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국영화에서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다룬 이야기는 많다. 별로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대개 남자들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 여자는 그 남자들만의 교환 경제에 편입될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의 온갖 갈등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은 남과 여의 일대일의 결합이라는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는 서사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빈집의 포스터는, 그리고 빈집의 결말은 언뜻 보기에 일대이의 공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일대이인가?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빈집을 돌아다니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 남자는 빈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할 뿐, 그 밖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그 남자는 남편에게 매맞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이 빈집을 돌아다닌다. 나중에 경찰의 신고로 남자는 감옥에 갇히고 여자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감옥 속에서 남자는 "유령되기 연습"을 통해(어떻게 하는가하면, 자신의 손바닥에 눈동자를 그리는 것이다. 곧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교도소 간수의 혹독하고도 일방적인 공격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을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출소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간 남자는 여자와 함께, 그리고 그 남편과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의 포옹이 이루어지는 체중계 위의 눈금은 0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장자로부터의 인용이 마지막 자막으로 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실로 유령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들은 그를 어떤 서늘한 기운으로 느끼긴 하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 이 남자를 가리켜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빈집을 들르는 이 남자는 자체로는 현전하지 않는, 그러나 동시에 그 빈집의 '소유주'들에게 있어서는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처치곤란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 유령에게 우리가 해야 할 공정한 태도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어떤 평자는 데리다를 따라서 유령의 존재론에 이어 환대의 윤리학이라는 테마를 섣불리 끄집어 내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교훈으로 '무조건적이고 유보없는' 환대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약간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어떤 '노마드적 삶'의 양식을 자본주의적 대안으로던져주고 있다고 보기도 좀 무리가 따른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 남자라는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해 매맞는 여자와 남편의 결혼생활은 다시금 어떤 질서와 안정을 되찾는 것 같다. 곧 남자는 이 둘 모두에게 있어서 현실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환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때 그 남자라는 유령적 환영을 대하는 남편과 여자의 태도는 같지 않지만, 최소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적인데, 이들 모두 남자의 유령되기 연습처럼 손바닥에 그려진 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손등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때 현실적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맹점, 또는 상상적 착각의 필연성의 문제는 자연히 뒤따라 나오는 것이겠다. <말>지에 실린 정성일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영화를 보고나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아쉬움을 거의 흡사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인용해본다.

"그는 점점 더 세상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각자의 구원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기덕은 이제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 자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이제 무능력에서 무관심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고 그가 이제 순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견해에 반대하는 까닭이다. 그는 주관적 목적론의 그 어떤 전도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슬프다. 김기덕은 그 싸움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현실적인 좋은 세상의 환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공동의 객관적 착각의 공존을 위해, 더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관적 착각의 왕국에로 이끌렸다."
"공동의 객관적 착각", 이 말들에 방점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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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불복종운동의 새로운 발견 - 인권오름

 

 

[벼리 1] 불복종운동의 새로운 발견

 

순응을 거부하며...합법적 불법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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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7월 14일 1만5천여 명이 서울로 운집한 한미 FTA 반대집회에서 경찰의 물리력을 넘어 광화문 사거리를 뚫고 청와대로 가기위해 싸웠던 그 시위대는 정작 미대사관 앞에서 조용히 마무리 집회를 끝내고 흩어졌다. 공식적인(?)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행진 이후, 프로그램의 부재는 각각의 운동진영이 알아서 분노의 수위를 조절해가며 행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그 현장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답답함은 참여자로서 나 스스로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되묻게 했다.

‘집회로 인해 교통체증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운동의 기획은 힘들까? 차벽 안에 갇힌 집회의 자유를 넘는 시위는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운동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불복종 운동’을 떠올렸다. 불복종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확보하는 가운데, ‘직접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실천전략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또한 ‘합법’의 테두리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뛰어넘는 운동의 기획과 실천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특히 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틀에서 ‘적법 절차’를 가장해 권력자들이 남용하는 자의적이고 부정의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불복종 운동’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서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검토해야할 운동의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라

자유인의 피난처가 되기를 자임하던 나라에서 전체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상태에 있고 그 국가가 멕시코를 점령해 군법으로 지배할 때, 저항을 일깨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을 통해 ‘불복종 운동’의 영감을 오늘까지 전파하고 있다.

