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 이동시 총서 1
정혜윤 외 지음, 이동시 엮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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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일으킨 주역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멸종이 무엇인지아무런 감이 없다. 어느 날 내 집은 물론, 동네 아니 도시 전체가홀라당 날아가 버린 경험을 과연 우리 중 몇이나 했겠는가? 아직생존한 전쟁 세대 몇 분 정도나 있을까. 사실 그조차 딱 맞는 경험도아니다. 세상이 파괴되는 것도 모자라, 아무리 다니고 다녀도 사람 한명 보지 못한다는 것. 아무리 목이 터져라 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않고, 지독하게 절대적인 고독함에 치를 떨다 쓸쓸히 마감하는 것.
이것이 멸종이다.

간혹 나는 산 채로 묻힌다. 나는 수만 마리의 나와함께 땅속에 있다. 나는 썩는다. 나는 아주 천천히병든 땅이 된다.
내가 묻힌 땅. 내 피로 물든 강. 나를 스친 사람들.
나를 먹는 당신들.
모두 아프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아프기때문이다. 나는 고통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돌고 돈다. 당신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당신은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처럼 나를 짓밟는다.
세상에 가장 더러운 단어들로 나를 부르며 나를때린다.
그리고 깨끗하고 포근한 스웨터가 당신의 피부를감싼다.
섬세하고 귀한 내 피부가 당신의 가방이 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내 살이 당신의 식탁에 오른다.
그래서인가,
당신은 내가 생명이라는 것을 잊은 듯하다.
당신은 내가 생명이라는 것을 잊은 듯하다.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아직도 잘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죽고 싶지도 않아요. 내 생의 어느장면에도 기쁨, 자유, 희망은 없어요. 부디 어느생에서라도 다시는 만나지 않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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