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구병모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책이었다. 이번에 새로나온 프리퀄(파쇄)를 읽고 나니 다시 ‘조각‘을 만나고 싶어졌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마치고 나면 홀로 영화캐스팅을 해보게 된다. 10여년전쯤 읽을 때는 이혜영배우님이 조각을 연기해주시면 좋겠다 생각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배우님의 나이가 조각과 비슷해졌으니 더욱더 영상으로 만나고 싶은 바램이다.
"장래 희망이 뭐야?" "선생님"대충 자기소개서에 썼던 직업을 말했다."아니, 직업 말고"자기는 직업을 물은 게 아니란다. 정말로 장래의 희망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장래 희망 하면 왜 꼭 직업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인생이 다 직업에만 달려 있는 것처럼.""넌 그럼 뭔데?""나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랑 갈색 강아지 한 마리랑 얼룩 강아지 한 마리랑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황당한 대답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되게 어려운 거야. 반려동물을 네 마리나 키우려면 경제적 상 항도 좋아야 하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귀여우려면 매너나 마인드도 좋아야 해. 그리고 옷도 귀엽게 입어야 해. 손으로 뜬 스웨 터 같은 거. 즉 손재주도 좋아야겠지. 평생을 바쳐 이뤄야 하는 장래 희망 아니냐고"수민이는 다시 내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그런 식의 장래 희망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하자 지금 생각해 보라고 했다."난.....전단지에 붙은 얼굴들을 주의 깊게 보는 어른이 되 고 싶어. 혼자 걷는 아이에게 부모님은 어디 있냐고 묻는 어른이 되고 싶어. 슬픈 기사에 악플 대신 힘내라고 댓글 다는 어른이 되고 싶어."나도 모르게 단숨에 말하고 조금 후회했다."그건..... 너무 쉽게 되겠다.""만약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너, 불운의 속성이 뭔지 알아? 피하고 숨으면 더 찾아다녀. 자기를 의식하는 사람들한테 애정을 가지고 있거든. 아주아주 외로운 놈이야 그거.""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내 말 잘 들어."선생님은 몸을 내게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인생의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려 준다는 듯이. 그 비밀에서는 땀 냄새와 점심에 먹은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불행이 다가오면 움직여선 안 돼. 반응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최대한 그대로 지속하는 거야. 모든 것을. 알겠어?"
"우리 직원 모두, 혜진 양의 얼굴을 매일매일 봐 왔어요. 혜진양이 나타나면 1초 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어요. 기운 내세요."우리 가족 말고도, 이 세상 어딘가에 혜진이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 태어나 들은 그 어떤 말보다 단단하고 힘센 말이었다.호텔에 온 건, 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