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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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살인범을 잡아 그 이름을 밝히려는 것이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다섯 사람의 발자국을 다시 추적하고, 그들의경험을 그 시대의 맥락 안에서 살펴보고,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껍데기만을 보아왔으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엄마를찾아 울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아가씨들이었다. 그들은출산의 고통과 부모의 죽음을 겪었다. 그들은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들은 형제자매와 다투었다. 그들은 울었고 꿈꾸었고 상처받았고 작은 승리에 기뻐했다. 그들의 삶은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수많은여성과 비슷했지만, 죽음은 너무도 이례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이책을 썼다. 우리가 이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분명히 들을 수 있기를바라며, 또한 그들이 목숨과 함께 그토록 잔인하게 빼앗겼던 것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빼앗긴 것은 존엄성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심지어 런던에 사는 사람들마저도 매일 밤 수백 명이 집 밖에서 잔다는 사실을 처음 들을지도 모른다. 자정이넘어서까지 움직이는 사람은 별로 없고, 우리가 우리의 침대에포근하게 들어가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가 내리고 폭풍이 부는 바깥의 딱딱한 돌벤치에서, 혹은 선로의 아치 밑에서그 긴 시간을 덜덜 떨며 보내는지 잊기 쉽다. 이 집 없고 굶주린사람들은 그곳에 존재하지만, 고통받는 그들의 목소리는 좀처럼이웃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제인은 태어난 첫날부터 그들에게 불리한 게임에 참여해야 했다. 그들 대부분이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들 모두가 여자로 태어났다. 그들은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같은 가족의 남자 형제보다 덜 중요한 존재, 다른 계급 가족의 딸보다 더 많은 짐을 져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러 나서기도 전에 가치를 절하당했다. 그들은 결코 남자와 똑같은소득을 벌 수 없을 터였고, 그러니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도 적었다. 그들이 밖에서 일하는 목적은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성취감이나목적의식이나 개인적 만족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계급 여자아이가 잡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남의 집에 가정부로 고용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등이 휘도록 수년간 일하다 보면 더 높고 좋은 자리인요리사, 가정관리인, 시종이 될 수도 있었다. 가난한 여자아이는 케이트 에도스나 폴리 니컬스처럼 글을 읽고 쓸 줄 알더라도 사무직을 가질 수 없었다. 대신 수작업 공장에서 하루 열두 시간씩 바지를 바느질하거나 풀로 성냥갑을 붙였는데, 그런 일의 일당은 하루 먹고 자는 생활비에 못 미쳤다. 가난한 여자의 노동이 쌌던 이유는 가난한 여자가쓰고 버려도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고, 또한 사회가 그들을 가장으로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여자가 원하든 원치않는 가장이 되었다. 남편이, 아버지가, 동거인이 떠나거나 죽으면 노동자계급 여성은 혼자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야 했으나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회는 여자가 남자 없이 살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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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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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어린 아이에게 악의를 품고 사는 그들이 섬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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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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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어가 새로운 생명체와 융화되는 장면보다 같은 종족과 대립하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 노인, 이방인, 아이- 를 대하는 태도가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그러한 약자가 되어 살아 보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약자의 삶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지만 대부분 그러한 입장을 잊은 채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오필리어가 대변하는 노인의 입장은 많은 생각을 일으켰습니다. 노인은 하루의 황혼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힘이 없고, 생각이 편협하며 그저 어르고 달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회에 맞서는 그녀가 전사와도 같았습니다. 예전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드라마에서 깊이 남는 대사가 있었는데요. 나이든 선배에게 면박을 주는 젊은 후배에게 날리는 일침이었습니다.
“넌 꽤나 자신이 젊다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네. 지금 네가 가치가 없다며 딱 잘라버린 건 앞으로 네가 향해 나갈 미래이기도 해. 내가 바보 취급하던게 나 자신이 된다. -그건 굉장히 괴로운 일 아니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저주가 있어. 니가 느끼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고 자신에게 저주를 걸지 마 그런 무시무시한 저주에서 빨리 도망쳐버려.” 맞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노인이 될테니까요. 읽는 내내 드라마의 이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 어린아이를 대하는 태도 마저도 이 책에서는 선명하지만 부드럽게 쓰여 있어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 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작가늬 책 두권을 읽었는데 모두 훌륭하고 감동적이라 다음 책이 등장할 인물이 기대됩니다.

+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요 오필리어역으로는 윤여정배우님이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다들 귀찮다는 듯한 표정, 외계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애정,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동족들에 대한 반항적 투지까지 모두 다 나타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 창작의 기쁨, 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자식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 피도 그래." 그는 배가 고파졌다. 부엌으로 가니누군가 파란 망토가? 플랫브레드 반죽을 만들려다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이 보였다. 그가 부엌을 보자 파란 망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미아아내."
"고마워. 챙겨주려던 거잖아."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괴동물들한테서 받은 역할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게 다 긴장 상태 때문이에요." 언어학자가 말하고있었다. "어르신한테 이런 얘기하면 안 되지만-." 그럼하지 마,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말하지 말라고, 듣고 싶지 않아. "그래도 어르신은 지혜롭잖아요, 교육은 못받으셨어도." 그 말 속의 오만함 때문에 오필리아는 거의버럭 대꾸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교육은 못 받았지만 지혜롭다고? 지혜가 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지? 게다가 나는 교육을 받았어. 오랜 시간 공부했다고, 밤마다새벽마다 공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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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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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풍 인테리어의 집에서 빈티지 가구에 최신 가전제품을 두고 생활합니다. 퇴근후에는 여유있는 저녁을 누리며 주말에는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에 찾아가고 고급스러운 편집샵에서 쇼핑을 즐깁니다. 그들의 삶 대부분이 숨겨지고 일부는 가공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현실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어 속상하지요. 다들 상처하나씩은 숨기며 살고 있을텐데 유난히 내 상처는 너무 쓰려 감출 수가 없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내 삶이 왠만큼 만족스럽고 그들의 과시적인 삶이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에 뚜벅뚜벅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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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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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모른 채 김승섭교수님의 신간소식만으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끄럽지만 ‘천안함사건’은 뉴스에서 보여주는 대로만 접했을 뿐 그 깊은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뉴스마저도 주의깊게 보지 않았으니 제목만 수십번 들어 이미 읽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되는 고전같은 사건이었지요.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나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존중해야 함은 누구라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개인적인 입장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거나 무시한다면 그들에게는 2차가해로 남아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가 처음부터 그것을 이해하고 잊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여기 이해해야한다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목소리가 시작되니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간장게장이라도 먹으려 할 때 누구 하나가 “나 그거 먹고 배탈난 적이 있어서 못먹겠어’라고 한다면 우리는 순순히 다른 식당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그것을 먹으라 강요한다거나 넌 한끼 굶으라 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너무 당연하고 사소한 예이기는 하지만 무언가에 상처입은 사람에게 그 상처를 반복하게 하고 참으라한다면 나에게 그 상처가 입혀졌을 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미래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군인은 훈련과 전투 과정에서 조직의 명령에 따르고또 전쟁 발발시 조직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 직업입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주어진 지시에 따라 성실히일하다 자신의 과실과 무관하게 트라우마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는 그 상처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대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결국 그들이 전역을 선택하도록 방치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본군인들에게 유사시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한 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말하려 다른 재난의 고통을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만난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 생존자중 누구도 자신의 고통이 다른 재난 생존자를 더 아프게 하는 데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보다 많은 사람이 천안함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겪었던 시간을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그게 세월호 피해자의 고통을 모욕하는 방식일 이유는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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