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년만의 페이퍼....가 아니구나.
1.
무료진료를 갔다. 장소는 무등경기장. 3일동안 치뤄지는 아마 야구였는데 경기가 치뤄지는 내내 의료진이 한명 있어야 한단다. 우리병원에 의뢰가 왔고, 스케줄이 정해진 후에 결정된 탓에 꿀 같은 휴식의 오프자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택되었다. 마지막 3일째날은 일요일이었고, 오프자는 나였다. 나에게 주말 오프가 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주말이 필요한 분들은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선배님들의 차지. 난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고, 근무한지 10년이지만 뒤에서 두번째인 막내급이었다. 난 야구를 좋아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아주~~ 많이 좋아하지만. 아마 야구는 거의 보지 않는다. 거기에 일요일 오프를 반납할 정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녀와라. 너 야구 좋아하잖아. 팀장님의 말에 네. 대답을했다. 거절을 할 수가 없다. 난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어서 일요일 오프는 정말 나오기가 힘든데 그것마저 이렇게 반납할 수는 없어요. 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혹시나 타이거즈 선수들을 만날까봐. (그럴일은 없을것이다. 부산에서 열심히 거인들과 싸우고 있을테니까) 아이라인도 했다. 아이팟을 챙기고, 마실 물을 챙기고, 눈치보며 볼 책도 챙겼다. 경기가 세 경기니 한권으론 부족할테니까. 담당자와 통화후 경기장에 도착했더니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으로 날 데려간다. 의료진은 한명. 나 한명. 아는 사람 전혀 없는 곳이라 어쩔수 없니 드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평소보다 배는 더 웃고 있던 참이었다. 노력과는 상관없이 바들거리는 경직된 입술을 부비고 있으려니 어느새 나를 귀빈석으로로 데려다놓는다. 엄훠낫~
빵빵한 에어컨에 한기마저 드는 곳이었다. 정면에는 야구장
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앉아 있는 곳이 위쪽이어서 전광판
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쉬웠다. 경기보는 내내 아래
쪽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오시는 야구 원로님들 때문에 있는 자리마저 뻇길 위
험에 처한터라 입 꾹 다물고 앉아 자리 유지하는데 온 힘
을 쏟았다.
책상에 앉아 의료물품은 아래쪽에 내려놓고, 책과 아이팟 그리고 핸드폰을 차례로 올려놓는다. 혹시 몰라 수첩과 연필도 꺼내놓았다. 아가씨가 야구 좋아한다는 그 아가씨요? 나보다 먼저 와서 앉아계시던 분이 묻는다. 더운 날이었지만 너무 강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손가락이 굳으려는 참이었다. 그 분 직업이 뭐에요? 경기가 끝난후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차안에서 관계자에게 물었다. 전 야구인이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네. 아마도 그 아가씨가 저 일거에요. 웃으며 전 야구인에게 대답을 했다. 먼저 온 아가씨는 홈런이 뭔지도 모르던데. 푸핫~ 웃음이 터졌다. 그 선배님은 한이닝에 아웃이 10번이 되야 바뀐다고 말해도 믿을겁니다. 그래도 아마야구는 잘 안보지 않아? 본적 있어? 그분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예전에 정영일이 연장전까지 엄청난 공을 뿌릴때 봤었죠. 몇년전인지는 생각이 잘 안나는데. 그때 좀 이슈였잖아요. 정영일도. 그 경기도. 대화가 끊기고 경기가 시작됐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관계자도 전 야구인도 앞을 쳐다봤고, 나 역시 두팀이 인사를 위해 힘차게 가운데로 달려가는 걸 보며 화이팅을 외쳤다.
총 3경기 중에 집중을 해서 본 경기는 처음 펼쳐진 중학부의 결승전이었다. 책을 펴 놓긴 했지만 웬지 다른 분들의 눈치가 보여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던 중이었는데 포수를 보고 있던 자그마한 선수가 눈길을 끈다. 중학부지만 선수인 탓에 모두들 키가 장신. 웬만한 대학생보다 좋은 몸을 가진 선수들 사이에서 튈수밖에 없는 아직 자라는 중의 선수였다. 포수 장비를 둘러메고 있는 게 상당히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 선수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안타치고 나간 1루의 타팀 선수를 향해 빠르게 견제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내야 수비수들에게 연신 사인을 보내며 수비위치를 변경해준다. 연속으로 볼을 뿌리는 투수에게 어깨를 들썩이며 힘을 빼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얼씨구?
잘 보이지 않는 전광판을 보기 위해 엎드려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포지션을 찾아 그의 이름을 찾는다. 오잉? 남들보다 아직 자라는 중의 그는 3번이다. 무려 중심타자. 놀라움의 연속이다. 프로선수들처럼 동료들을 독려하는 것도, 중심타자라는 것도. 그 선수만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이닝.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역전 주자가 나간 만루상태의 투아웃. 타자는 놀랍게도 그 선수다. 팔짱을 끼고 옆 사람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쳐라. 쳐라. 제발 쳐라. 쳐라. 그리고 이겨라. 투 스트라잌 상태에서 투수가 힘차게 뿌린 공에 그는 강하게 배트를 휘두른다. 볼은 포수 미트에 꽂혔고, 상대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 이런.
