 상황에 덜 노출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세, 근대를 통틀어 동물은 전쟁을 준비하고 확대하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사실, 인간이 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소유해 온 역사만큼이나 동물은 전쟁과 충돌의 무기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다. 그러고 보면 전쟁 맥락에서 동물은 살아 숨 쉬는 도구, 그들 자신의 의지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특정 임무를 달성하도록 사육되고 훈련되는 한낱 도구로만 여겨지고 취급되어 온 셈이다. 어떤 동물도 전쟁에 아무런 이유 없이, 목적 없이 투입되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인간 사상자와 재산 손실을 줄이거나, 늘리는 그들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기본적으로 동물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은 동물에 대한 끔찍한 억압을 목격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에 미칠 영향 때문에, 동물 없이 치러지는 전쟁의 대가가 너무 클까 봐, 너무 위험할까 봐, 너무 끔찍할까 봐 두려워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전쟁이라는 총체적 사회구조에 저항하기보다 항상 동물을 이용하는 편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진짜 원흉은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과는 고사하고 같은 인간끼리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막는 사고방식을 부추기고 강화한다. 동물을 동원하든 동원하지 않든 전쟁은 대가가 너무 크고, 너무 위험하고, 너무 끔찍하다. 우리는 포용하고 전환하는, 적극적인 평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전쟁 속에 내재하는 문제와 그외 폭력의 징후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자에게 땅이 ‘소유된다’는 개념이 성립한다면 지구 어디서든 동물이 어떤 인간보다 오래 살았으니 동물의 소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 채 동물의 삶터에 대한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사실을 외면한다.
동물은 단수를 써서 복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서술된다. ‘멧돼지wild boar, 야생염소wild goat, 물소water buffalo, 호랑이tiger’는 각각 동물 한 마리가 아니라 종 전체를 가리킨다. 가축livestock, 농장동물farm animals, 야생동물wild animals, 야생생물wildlife, 집짐승domestic animals은 동물의 쓰임새나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동물이 정의된다. 인간이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동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이중성을 만들어 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장벽을 지키는 데 이용되었던 7,000마리의 오브차카(러시아산 견종) 개들은 대부분 사살되었다.
음흉하게도 새로이 지정된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군사 활동으로 환경이 너무 심각하게 오염되어 인간이 안전하게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만일 사고할 줄 알고 옳고 그름 사이에서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면, 같은 자질이 있는 코끼리와 돌고래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코끼리와 돌고래는 복잡한 사회적·정서적 삶을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군사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강제동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보통 전쟁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위험한 장소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전쟁 지역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물도 위험에 처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서문에서도 설명했듯이, 인간 쇼비니즘이라는 만연한 문화적 특성 속에서 과학자와 연구자, 그들의 조교와 스태프들은 군대와 민간을 막론하고 연구 대상 동물을 단지 실험도구, 실험실 장비 그 이상의 아무런 가치나 중요성도 없는 물체로 바라본다. 이 뿌리 깊은 태도는 특히 거액의 돈이 걸려 있을 때에는 더욱 바뀌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산업에 걸려든 동물들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그런 실험이 자꾸 실패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것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마하트마 간디
평화 연구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이며, 이성애자이고, 신체 건강한 기독교도 남성이며, 이들이 지역사회 조직화와 행동주의에 대해 책으로만 배웠지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매우 가까이서 목격해 왔다.
"연민은 약한 게 아니며, 잔인성은 강한 게 아니다"(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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