소로우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며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그 가운데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이 중지되도록 호소했다. 소로우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 폐지와 멕시코와의 전쟁중지 라는 소신을 가져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의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 법을 어기라”고 강조하며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역마찰이 되도록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실천의 방법으로 도망치는 노예를 캐나다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847년 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소로우의 『시민불복종』은 노예제를 반대하며 다양하게 저항을 일구어온 퀘이커교도와 평화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되었고 이들의 노고는 1830년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전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보여준 간디, 마틴 루터 킹

영국 식민통치의 부도덕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한 간디는 소로우의 불복종을 새로운 면모로 탄생시켰다. 소로우가 불복종 운동을 의로운 개인의 결단으로 시작했다면 간디는 소수에 의한 영국 식민통지에 대한 저항을 다수 인도 민중의 불복종 저항운동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1930년 3월 소금세 신설에 반대하여 사티아그라하(진실에의 헌신) 운동을 시작했다. 영국 통치에 대한 간디의 불복종 운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운동에서 무려 6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대중적 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간디<출처; www.temple.edu>


간디에게 있어서 불복종은 법을 초월하는 가치체계이며 불복종의 힘은 진리추구에서 나온다. 간디는 법에 매몰되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하라고 주문한다. 간디에게 있어서 악법은 인간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하는 법이거나 마땅히 할 것을 억지로 금하는 법으로, 도덕과 정의의 원칙을 위반한 법을 구분해내고 필요하다면 그것에 불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 의무는 어디에 근거하는가? 간디는 악의 존재 자체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자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한다.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법을 만든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의해 고통 받는 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악법에 대한 저항은 불복종으로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는 불의와 부정의에 협조하지 않는 불복종을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며, 대중의 힘으로 지배 집단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불복종 운동을 실천하면서 혁명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천은 억압받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흑백분리주의에 협력을 거부한 버스안타기운동

불복종 운동의 대중적인 힘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는 미국 몽고메리에서 불붙었다.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 씨는 버스에 올라타 백인전용좌석 바로 뒤에 앉아있었다. 조금 후에 백인남성이 타자 운전사는 그녀에게 뒤로 가라고 명령했으나 그녀는 거부했고 결국 흑백분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전용으로 지정된 좌석에 백인들이 모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백인이 더 승차할 경우 운전사는 백인전용석이 아닌 좌석에 앉아있는 흑인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는 흑인은 체포됐다.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혐의로 연행된 로사 파크스<출처; en.wikipedia.org>


로사 파크스 씨의 불복종을 계기로 흑인사회에서는 흑백분리주의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버스안타기운동이 전개되었다. 흑인들은 집에서 학교, 일터까지 2-3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 카풀 등 대체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버스안타기운동은 흑백을 분리하는 사악한 제도에 협력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마틴 루터 킹은 항의할 권리가 있음을 알렸고 항의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법률을 바꾸어 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은 두 번이나 감옥에 수감되고 협박, 폭파 등 일상적인 테러의 위협에 시달렸으나 불복종 저항을 고수했다. 불복종 저항운동의 한복판에서 마틴 루터 킹은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했고 반차별 인식의 저변을 확산시켰으며 불복종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연대했다. 마침내 1956년 11월 13일 미연방최고법원이 흑백분리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12월 21일 흑백통합버스가 몽고메리를 달렸다.

