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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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는 건 서로의 고독을 덜어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독하게 죽지 않도록 곁을 지켜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각자가 자신만의고독사를 온전히 완성할 수 있도록 같은 트랙을 돌며 서로의반려 고독이 되어 주겠다는 의리 게임을 시작했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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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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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목소리는 투명하게 울렸고 눈가와 볼에서 소년의 맑음이 느껴졌다. 메이지는 일본어로 말하는 이은의 입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땅 위에서 왕자 노릇 하는 일의 슬픔을 느꼈다. 이은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가마가 선명했고, 가마 주변의머리카락이 고왔다.
·영리해 뵈는구나.
라는 말이 너무 무례해서 메이지는 발설하지 않았다. 메이지는말했다.

일파가 흔들리니 만파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말했다. 동북아와 구미열강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안중근에게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 년 앞을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충고는 간곡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토는 전국의 한국군 지방 병력을 해산시키라고 각 도의 경찰관서에 지시했다. 여러 고을의 연병장에서 한국군 병력이 총검을 내려놓고 맨손체조를 하는 동안에 경관들이 무기를 수거했다.

-자네는 왜 나를 따라나서는가? 왜 이토를 쏘려고 하는가.
-그런 것은 말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까 말을 이어가기가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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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를 나쁘게 바꾸는 건 아주 쉽다. 물에 검은 잉크를 한방울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쉽고 빠르다. 어려운건 뭔가를 좋게 바꾸는 거다. 이미 나빠져버린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보기에 당신은 잘 살아온 것 같아요. 계속 삶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잘했어요. 아주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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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연기처럼 올라가 하늘을 흐리게 만듭니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하늘이 내 손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미 저녁이지만, 당신에게 오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전하지 않은 채로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네요.

당신은 나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은 한낱 전쟁터에 지나지 않지요. 사방에는 검은 갑옷을입은 기병들이 득실대고,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칼날이부딪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아니에요. 연못 옆을 지나는데, 그곳이 수초로 가득 덮여 있더군요.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거예요. 우리가 모든생명의 온화함을 훼손시켜도, 도리어 그 생명은 더욱더풍요롭게 돌아옵니다.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다른 할 일이 있어서요. 서리가 내려앉은 곳에 가야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를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캐나다에서 약속이 있습니다.
음악, 음악의 고독, 고독의 고독과 말이죠. 저는 이제 떠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떠나니, 여러분도 저를 떠나 주세요. 여러분은 저를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어요. 여러분은 저를 지나치게 사랑합니다. 오히려 저를가두려고 하죠. 제가 있는 곳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 검은색 피아노와 붉은 관람석 사이 이 따뜻한 곳에 여러분들과 함께 저를 가두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따스함보다추위가 더 좋습니다. 마음 상하지 말아요. 저는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제 컸으니 다른 곳으로가서 다른 것을 찾아봐야겠어요. 이 사랑만 먹으며 살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먹기만 하며 인생을 보낼수는 없을 겁니다. 엽서를 보내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음반을 만들게요. 이제 공연이 아닌 음반으로만 만나요.
제 소식과 북극의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식보다더 영양가 있는 음식, 음악보다 더 섬세한 음악. 빵의 평온과 포도주의 고요함을 보고 들으실 거예요. 여기저기짧은 메모도 남기겠지만, 가능한 한 그러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제 필요한 건 듣기 위해서 연주할 필요가 없는음악이에요. 그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돈이 있어요. 여러분의 사랑이 가져다준 재산이지요. 정말 많아요. 이 돈으로 스튜디오를 사고, 장비, 녹음테이프, 마이크를 샀어요. 차가운 눈 아래에 놓인 뜨거운 심장으로,
제 빙하에서 백 년은 버틸 준비가 됐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를 보내주세요. 더 이상 연주회는 없습니다. 공연은 끝났어요. 내가 불편했던 것, 그러니까 연주회에서나를 항상 불편하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 본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듣는 것을 방해하거든요. 사람들은 한쪽으로는 음악을 들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음악가를 보거나, 또는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왼쪽 둘째 줄에 앉은 아름다운 여성을 봅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없어요. 두 말을 같은 리듬으로 달리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보면서들을 수는 없습니다. 시각이 우세하지요. 훨씬, 정말 훨씬 강해요. 연주회에는 여러분과 나 그리고 피아노, 이렇게 셋이 있습니다. 음악까지 포함한다면 넷이겠네요.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서 시끄러워지고, 결국 우리는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드러난 어깨 위의 실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남을 뿐이에요. 캐나다에서는 저를 더는 보지 못할 테니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캐나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제가 가는 거예요. 캐나다에는저와 제 피아노 그리고 음악만이 있을 겁니다. 일단은말이죠. 그러다 결국 음악만이 남을 거예요. 피아노도,
저도, 어떤 무엇도 중간에 거치지 않은 음악만이요. 나중에 레코드를 들으시면, 제가 오늘 저녁, 떠나는 이 밤에 여러분께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실 겁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있어요. 고맙습니다. -GLEN G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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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지음 / 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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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유 여행‘이란 멋스러운 단어가 주는 풍족함 이상으로,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 그렇게 그리스란 나라에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이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자체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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