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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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이어 가장 가성비 넘치는 단행본이라고 생각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 가장 최근의 한국 문학과 저자 인터뷰를 동시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처음 읽을 때도, 책태기가 왔을 때도 읽기 좋은 책이다.



2020년 봄의 ‘이 계절의 소설‘로는 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세 여성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김혜진의 ‘3구역,1구역‘에서는 재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한 두 여성이 등장한다. 인간은 마냥 선하지도 마냥 악하지도 않다. 이 소설 속 두 인물 또한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사연을 더 들어보고 싶고, 두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이 이야기가 장편으로 쓰여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을 읽으면서는 그야말로 박수 백만번!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청년세대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소설은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유지원과 이찬휘가 같은 조가 되면서 시작된다. 가장 오래 머물러있었던 문장은 취준생인 주인공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큰 회사라는 건 망하지 않는다는 뜻일테니 대성공보단 폭망하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화룡점정은 유지원이 자신도 모르게 이찬휘의 외모에 홀려버리는 순간이다. (인터뷰에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지하철에서 읽다가 기립박수 칠 뻔 했다. 꼭 읽어보시길!) 으아 장류진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 너무 기대된다.



마지막은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 보나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정치적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소설이다. 일기예보처럼, 일상 속에서. 심지어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영자원 이야기도! 인터뷰에서 저자가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랑과 혁명.‘이라고 답한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사랑과 혁명은 공존할 수 있다. 반드시 하나의 가치만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정치는 일상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내 주변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만 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소설 읽기 너무 재밌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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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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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소란>이 난다 출판사에서 새 옷을 입고 나왔다. 같은 글들이지만 북노마드에서 나왔던 버전과는 다르게 묶였고, 책의 판형과 활자, 표지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글들인데도 처음 읽는 것 같았다. 물론, 좋았다.



<소란>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도 슬픔도 외로움도 넘친다. 조금은 날카롭고 방어적인 것도 같다. 그렇지만 비장함 또한 느껴진다. 다 사랑하고 나서, 다 울고 나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소란>의 저자가 몇 권의 책을 지나 <모월모일>에 당도했다고 생각하면 좀 멋지다.)



몇 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의 태도도 전부 변했다.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그런가?) 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 때의 묘미는 과거의 자신 또한 겹쳐보인다는 것. 당시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바보 이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글을 특히 아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는 알고서도 외면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아끼는 글들 중 하나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소란>이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밝힌다. 또한 당시 글을 쓰면서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아 자유로웠노라고. 당신이 생의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든 ‘어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단번에 이 책을 아끼게 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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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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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에 이은 정희진의 글쓰기 두번째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이 책에는 전작에 이어 저자가 한겨례에 연재했던 ‘정희진의 어떤메모‘ 칼럼 63편이 실려있다. 저자는 각각의 글마다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적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서문에 적힌대로 ‘나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면, 저자는 단순히 쓰는 일을 넘어 읽고, 성찰하고,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그는 ‘살아내는 대로‘ 쓰는 사람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쓴 글 속에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안다. 글만큼 글쓴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적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글쓴이가 문장 앞에 얼마나 솔직했느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치열하게 사유하고 그것들을 숨김없이 풀어냈다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으리라. 또한 ‘내가 쓴 글은 (그 당시의) 나 자신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좋아하는 책들이 자주 등장해 기뻤다. <침묵의 세계>, <늙어감에 대하여>, <캐롤> 그리고 <헝거>외 몇 권 더. 하지만 정작 나를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었다. : ‘˝나는 전혜린˝이며 예술가는 모두 백혈병으로 죽는 줄 알았던 감상적인 문학 소녀‘(95p), ‘독서의 문장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해서다.‘(121p).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적겠다. 나를 들킨 것 같아서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된 것들도 많았다. 동화가 ‘아동에게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당연하게도 현실에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없다. 아,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한 여성 혐오적인 판타지는 동화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이번 책에서는 삶과 죽음, 외로움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다시금 이 책을 바쁘게 들춰보며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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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 헤매기 -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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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의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런던 거리 헤매기>.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열 여섯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짧은 호흡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저자의 세밀하고도 긴 문장이 어려웠던 이들이라면 이 책으로 그녀를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단연 독서가에 대한 글인 ‘서재에서의 시간‘과 마지막에 실린 ‘여성의 직업‘이다. 먼저 ‘서재에서의 시간‘. 이 글에서 저자는 ‘참된 독서가는 본질적으로 젊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젊음 상실의 징후‘로서 고전 독서에서 동시대 작품 독서로의 이행을 다루고 있다. 동시대의 글을 읽을 때는 고전을 읽으며 갈고 닦은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고전이 오랜시간 살아남은 수작이라는 점에서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고전이 고전으로 살아남기까지는 당대의 시대 문화적 요소가 개입되었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예술가들에게서 얻는 기쁨이 가장 최고의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여성의 직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여성으로서 글을쓰기까지 ‘집안의 천사‘을 죽이고 ‘인습과 관습이라는 유령‘과 싸워야 했음을 고백한다. 전자는 무조건적으로 수용적인 여성상이고 후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자아발견의 어려움을 뜻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분열적일 수밖에 없고 진짜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굴곡을 넘어야 한다. 더디지만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나에게 있어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은 문장들의 유려하고 섬세한 표현에 있다. (번역된 문장으로도 느껴질 정도이니 원문으로 읽으면 더 좋겠지. 귀찮음을 극복한다면 언젠가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새삼 그녀의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에 감탄했다.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것들을 빌미로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낮추지 않는 사람. 과연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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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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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태어났다.˝



<출신>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났지만 내전을 피해 독일로 이주한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소설이다. 자필 이력서를 쓰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한 저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비셰그라드에서부터, 처음부터 독일어를 배워야했던 14살, 그리고 추방당한 부모님을 뒤로하고 혼자 살아내야했던 시간들까지.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책 소개에 적힌 작가 이력을 충분히 숙지하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현재 시점의 작가와 어린 시절의 작가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다가, 그가 겪었던 두 나라에서의 삶 자체가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팽팽하게 교차하듯 저자의 문장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과거를 헤집어 풀어놓기란, 분절된 역사를 기억해내기란, 현실 속에서 죽어가는 할머니와 마주하기란 그리고 그것을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란 역시 쉽지 않은 일.



출신, 이라는 말이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출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낙인같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에 대한 내 심경은 복잡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준다. 무엇이든 대답할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출신을 묻지 않는 날이 올까? 인종과 계급과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냥 한 개인을 한 개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요즘같은 시대엔 더더욱 모든 것이 모호하기만 하다.







(* 서포터즈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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