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를 읽고 나니 이 소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미 10여년전에 일본에서 쓰여진 소설임에도 대한민국의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10여년 후에도 이 세상이 이모양일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만약 우리 부부의 아이도 아들이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은당하지 않았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직후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딸을 가진부모가 겁을 집어먹은 채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이야말로 너무이상한 것이다. 복수가 허무한 행위라는 것은 도모자키를 죽이면서 충분히 깨달았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나가미네는 남은 놈을 그냥 놔둘 수 없다. 그것은 에마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짐승들에게 제재를 가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죄를 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은 안다. 그것은법원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나? 그런 일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신문이나 TV 등의 정보로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를 나가미네는 조금은 알고 있다. 그 지식으로 보건대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원해준다.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그 인간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그게 형벌일까?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위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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