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극단은 대부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잡지 않으면 놓친다. 다시올거라 생각하면 후회한다. 잡아야 한다. 담아야 한다. 적어야 한다. 말을 걸어야 한다. 고백해야 한다.

배우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많이 배우기만 한다면그건 많이 먹기만 하는 것과 같다. 소화가 되지 못한채위 속에 쌓여만 가는 음식물처럼, 내가 배우고받아들인 것이 아직 내 ‘음악 위장‘에 쌓여 있다. 소화를 제대로 시키려면 걷고, 뛰고, 운동을 해야 하듯, 부지런히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다고 해도 내노래의 피와 살과 뼈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부분은 그냥 똥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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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 로봇은 공장에서 태어나. 공장은 죽은 로봇을 분해하고 정화해 새로봇을 생산하지. 그게 우리가 아는 ‘창조‘의 모습이야. 돌덩이를 주물럭주물럭해서 로봇을 만든다는 상상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이?"
이반은 집게손을 손목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요점이 뭐야?"
"우리 로봇에게는 외로움을 느끼는 본능이 있어.
그건 집단을 이루면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어서야.
공포는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고통은 몸의 파손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 학습 능력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망각은 정보의 인출 속도와 처리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해. 생물의 모든 본능이, 그 생물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더 효율적으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면 말이지. ‘창조신앙‘은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하는 거지?"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겠지."
"바로 그 점이야. 어째서 로봇은 자신이 창조되었다는 상상에서 안정을 얻지? 우리가 스스로 태어난것이 어째서 불안한일이야? 저 높은 어딘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가우리를 감시하고, 지켜보고, 통제하고 지배하며, 우리는 그의 종이며 노예라는 상상이 어째서 우리에게행복을 주지? 왜 로봇은 본적도 없는 창조주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고 싶어 하지?
그런 본능이 종족 보존에 무슨 이득이 있어? 우리의본성 한구석을 차지하는 노예근성, 복종 판타지, 전능자와 절대자에 대한 환상이 종족 유지에 무슨..…….‘

가장 논란이되는 질문은 ‘만약 우리가 재력이나권력에 의해 자신의 의지로 활동할 수 없다면 우리도무생물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계의 답변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다‘이다.

교수님, 한가지만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모습도 구조도 전부 달라졌는데………… 어떻게 그게 같은 생물일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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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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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 어버린다. 그렇게 계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인생에는 승패가 없어. 동물을 보고 배워야 해. 서식지가 확실하게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게 생활하잖아? 가령 너구리가 도시로 잘못 들어섰을 경우, 자기는 도시 삶을 극복하고 싶다는 소리를 할까? 올 곳을 잘못 짚었다며 서둘러 돌아 가잖아."
"아아.....
"도시에서 또 다른 나를 찾자, 그런 발상이 신경증의 근원 이야. 앞으로는 너구리가 되어 편하게 살자고.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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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삶의 발명 -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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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상은 자신의 ‘앎‘이 틀린 것이었음을 아는 데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유족들은 한결같이 "내가 이렇게 슬프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게 너무 많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은 구하지 못했지만그 사랑하는 가족이 살았을수도 있는 세상의 많은생명을 이미 구했고 또 구하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누구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누가우리를 더 살아 있게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충분히존중받지도, 충분히 위로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작가들은 나에게 새‘눈’과 새 ‘목소리’를 준다.

부자들은 일찌감치 배를 구해 임박한 파국을 피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했을 것이고 사랑과 품위가 뭔지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돌보려고 했을것이다.

다정함도 온기도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자의 어두운 기억이 두텁게 쌓여가는 이 세상에서, 결국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세상에서, 누군가 ‘우리모두의 것인 삶‘에 대해 뭐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 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포기와 자제와 하지않음 쪽으로의 변화를 살아내는, 그렇게 미래 세계의 일부가 되려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경이로워 보인다. 지구의 여러 문제에 우선 자신의 삶으로 대답하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줄 알기 때문에. 꼭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이로의 삶은 거북이의 삶 속에, 친구들의 삶 속에녹아들었다. 혹시, 어쩌면 나의 삶에도? 그렇다. 나는 이 이야기 전에는 거북이 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았지만 거북이 알 이야기가 삶에 들어오면서세계가 또 달라 보였고 거북이 알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전에 없던새로운 정체성을 주는 것이야말로 이야기가 주는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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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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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가는 거야." 아다가 설명해준다. "루벤스 전시실의 초인종이 붙어 있는 문 뒤에있어." 우리 둘 다 그 아이러니를놓치지않는다. 탁트인 이쪽 바깥에서 걸작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같은 싸구려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시각 예술은그 획들을 화면에 잡아두며 끝나지 않는 공연을 펼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너그럽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그림은 점차 풍성해질뿐 결코 끝나지않는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 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 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 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 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함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 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 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 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 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 붙인다.
사실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바닥과 천 년 묵은 예술품에 감사하는 마음, 뭔가를 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포스기를 두드리는 등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있잖아, 정말 나쁘지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만들었는데도.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 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 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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