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책이었는데 글이고 내용이고 전혀 눈에도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얀 것은 종이요 푸르스름한 것은 (네, 글씨는 푸르스름하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글씨라는 생각으로 마치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단어의 뜻과 문장의 깊이는 모른 채 그저 글만 읽었습니다. 결국 뒷부분의 1/5정도는 사선으로 읽었고 마지막 단편소설은 두장정도 읽고 책을 덮어 버렸습니다. 왜그랬을까요.... ?
그러다 1933년 3월에 갑자기 나치가 선거에서 이겼어요.부모님이 어느 당을 뽑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도 어디다투표했는지 잘 기억 안 나요. 아마 독일 국가 인민당이었을거예요. 그 당의 검정색, 흰색, 빨간색 깃발이 항상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선거일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겐 즐거운 일요일이었어요. 물론 다른 일요일과는 확연히 다른 일요일이었죠.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나도 물론이고요.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범죄자들과 일을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당시에는 알 수없어요. 내가 선전부에서 일할 당시 나한테 가장 높은 사람은 괴벨스였어요. 히틀러 바로 다음이었죠. 그런 사람의 지시가 부서를 거쳐 나한테 내려왔어요. 그럼 따를 수밖에 없죠. 러시아 군인이나 프랑스, 영국 군인들한테 총을 쏘라고 명령받은 우리 병사들처럼요. 명령에 따라 총을 쏜 사람들을 두고 살인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병사들은 그저 의무를 다한 것뿐이에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부당한 짓을 한 경우에만 그럴 거예요. 하지만 난 누구한테도 그런 짓을 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녀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을 한편으론 사회적 극단화, 다른 한편으론 정치적 무관심을 꼽는다."비정치적인 사람은 외부의 영향을 받기가 쉬워요"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을 구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라포포르트는 여전히 평화를 사랑하고 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반면에 오직 나 밖에 모르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은 믿지 않는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이슬람에 대한 폄하적 논쟁과 부르카 착용 금지에 관한 혐오적 토론 같은 것들은 그녀가 국가 사회주의체제에서 경험했듯이 선동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결국 두 사람의 생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즉 브룬힐데 폼젤과 잉게보르크 라포포르트의 이야기는 파시즘이,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와 수동성, 무관심, 기회주의가 독일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한 세대의 어쩌면 마지막 경고라는 점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시민들은 아돌프 히틀러를 처음엔 괴짜 얼간이 정도로 무시하면서 침묵했다. 그러다 너무 늦어 버렸다. 브룬힐데 폼젤도 자신만의 행복과 성공, 경제적 안정을 쫓느라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 무심했다고 고백한다. 오늘날의 우리도 명백하게 드러난 괴물과 맞서 싸우고, 우리 시스템의 낙오자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는 일에 너무 태만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사회적 연대는 자기도취적 개성과 자기중심주의에 밀려 버렸다. "행복이라는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이 금언이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늦어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악몽으로 판명 되었고, 세계화의 과정에서 많은 낙오자와 마지막에 도널드트럼프까지 만들어 낸 그 아메리칸드림 말이다. 사회적 연대의 경험은 인도주의적 민주 사회의 엔진을 돌리는 연료와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다국적기업들의 배만 불리기 위해 연대의 해체를 점점 가속화하는 현재의 불공정 한 경제 시스템을 계속 용인한다면 우익 포퓰리스트들에게 또 다른 먹잇감을 던져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연대의 해체에는 항상 휴머니즘의 해체가 뒤따른다. 공감과 연대 같은 인간적 본능이 배척되는 사회는 더 이상 어떤 민주주의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추악하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브룬힐데 폼젤의 이기적인 태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속에서도 수없이 재발견되고있다.우리가 이 세상의 제도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은물론 우리 자신의 이익이 제도에 의해 배신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민주주의가 경제에 굴복한다면 포퓰리스트와 파시스트들은 오래지 않아 큰 어려움 없이 자신들의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법치 국가의 보존을위해 지금 당장 떨치고 일어날 이유는 충분하다.
작년 가을에 홀로 교토여행을 갔었는데요 밤에 키키키린과 관련된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보니 아마도 NHK의 ‘키키키린을 살다’라는 프로그램이었나 봅니다.) 당시 키키키린이라는 배우가 나온 영화를 몇 편 본 후였고 우리나라의 김혜자 배우님정도의 배우구나라는 생각으로 보았었지요. 일본어를 몰라도 화면만으로도 그녀가 시원하고 깔끔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사뇨요코 글처럼 귀여운 면도 있고요. 다만 그녀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여기저기 인터뷰를 짜집기한 내용이나 왼쪽에 중복된 문구를 크게 적어 놓은 구성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가볍게 읽을 수는 있었으나 그녀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나한테 신이란, 빛과 같은 거예요. 행여 벌을 내리실까?혼비백산하며 놀라기에, 신이란 그렇게 옹졸한 존재가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기도를안 하면 벌을 내리는 옹졸한 거래를 신이 할 리가 없다고봐요. 빛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가닿기 때문에, 그저 그빛을 받는 쪽이 흐린지 맑은지에 따라 그을거나 빛나거나하는 거라고요. 결국 과학이 발달해서 마음을 반사시키는 이 ‘빛‘을 규명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는 내판단을 넘어서는 존재를 거부하지도, 빠져서 허우적대지도않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고 싶네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도약하지도 위대하지도 쓸모없지도 않으니까요.
서로 지나치게 마주보고 있으니까 결점이 다 보일 수밖에요.그러다가 어쩌다 이런 사람이랑 같이 산다고 했을까 생각하면우울해지죠. 그런데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차라리공동의 관심사를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렇다고 자식한테 너무 신경을 쓰면 애들도 피곤해하니,이 세상에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것말고는 나도 잘 몰라요.결점이 있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쪽이 남편을 싫어하는만큼, 당신도 남편한테 미움받고 있을 거라고요.
어제 ZOE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고 나니 이 책에 수록된 ‘정시에 복용하십시오‘라는 단편이 생각나더라구요. 영화는 정말 좋았고 슬펐습니다. 인간의 애정이라는 것이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소설이며 영화가 나왔다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 원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난 괜찮아, 난 날 사랑하거든˝이라며 쿨하게 살 용기도 없는데다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어떤지 이미 알기에 포기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