불복종운동의 인권법적 정리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실천적으로 발전해온 불복종운동은 일부 인권법 학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자유주의 법학자 존 롤스는 ‘불복종이란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반적으로 법에 반대해서 행해지는 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인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정의한 법률에 불복종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도덕적 의무로 강조했으며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불복종 행위가 심각한 부정의에 대한 항의 행위이고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 △불복종 행위가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쉴러 슈프링고룸은 불복종을 ‘공적으로 선언되고 윤리적·규범적으로 근거 지워진 상징적 항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의 의식적인 법 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가 의식 있는 법 위반으로 나타날 것 △공공성을 띌 것 △비폭력행위일 것 △정치ㆍ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일 것 △항의수단이 목적과의 관계에서 상당성을 지닐 것을 제안했다.

자유주의적 불복종운동의 한계를 넘어

서구의 자유주의적 법학자들은 저항운동의 일부로 성장해온 불복종운동을 법 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또다시 법의 테두리 속으로 가두려 하고 있다. 존 롤스의 주장처럼 불복종 행위는 어디까지나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에만 가능하다거나 쉴러 슈프링고룸처럼 기준이 불명확한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이 ‘법’ 위반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불복종운동의 요건으로 ‘비폭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비폭력’ 개념은 일정 정도 제한적인 개념으로서 저항운동과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을 넘어선 저항은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핵심이다"<출처; www.organizedresistance.org>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항상 옳다는 관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법학자들이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위법하거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될 때 이에 저항하는 것을 ‘저항권’이라는 인권의 이름으로 규정했다. 저항권은 자연법사상을 통해 근대시민혁명을 가로질러 나타나 봉건질서를 타도하는 혁명적 힘을 가진 근대시민혁명의 이론이었지만, 혁명 이후 저항권은 ‘엄격한 제한’을 통해 점차 형식화 되었다. 근대국가에서 저항권은 ‘극히 예외적이고 한정적’이며 ‘극도의 불법’을 교정하기 위한 조치로서만 승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저항권은 그 어떠한 부당한 제한으로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복종운동 역시 대중운동의 역동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떠한 특정한 조건으로 가둬질 수 없다. 오히려 저항운동 중에서 불복종운동은 △기존의 주류 권력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갖고 △의도적으로 위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불복종운동은 어떠한 틀거리에 갇히지 않고 대안적인 질서를 ‘향하는’ 운동으로 움직여왔음을 떠올린다. 오히려 불복종운동은 ‘복종에 대한 거부’를 넘어 ‘주류적인 권력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주류 권력 질서와 이를 지탱하는 구조에 대한 일상에서의 저항은 불복종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불복종의 권리는 헌법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인권 옹호를 위한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저항권의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 밝힌 저항권은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고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저항을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한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戰犯)재판은 아무리 자국의 법률과 명령이 행위의 이유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부당한 법률과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권의 행사를 국제법상 권리이자 의무로까지 승격시킨 바 있다. 이어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 해인 1998년 유엔 총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증진, 보호하기 위한 개인·단체·기관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선언문'(결의안 53/144, 이하 인권옹호자 선언문)을 채택했다. 인권옹호자 선언 12조는 모든 사람은 인권침해에 '평화적으로 저항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옹호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국내법에 의해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법과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이 지속적인 이해와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 불복종 운동은 ‘더 나은 질서를 향한 호소’로 작동한다. 이것이 때로는 ‘실정법을 향한 도전’으로 때로는 ‘합법적인 불법’으로 등장한다. 불복종의 권리는 빼앗긴 인권을 되찾고 새롭게 만들어질 인권의 지도를 그리게 한다.
인권오름 제 17 호 [입력] 2006년08월17일 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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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은 보시오!

우석훈 선생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2006, 녹색평론)을 읽다가 요근자에 읽은 어떤 FTA관련 서적들에 비해 확실히 알기 쉽게 FTA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다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함께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일일이 타이핑을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부분적으로 본래 책의 원고와 틀린 부분은 내가 교정을 본(교열이 아니라) 부분이거나 아니면 타이핑 하다가 오타가 난 부분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호 아니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한민국호'에 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현재의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노무현호'를 타고 미래로 갈 이유는 없다. 만약 '고향' 혹은 '우리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이 특수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매우 특별한 만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재'를 찾는 것이 절실한 순간이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이제는 '우리말'이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인데, 우리 말을 사용하는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 <21쪽>