그가. 그냥 봐도 자기 얼굴에 커보이는 헬멧은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무릎에 댄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나와 정렬을 하는데도 땅에 놓은 헬멧만. 햇빛에 그을려 자신의 얼굴과 팔만큼이나 검은 헬멧만 주시한다. 호흡이 거칠다. 어깨는 힘이 빠져 아래로 쳐져있다. 얼굴을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헬멧을 집어들고 허리를 편다. 그리고 동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상대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더웠다. 더운 날씨였다. 그의 어깨가, 그의 뒷모습이 더웠다. 평소보다 훨씬 더울 것이다. 몸도 마음도. 그는 들을수 없는 내 마음으로 물었다. 뭐했니? 무슨 생각을 했던거니?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가 아쉬워서 그러니? 아니면 중요한 찬스를 날려버린 너에게 화가나서 그래서 분해서 그런거니? 아니면 경기를 곱씹으며 앞으로의 네가 할 일을 생각한거니?
경기가 끝나고 장비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그 아이를 보며 수첩 한구석에 이름과 등번호, 속한 학교를 적었다.
아이 호랑이야. 커라. 무럭무럭 자라라. 아쉬움도 화남도 분함도 모두 갖고 무럭무럭 자라라. 네가 훌륭히 자라서 타이거즈에 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난 너의 팬이 되줄께. 네 이름을 꼭 기억해서 설사 네가 야구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더라도 나중에 내 아이에게도 말해줄거다.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얼마나 열심히 집중했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흐뭇하게 했는지. 얼마나 분해하며 아쉬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멋졌는지. 오늘이 쉬는 날이어서, 파견을 오게되서 그래서 너를 알게되서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 해 줄게.
2.
읽고 싶어서 보관함에 놔두지만 막상 사려면 망설여지는 책이있다. 나에겐 차이나 미에빌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 그랬다. 꽤나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겨있었고, 결제 할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기지만 결국엔 다시 보관함으로 빠져나가는 책.
그런데 이벤트를 한다. 작가의 또다른 소설 "언런던" 을 구입하면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을 준단다. 헐. 그러니까 늘 장바구니에서 맴돌다 보관함으로 들어가던 그 책은 이렇게 이런식으로 구입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 책은 살때만 망설여지는 게 아니라 읽을 때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하나의 비닐에 묶인 4권의 책은 그 뒤로 두 어번의 다음 결제가 있었음에도, 그리고 뒤에 도착한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한몸으로 묶여있다. 이게 그러니까. 읽을 것이다. 읽어야 한다. 당연히, 결국엔 읽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는 말이지. 같은 운명의 "세상 종말 전쟁" 은 1권의 중간부분까지 색이 바래있기라도 하지(읽다가 관둬서 다시 읽는 바람에) 이녀석들은 껍질(?)도 못 벗고 있단 말이지. 비닐을 못 벗기겠어. 때 탈까봐. 언제 읽을지 장담을 못 하는데 희망고문을 주어선 안돼. 그럼. 그럼.
3.
여동생이 일어났다. 난 쉬는 날이었고, 여동생은 일을 나가야 한다. 그녀가 갑자기 바닥에서 몸을 틀더니 괴이한 (상당히 괴이한) 자세로 몸을 꼬아 위를 올려다 본다. 너 뭐하니? 책장 보는거야. 눈꼽 낀 눈에 힘을 주어 책장을 살핀다. 여전히 괴이한 자세로. 찾는거 있어? 아니 언니가 나 보라고 한 책 있었는데 생각이 안난다. 쉬는 날이라 느즈막히 일어나도 되건만 이 녀석 때문에 졸지에 새벽밥 먹게 생겼다.
몸을 일으켜 "극락컴퍼니"를 빼들었다. 재미있어? 동생의 물음에 응 나름 볼만하다. 무엇보다 쉽게 읽히니까. 네가 읽기 편할꺼야. 가벼우니까 휴가지에서도 읽기 좋겠다. 동생은 잠자코 가방에 책을 넣는다. 가방안에는 벌써 큰 부피를 가진 "왕좌의 게임"이 들어있었다. 아직도 읽고 있는거야? 응 그래도 이젠 2권이야. 너랑 막내는 재미있다고 하는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러면서도 "왕좌의 게임" 위에 "극락컴퍼니"를 올려두곤 기꺼이 큰 무게를 감당한다. 착하다. 웬지 예뻐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4.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지리산 온천. 식구들 근무 후에 가는 거라 도착 시간이 저녁 10시였는데. 다음날 여섯시부터 아버지는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갈려면 어서 지금 몸 담그러 가자. 다 일어나! 난 야근 후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나왔고, 동생들도 각각 직장과 학교에서 지치도록 활동을 하고 온 상태.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찜질복을 받아들고, 야외 온천으로 나갔다. 당연히 사람은 없고, 몇개의 탕은 오픈도 안 한 상태. 넓은 야외 온천이 우리 가족 차지였다. 막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부모님은 온천보다 모처럼 나들이에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연신 좋다를 외치며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근다. 막내가 식구들을 모았다. 둥글게 서서는 카메라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사진을 찎는다. 머하는거냐? 목소리가 높아진 아버지의 말에도 꿋꿋하게 자세를 잡으며 셔터를 누른다. 발 사진 찍는건데요. 가족 발 사진.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야단을 치는 아버지가 사진 확인을 하곤 입을 다무신다.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ㅎㅎ
발가락이 닮았네~
다른 사진보다 크게 뽑아 거실 텔레비전 옆에 두었다. 동생이 액자를 사올텐데 거기에 끼워 백년만년 거실을 장식할 것이다.
그런데... 내 발이? 내 발은 어디있을까요? ㅎㅎ
5.
나는 가수다에 새로 자우림이 합류한답니다. 개인적으론 좋지만. 나의 이승열은 어디에?
어디선가 카더라 통신은 이승열이 대기중이라고 그렇게 말하던데. 시즌 2가 나온다던데. 혹시 거기에?
조수미의 노래를 부른 박정현이 최고의 득표율이 나왔데요. 오옷~~
김조한과 윤도현 박정현이 부른 데스페라도를 들으셨나요? 오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