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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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쏘공”을 처음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시대를 살았지만 도시 빈민의 실상을 모르고 읽었을 것이니 뇌리에 그리 깊이 박힌 이야기는 아닌 탓에 누구 앞에서 읽었다고 잘난체 할때나 써 먹던 소설이었다.

초판이 1978년 발행되고 2024년 2월 325쇄를 돌파했다니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고전에 반열에 올랐다 할 것이다.
표제작인 난쏘공을 포함해 모두 12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 소설집은 70년 대 서울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 살고 있는 난장이 가족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난장이인 아버지와 영수, 영호, 영희 남매와 어머니가 살던 집이 철거되고 아버지는 죽고 가족들은 은강으로 터전을 옮긴다.

나는 어린 시절 깡촌에서 살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있었고 농사를 지을 땅이 있어 춥거나 배를 곯았던 기억은 없다.
고향 친구들 중에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미싱사가 되기도 하고 공장에 다니다 명절때면 고향에 내려와 서울의 환상을 심어주곤 했다.

나에게 서울은 63빌딩이 있고 대공원이 있고 뚝섬 유원지의 오리배가 있던 꿈에 도시였지 누군가는 살 집을 잃고 배를 주리고 죽어가던 도시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고 여전히 난쏘공이 읽히는 시대라 슬프고 누구든 난장이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서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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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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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체 기관 중 중추신경계를 관장하는 무게 1.4~1.6kg인 뇌의 중요성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모두 12장으로 된 저서는 “뇌에 손상을 입고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완전히 뒤집힌 사람들의 이야기”(p15)를 하고 있다.
책에 실린 현상 대부분은 뇌에 발생한 장애에 의한 것이나, 일부는 멀쩡한 상태의 뇌이지만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례들도 실고 있다.

“각 장에서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는 뇌와 관련된 보기 드문 현상”들을 실존 인물들의 실제 증상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단순히 흥미 위주의 이상 행동뿐 아니라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의 작용도 함께 설명”하고 있어 뇌의 영역별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책에 실린 일부 이상행동은 메스컴에 등장하기도 하며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도 한다.
쓰레기를 모으기도 하고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먹기도 하고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뤄줄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아무 이유없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상실을 견디는 방법으로 죽은 이를 현실에 불러내 만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누구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는 한편 두렵기도 했다.
뇌를 다룬 과학 도서로 분류된 도서는 읽는 내내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인색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 사람의 성격이 이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고 단지 뇌병변으로 인해 그의 의지가 포함되지 않은 행동일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까지 가십으로 소비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이 아닌 실제 우리 몸의 일부인 “뇌”이야기는 과학 분야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본 도서는 부키 출판사에서 협찬해 주신 도서입니다. 평소 잘 읽지 않는 분야의 도서지만 덕분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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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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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살기를 계획한 친구의 일정이 틀어지면서 ‘너’는 친구가 예약한 숙소에 머물게 된다.
친구의 이름 ‘오세정’을 너에 이름 ‘최유진’으로 정정하지 않은 체 그곳에 머무른다.
아무도 너를 모르는 추운 제주에서 죽은 새를 관리인과 함께 묻으며 그의 손을 잡게 된다.

소설은 특이하게 2인칭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혼자 제주의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오세정이어도 상관없고 최유진, 오로라여도 상관없는 그 곳에 머무르고 싶어졌다.

그의 전화를 받지 않다 나중에 전원을 끄던 너는 제주를 떠날 때는 분명 그의 번호를 차단할 것이라 믿어본다.
그리고 바람이 많은 제주의 돌담에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있어야 무너지지 않듯이 너는 반드시 성기지만 단단한 절대 무너지지 않는 돌담을 쌓고 돌아갈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질투따위는 없다.
제주를 떠날 때 너는 더 강해지고 늘 꿈꾸는 이름 오로라도 친구에 이름 오세정도 아닌 최유진으로 당당히 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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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속삭임 라임 그림 동화 37
데나 세이퍼링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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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휴대전화의 사진첩에 꽃 사진이 가득하게 됐습니다.
꽃집에서 파는 크고 화려한 꽃도 좋지만 고개를 숙여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은 봄꽃도 좋아졌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니들 펠트 공예가로 활동했던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인 “꽃들의 속삭임”입니다.
단순한 색상의 연필로 그린 그림 속 꽃들은 어떤 화려한 빛깔의 꽃보다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꽃은 번식을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쓰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방법은 벌을 이용한 수분일 것입니다.
벌은 꽃에게서 달콤한 꿀을 얻고 꽃은 벌 덕분에 씨앗을 만들어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림책은 단순히 벌과 꽃의 공생 관계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꽃들이 저마다 들려주는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몇 송이 꽃만이 외로이 살고 있던 풀밭에 어느 날 아기 호박벌이 도착하고 꽃들은 아기 호박벌을 다정하게 맞이하며 “베아트리체”라는 이름도 지어줍니다.
시간이 지나 베아트리체가 날 수 있게 되자 꽃들은 자신들의 말을 가르쳐줍니다.
아침 인사를 나눌 때,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림책은 곤충과 식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꽃마다 붙여진 ‘꽃말’을 자연스럽게 알려줍니다.
수선화의 꽃말은 희망이고,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맹세고, 수레국화의 꽃말은 우정이랍니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건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한 번 건넨 다정한 말은 다시 나에게 감사의 말로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꽃이 품은 말, 꽃말”에 소개된 꽃을 그림책 안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많은 수고가 들어간 그림과 다정한 꽃말들을 찾아보며 저는 행운과 행복을 주는 은방울꽃을 선물 받고 싶어졌습니다.


<본 그림책은 라임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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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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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 카스다 소위에게 일요일 새벽, 손님이 찾아온다.
명예롭지 못한 일로 군대에서 쫓겨난 옛 동료인 전직 육군 중위 보그너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거금을 횡령해 위기에 몰리게 되자 카스다 소위에게 도움을 청한다.

카스다 소위의 수중에는 보그너에게 빌려 줄 돈은 없었지만 다른 방법을 써 그를 돕기로 하고 주말이면 가끔 재미삼아 하던 카드 게임에서 돈을 따 보그너에게 빌려주기로 마음 먹는다.
처음엔 계획대로 많은 돈을 따지만 새벽이 가까워 올수록 그의 행운은 다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까지 모두 잃고 얼떨결에 빌린 도박빚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점점 그의 목을 조여온다.

의사이기도 한 작가 자신도 도박에 중독돼 재산을 탕진한 적이 있어서인지 모든 것을 다 잃고 돈을 빌려주기로 한 친구에게까지 독촉을 받는 카스다 소위의 심경을 잘 그린 듯하다.
살면서 도박은 커녕 복권을 사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인 내가 카스다 소위가 행운이 다 해가는 도박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진 것을 전부 잃고 부지불식간에 거금의 빚을 지는 순간까지 전부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 그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밤의 도박>은 “완독으로 이끄는 재미, 정독으로 느끼는 감동”을 캐치프레이즈를 건 빛소굴의 페이지터너스의 열 번째 이야기다.
빛소굴 덕분에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됐고 아직 읽지 못한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야 겠다는 의지를 불 타오르게 할만큼 소설은 몰입감이 크다.
그나저나 주말내내 우울한 작가가 쓴 소설과 이틀 만에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의 소설을 읽었더니 좀 상콤한 이야기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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