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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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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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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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수고스러운 일이죠. 저는 글쓰기를 위한 글을쓰는 것이, 해야 할 말이 안이함 속에 지워지는 것이 두려워요. 그저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그런 경우라면 절필을 하는 것이 낫겠죠. 앙드레 브르통은 평소 습관대로 큰소리를 치며 이런 말을 했어요. <아무 할 말이 남지않았다면,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책을 쓰는 일은 늘 하나의 큰 사건이어야 하고, 책의 마지막까지 써 내려가야 하죠. 그래야 무언가를 했다는느낌을 받게 돼요. 저는 이 <한다>는 욕망이 저의 어린 시절과 큰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상 지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은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요.부모님에게 저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었죠. 그 둘은 전혀 달라요. 일을 한다는 것은 손으로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주변에서 손으로,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보지 못했죠.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책이 강도 높의 결과물이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고 여기는「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MP : 그렇지만 역시, 흔적을 항상 남기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하죠?
A.E. :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에요.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세상에 대한 시선이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현재의 욕망을 이해하고있어요. 자신들의 삶을 쓰고 싶어 하죠. 예술적인 고민 없이,
즉흥적으로,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상에 자아의 분산과 공동의 기억의 소멸이 각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만들어요. 이 땅에 머물렀다 간 것을 증언하고 싶은 거죠. 생물학적인 의미로 생명을 물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생각과 이미지, 하찮은 것까지도 보존되기를 원하죠. 단지 그것이 일어난 일이었다는 이유로, 이미 지나간 것이니까. 저도 그런 욕구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지식의 욕구와 분리하지는 않아요. 글쓰기는, 정말 글을 쓴다는 것은 지식을 겨냥하는 일이죠.
사회과학, 철학, 역사, 정신분석학 같은 지식이 아니라,감정과 주관성을 통과하는 또 다른 지식이요. 예전에 우리가 문체라고 불렀던 것에 누가 의존하나요? 더는 문체라고부르지 못하죠. 문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언어, 언어 자원 사이의 협정이에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이야기가 만든 이 목소리를 언어에 주입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글을 쓰면 느껴져요. 심리학이나 사회학 혹은 정신분석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죠. 저도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할 때가 있긴 하지만요.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많은 것을 빚졌지만 제가 부르디외가 되려고 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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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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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이가 멀어지고 국화가 휴학하고 나서 몇 달도 되지않아 내 머릿속에서는 국화가 잊혔다. 하지만 술자리가 있던 어느 밤 선배는 나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다 나는 아직도 국화 에 관해 지속된 생각을 해, 라고 잔뜩 취해 더 꼬부라진 영어로 말 했다. 걔가 자기는 뭐가 되든 앞으로 이기는 사람이 될 거라고 했던 걸 기억해. 그 말은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진로 이야기를 하면서 선배는 사실 자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나는 NGO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국화는 난데없이 자기는 이기는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기는 사람,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강심장이 되겠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걸 넘어서는 사람, 그렇게 이기는 사람, 정확히 뭘 이기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게지만 국화는 냉정하고 무심하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노아 선배는 그 말이 뭐가 그렇게 감동적인지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며 뭐 그런 말이 있냐,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해선배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리게 걸으면서 나는 걔가 이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라고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걔가 이기는 사람이 되라고 응원해, 정말 확실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거기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앞으로 걔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해, 그것은 어떤 오류의 가능없이 확실해.

"아저씨, 아저씨가 앞으로 오십 년을 산다면 오늘이 가장 불행한 날일 거예요. 더 나빠지지는 않을거예요.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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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어떤 말에 설득당해 어떤 행동을 하게나 어떤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떤 말을 자신의 어떤 결정이나 경향을 설득시 키는 도구로 이용하는 이런 습성은 아주 일반적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누군가의 결정이나경향을 지원, 혹은 해명하는 데 유리한, 그럴듯한 어떤 말을 하기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신 이 많은 사람을 설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면 그것은 당신이 많은 사람의 결정이나 경향 을 지원, 혹은 해명하는 데 유리한, 그럴듯한 어떤, 그러니까 매우 범속한 말을 하기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을 통해 자기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은, 주로 직업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 착각은 자기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이들에 의해 주어진다. 실은 영향을 끼치고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을 끼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착각과 이용은 워낙 은밀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 눈치채지 못한다. 착각하는 자는 착각인 줄 모르고 이용하는 자는 이용하는 줄 모른다. 서로는 서로의 무지를 필요로 한다.

과거는 입이 크다. 입이 큰 과거는 현재를 문다. 때로 어떤 사람에게 이 묽은 치명적이다.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이 이빨은 현재가 알지 못하고추측하지 못하는 이빨이다. 현재는 과거가 제자리에 멈춰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멈춰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 혹은 짐작, 혹은 기대이다. 현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과거는 움직이고, 자라고, 변하고, 그래서 몰라보게 달라진다. 현재를 삼킬 만큼 커지고 현재를 물어뜯을 만큼 날카로워진다. 현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달라진다. 현재를 무는 과거의 이빨은 현재가기억하지 못하거나 짐작하지 못하는 이빨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달아났기 때문이고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현재의 숙명이다. 과거로부터 달아나기를 원치 않는 현재는 없다. 과거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오만이다. 오만하지 않은 현재는 없다. 과거의 변신과 보복을 예감하고 대비할 만큼 겸손한 현재는없다. 과거를 땅속에 묻었다고 안심하지 말라. 관뚜껑을 열고 나오는 과거는 더 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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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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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는 굳이 수고를 들이는 일들을 좋아한다. 칼로 연필을 깎고, 매일 시계의 태엽을 감고, 일력을 뜯고, 전기포트를 놔두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인다. 이런 비효율성을 감내하는 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뜻한다(바쁠 땐 일력도 밀리고 시계도 멈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 속에 항상 쓸데없는일들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 수고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있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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