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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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로 졸부가 된 최사장은 널금저수지 사용권을 따내자 저수지에 고기를 풀어 양어장을 만든다.
그리고 동네 왈짜 임종술을 저수지 감시원으로 고용한다.
마누라는 도망가고 딸 하나를 홀어머니가 키우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남자에게 감시원이라는 완장이 채워지는 순간 위세가 등등해지고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한편 종술은 마음에 두고 있던 실비주점의 작부 김부월에게도 완장의 위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애를 쓴다.
농사철이 되지만 가뭄이 계속되고 천수답인 마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 수문을 열 수 밖에 없게 되자 종술은 수문여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출간된 ‘완장’은 오래전에 tv드라마로 먼저 본 소설이다.
종술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완장이 허망하게 물길을 따라 맴돌던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드라마는 어리석은 남자가 쥐었던 권력의 허무함에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완장은 찬 사람의 자격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일 뿐인데 어느 순간 권력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복종하게 한다.
어리석은 남자는 자신이 찬 완장이 대단한 권력인 양 그것을 꼭 쥐고 있지만 완장 뒤에 숨은 진짜 권력자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뿐이다.

종술의 완장이야 봄날의 꿈 같이 잠깐 스치고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더 큰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팔에 완장이 둘러진 순간 위임받은 권력인 줄 모르고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 양 휘두르고 있다.
방법은 하나 그들에게 권력을 잠시 맡겼던 이들이 혼구녕을 내주던지 그 알량한 권력을 뺏는 수 밖에 없다.
소설은 지금도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이 자신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현대문학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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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위픽
이혁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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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자율주행 자동차 슈마허가 상용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무관하지 않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슈마허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면 가정에서는 무버라는 아동용 휠체어처럼 보이는 교육용 머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슈마허의 사고율이 발표되면서 판매량이 지지부진해지고 회사의 재무 상황이 나빠지게 되자 대표인 세희는 개발자인 재호에게 사고 후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극단의 조치를 요구한다.
피할 수 없는 사고라면 사고 대상들에 대한 가격표를 매겨 슈마허에게 입력시키는 방법으로 사고 후를 대비하게 한다.

학교 이사장인 영인은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찻길로 떨어지게 되고 아이와 노인의 가격 비교에 의해 영인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
뺑소니운전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영인은 끝까지 사고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가격표 입력을 숨기고 싶은 회사와 두렵고 지리한 싸움을 시작한다.

한편 무버를 사용한 아이들은 학습능력은 향상되지만 무버의 사용 시간이 늘면서 걷지 않는 아이들이 등장하게 되고 세호의 아들 건주 역시 걷지 않게 된다.
세호의 아내는 아들의 무버 사용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걷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아이와 사이만 멀어질 뿐이다.

“단 한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기치를 내건 시리즈의 소설들은 대부분 100페이지 안팎의 짧은 소설이 대부분이다.
이혁진 작가의 소설 ”단단하고 녹슬자 않는“은 2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야기로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보다는 긴 편이다.

소설은 자율주향자동차가 사고를 피할 수 없을 때 어떤 선택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노인보다 아이를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선탁해야 옳다고 입력하지만 누구도 그 선택이 맞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슈마허에 입력된 가격표에 찬성할 수 없다가도 그 선택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내가 이상한 가 싶다가 만약 사고의 당사자가 내가 된다면 그 모든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영인이 대세가 된 슈마허를 상대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건주를 걷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삶에 의미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 아무리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다 해도 소설 속 선택들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한편으론 무섭고도 두렵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로 읽고 자유롭게 느낌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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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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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는 일제 강점기 영화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이경손이다.
이경손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현앨리스는 이경손의 사촌 누이의 딸로 포와(하와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의 신여성이다.

이경손의 집안은 대대로 의관이었지만 목사인 앨리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신학교를 다니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고 예술 학원에 다니게 된다.
앨리스네 가족은 독립 운동을 위해 떠난 아버지를 찾아 상해로 이주한다.

시간이 흘러 이경손은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짧은 성공과 잦은 실패를 반복하고 다시 만난 앨리스는 경손에게 끽다점 동업을 제안한다.
경성 한복판 관훈동에 차린 끽다점 카카듀에는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들고 얼마지나지 않아 앨리스와 카카듀의 비밀이 드러난다.

소설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예술인들과 일제 감정기에 나라를 위해 힘을 모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량들이나 드나들 것 같은 끽다점에는 고뇌하던 예술인들이 모이고 흥청망청한 분위기 속에는 더 큰 비밀을 숨기고 있다.

소설은 이경손의 영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앨리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국적인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는 인물이었지만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뒤를 이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을 쏟는다.

실재하였으니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가 세월이 흘러 독립 후 자신이 사랑했던 사상때문에 조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독립운동가들 조차 좌우로 나누어 평가하는 세상에 사는 까닭에 더 마음이 아팠던 소설은 사업가로 큰 돈을 벌었지만 예술가로는 큰 획을 긋지 못한 이경손의 이야기가 괜히 마음이 쓰인다.

마침내 앨리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인물도 사물도 아닌 사상이었다. (p260)


<도서는 안온북스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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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장민주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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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흔히 있는 주택가 골목길 막다른 곳에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쌓인 덕에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떨어져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카페 “도도”가 있다.
소로리라는 카페 주인은 느긋하게 커피를 내리고 딱히 정해진 메뉴없이 찾아오는 손님 맞춤으로 찬찬히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다

소설은 밤에만 열리는 1인 전용 카페 도도에 찾아오는 5명의 여성 손님들의 이야기다.
코로나 이후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번역가 가에는 현실이 아닌 SNS에 빠져 자기계발에 힘쓰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문제로 남자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세라는 남자 친구가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서운하기만 하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과로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요코는 휴식이 필요하다.
미용사로 일하는 아야카는 실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과도한 방역 수칙과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다.
디자이너 무쓰코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코로나가 온 나라를 휩쓸때 우리 역시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자유롭게 외출도 하지 못했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두려워했다.
소설은 코로나 팬더믹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다섯 명의 여성들은 소로리가 이끄는 데로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차려 카페를 나선다.
소로리는 고민이 있는 손님에게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손님들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음식을 내놓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누구보다 스스로의 고민이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해결책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고 자신이 내린 해답을 확인 받고 싶어한다.
카페 도도를 찾은 손님들 역시 누구보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도 이미 알고 있다.

소로리가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소로리가 건네는 따듯한 한 마디의 말에 힘을 얻을 뿐이다.
충고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대에서 60대의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의 고민이 동떨어진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현실에서 겪었음직한 일이라 더 공감이 된다.
일본에서는 속편도 출간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데 우리나라에도 얼른 번역돼 도도 카페의 다음 이야기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는 더퀘스트 출판사에서 선물 받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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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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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소설은 재미있다.
모두 9편이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술술 읽히지만 나는 경험한 적 없는 처지에 놓인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이해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소설은 모두 유학이나 이민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코로나 시대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2주의 격리를 불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가 있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진 이도 등장한다.

어린 시절 낳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진짜 부모와 함께 디즈니월드에 간 소녀도 등장한다.
아내가 유리에 부상을 입지만 더 싼 치료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남편도 등장하고 결혼기념일에 떠난 여행지에서 진짜인지 환상인지 모를 옛 연인을 만나는 주인공등도 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지만 비슷한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사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며 이것이 인생인가 싶어진다.
그래도 당신들은 꿈을 찾아 그곳이 갔으니 나는 이곳에서 당신들은 그곳에서 우리 멈추지 말고 끝까지 살아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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