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텐디크는 자신이 발견한 개념에 대한 르. 모 쥐스트(막 맞아떨어지는 낱말)를 고르는 일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것은 개념을 길들이고 친숙하게 만들어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그의 에탈 개념은 썰물의 잔잔하고 온순 한 파도, 거울처럼 고요한 바다. 끝까지 펼친 날개의 표면, 잣 난아기를 감싼 흰 배내옷을 연상시킨다.
그날 이후로 그는 생태학과 평화주의에 똑같은 시간을 할 하게 해주지 않는 한 어떤 수학 학회에도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강연중에는 정원에서 기른 사과와 무화과를 나눠주면서 과학의 파괴력을 경고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산산조각낸 원자들을 분열시킨 것은 장군의 번들거리는 손가락이 아니라 한 줌의 방정식으로 무장한 과학자 집단이었습니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개념들이 세상에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했다. 내가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 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질까?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과학자들조차 더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의 가장 값진 보물이요 우리의 모든 물리학 이론 중에서 가장 정확하 고 폭넓고 아름다운 양자역학을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 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 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 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 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 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 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 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