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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오필리어가 새로운 생명체와 융화되는 장면보다 같은 종족과 대립하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 노인, 이방인, 아이- 를 대하는 태도가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그러한 약자가 되어 살아 보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약자의 삶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지만 대부분 그러한 입장을 잊은 채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오필리어가 대변하는 노인의 입장은 많은 생각을 일으켰습니다. 노인은 하루의 황혼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힘이 없고, 생각이 편협하며 그저 어르고 달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회에 맞서는 그녀가 전사와도 같았습니다. 예전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드라마에서 깊이 남는 대사가 있었는데요. 나이든 선배에게 면박을 주는 젊은 후배에게 날리는 일침이었습니다.
“넌 꽤나 자신이 젊다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네. 지금 네가 가치가 없다며 딱 잘라버린 건 앞으로 네가 향해 나갈 미래이기도 해. 내가 바보 취급하던게 나 자신이 된다. -그건 굉장히 괴로운 일 아니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저주가 있어. 니가 느끼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고 자신에게 저주를 걸지 마 그런 무시무시한 저주에서 빨리 도망쳐버려.” 맞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노인이 될테니까요. 읽는 내내 드라마의 이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 어린아이를 대하는 태도 마저도 이 책에서는 선명하지만 부드럽게 쓰여 있어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 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작가늬 책 두권을 읽었는데 모두 훌륭하고 감동적이라 다음 책이 등장할 인물이 기대됩니다.
+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요 오필리어역으로는 윤여정배우님이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다들 귀찮다는 듯한 표정, 외계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애정,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동족들에 대한 반항적 투지까지 모두 다 나타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 창작의 기쁨, 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자식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 피도 그래." 그는 배가 고파졌다. 부엌으로 가니누군가 파란 망토가? 플랫브레드 반죽을 만들려다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이 보였다. 그가 부엌을 보자 파란 망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미아아내." "고마워. 챙겨주려던 거잖아."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괴동물들한테서 받은 역할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게 다 긴장 상태 때문이에요." 언어학자가 말하고있었다. "어르신한테 이런 얘기하면 안 되지만-." 그럼하지 마,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말하지 말라고, 듣고 싶지 않아. "그래도 어르신은 지혜롭잖아요, 교육은 못받으셨어도." 그 말 속의 오만함 때문에 오필리아는 거의버럭 대꾸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교육은 못 받았지만 지혜롭다고? 지혜가 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지? 게다가 나는 교육을 받았어. 오랜 시간 공부했다고, 밤마다새벽마다 공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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