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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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세 살 때였던가, 아빠와 짜장면을 먹다 말고 왜 봄만 되면 그렇게 머리를 빡빡 미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음, 그건..
공장 사람들하고 아빠 마음이 같다는 것을 사장한테 보여주려고 그래." 아빠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야다 비슷해 보이거든. 그러면 파업 끝나고 나서도 함부로 못해."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에서 또다른 강아지들이달려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다 이시봉과 닮은 후에스카르 비숑프리제였다. 목장을 막 벗어난 흰 양떼처럼 골목에 빽빽하게 들어선 이시봉들...... 아아, 얘네들은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가아니었구나! 얘네들은 그냥 왕곡면 비숑 프리제였구나! 나는 그많은 강아지들 중에서 이시봉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내그만두었다. 모두 다 이시봉이었고, 모두 다 강아지들일 뿐이었다. 나는 그게 보기 좋았고, 마음이 놓였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알면서도 속는 일, 그게 사랑의 일이니까.

강아지들은 가장 먼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장 먼저 짓밟힌다. 그게 바로 인간이개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이다. 본질은 늘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드러나는 법. 개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희생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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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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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는 쉽게 사랑에 빠지는 서른네 살의 미남인 자신이 다섯 아이와 죽은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자기보다 겨우 한 살 적은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아내에게 자신의 부정을 더 잘 속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레빈의 눈에는 이 세상의 모든 아가씨가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부류는 그녀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아가씨로서, 그녀들은 온갖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이다. 또 한 부류에는 오직 그녀만이 존재한다. 그녀는 어떠한 약점도 없고 모든 인간적인 것을 초월한 여자이다.

그녀가 대단히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그녀의 모습 전체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겸손한 기품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옆을 지나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 표정에 유난히 상냥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뒤돌아보자, 그녀 또한 고개를 돌렸다. 짙은 속눈썹 때문에 검게 보이는 그녀의 빛나는 회색 눈동자가 다정한 빛을 띠며 마치 그를 알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누군가를 찾는지 가까이 다가오는 군중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짧은 시선을 통해, 브론스키는 그녀의 얼굴에서 뛰노는 절제된 활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희미한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 사이에서 차분한 생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 마치 그녀의 존재에서 어떤 것이 넘쳐흘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저라면 결코 돌을 던지지 않겠어요.

그녀 자신 외에 그 누구도 그녀의 처지를 알지 못했다. 어제 그녀가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고 있을지 모를 남자를 거절했다는 것, 그것도 다른 남자를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 그녀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악마적이고 매혹적인 데가 있어.

그러나 그는 언제나 가난한 민중과 비교하여 자신이 가진 부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정당하다고 느끼기 위해, 전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욱 사치를 삼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레빈은 어머니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어머니라는 개념이 하나의 신성한 기억이었다. 따라서 미래의 아내는 그가 상상하는 아름답고 신성하고 이상적인 여성 — 그에게는 곧 어머니를 의미했다 — 이 재현된 존재여야 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벳시를 비롯한 사교계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웃음거리로 전락할 모험을 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사람들의 눈에는 아가씨나 대체로 자유로운 여성을 사랑하는 불행한 연인의 역(役)이야말로 우습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간통에 끌어들이고자 자기의 목숨을 거는 남자의 역, 이 역은 이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고 위대한 것으로 보일 뿐 결코 웃음거리가 될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콧수염 밑으로 자신만만하고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오페라글라스를 내려놓고는 사촌 누이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점은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느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느냐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내게 필요한 건 우정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는 단 하나의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토록 싫어한 말……, 그래요, 사랑입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러한 의혹 앞에서 전율했다.

그녀의 감정에 대한 문제, 그녀의 영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건 그녀의 양심의 문제이고, 종교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눈동자가 뿜는 광채를 본 것 같있다.

연대 사람들은 브론스키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그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데다 훌륭한 교양과 재능을 지닌 이 사내, 더욱이 온갖 종류의 성공을 위한 길이 활짝 열려 있고 야심과 허영심까지 갖춘 이 사내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서, 인생의 모든 이해관계 가운데 연대와 동료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론스키는 자신을 향한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생활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자신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지키는 것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안나를 질투하던 데다 그녀를 반듯한 여자로 부르는 것에 이미 오래전부터 싫증을 느끼던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일이 예상대로 된 것에 기뻐했고 무겁기 짝이 없는 멸시로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세간의 평판이 뒤집혀 굳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때가 되면 그녀에게 던지려고 진흙 덩이를 이미 마련해 놓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거나 신분이 높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차 무르익어 가는 이 사회적 추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브론스키는 자기 안에 pluck, 즉 힘과 담력이 충만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 세상에 자기보다 pluck가 센 사람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 예전에 그녀는 불행하지만 당당하고 침착했어.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록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침착함과 품위를 잃었어. 그래, 이런 건 이제 그만 끝내야 해.’

"난 말이죠, 굶주려 있다가 먹을 걸 얻은 사람과도 같아요. 어쩌면 그 사람은 추울지도 몰라요. 옷도 너덜너덜하고 수치스러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사람은 불행하지 않아요. 내가 불행하냐고요? 아뇨, 이게 나의 행복인걸요……."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내를 보러 갈 때 기회만 되면 늘 제삼자를 데려가곤 했다.

그렇군! 하지만 그때까지는 체면이라는 외면적인 조건을 지켜 주기 바라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명예를 지킬 방법을 찾아 그것을 당신에게 알릴 때까지 말이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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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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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대신 빛나게 하고
누군가의 뒤에서 균형을 맞추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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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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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그리고 난 정상이 되고 싶지 않아. 넌 남은 평생 서빙 하고 가끔 드럼 치는 걸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사실 차이 를 만들어내고 싶어. 내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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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
후안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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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막의 동물은 갈증을잘 참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업무 환경이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음을, 더 조급하고 쉽게 욱하고 무책임하게 바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껏 지켜왔던 기준을 지킬 수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곤란하지. 고객이 왕이라는 말도 모르나?"
나는 멈칫했다가 본능적으로 변명했다.
"하지만 왕이 한 명이라야 말이지요. 저는 매일 엄청 많은왕을 섬겨야 하는걸요."

이제 나는 젊었을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려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충동은 맹목적이고 헛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누구나 자기 기준에 따라 남을 판단하므로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진실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비천한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권력에 반항해 봐야 힘만들기 때문에 다른 비천한 사람을 괴롭힌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한다. 흔히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맹목이나 공리와 동떨어진, 본심에 충실한 감정이다. 맹목적인 것은 오히려 증오다.

일이든 사업이든 감정이든 내 삶에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했다. 물론 실패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나도 남들한테 인정받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가없었다. 글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내 정신세계는 현실 세계가 척박해지는 만큼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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