그리고 "7장.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라는 부분을 한참 신나서 읽고 났더니 몹시 슬픈 이야기였다. 원고 내용 중 밑줄 치고, 굵은 글씨 부분은 별도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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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

한미 FTA의 결과, 무역수지는 손해인데, 서비스업도 별로 밝아보이지 않고, 미국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럼 대체 정부가 아는 게 뭔가? 보통의 경우라면 정부가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한 얘기를 빈틈없이 뒤집어보면 정부가 뭘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도대체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렇게 용감하게 “최단 시일 내에 성공적 협상을 하겠다”며 질주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번 정부가 알고 있는 걸 찾아보기로 하자.

가. 농업은 망한다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농업이 망한다는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이건 새로운 미국과의 통상 관계 때문이 아니라 농업은 그만둔다는 정책 기조로 지난 3년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졸저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 노무현 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분석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농업의 얘기를 접기로 하자. 현재 국민의 8% 정도인 농민이 4%대로 줄어들지, 아니면 정부의 목표대로 1%대로 내려앉을지가 문제일 뿐이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
월마트와 까르푸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 금년(2006년) 초이다. 정부는 대형유통시장에서 한미FTA로 경쟁조건을 바꾸더라도 국내 업체에게 승산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계속 죽어나갈 것이다. 월마트가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하여간 정부는 “월마트한테 안 당한다”는 정도는 안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일단 현재의 절반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국내영화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로 유지가 되어야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146일 규모에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몇 개의 경쟁력 있는 한국영화가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 규모가 73일이 되면 기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그만그만한 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 현대 영화시장의 특징이다. 이것까지는 정부가 몰랐던 거다. 정부가 아는 것은 다만 “한국 영화 안 본다고 안 죽는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일류 감독들이 지금 CF감독으로 연명하면서 3~4년간 돈을 모아서 겨우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 한 편 만드는 상황을 보면서도, 정부는 미국에 일단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보건경제학 쪽에서 조금 더 자세한 분석이 나오려면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숫자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 국민의 30%에서 40%정도는 한미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비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얼마나 되는 국민들이 병원에 갈 수 없을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소득분배의 재구성 모델이 나와야 숫자가 정확히 나온다.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시나리오 형태로 추정할 수는 있는데, 단지 국민들이 “얼마나 가난해질지를 몰라서” 계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부에서는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병원에 안 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해도,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약초요법과 전통의학 등 ‘대체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
사실 정부라는 것은 공무원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의 운명은 사실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FTA는 민간부문과 민영화되는 공공부문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뿐, 공무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다. 국민들이 겪게 될 평균적인 변화와는 다른 미미한 변화만이 생길 뿐이다. 만약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추진이 가능했을까? 확실히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는 별일 안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 저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물론 지금 정부가 조심스럽게 준비 중인 ‘행정민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강도 높게 추진된다면, 원칙론적인 ‘희망’과는 달리 공무원 세계도 격랑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
정부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꼭 한미FTA에서 특별한 규정이 생기거나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상 쌀시장은 이미 다자관계인 WTO에서 개괄적인 틀로 결정된 상태다. FTA라는 틀에서 쌀시장을 다룰 이유가 별로 없다.
전략적으로는 미국이 약간 요구하는 척 하다가 양보할 것이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쌀시장을 지켰고, 그 대가로 다른 분야에서 좀 희생을 했다는 선전을 할 것이다. 정부가 양자관계에서 다룰 필요가 없고 다루지도 않는 ‘쌀시장’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걸 보면서 이건 거의 ‘야바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한미FTA가 농민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협상이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 후에 시행될 ‘농업죽이기’ 정책이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은 물론, 추곡수매가 사라진 다음 실질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던 보조금 정책 등을 ‘없던 얘기’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한미FTA를 통해서 농민이 손해보고 그 대신 서비스업은 좋아질 것이라고 정부가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험해진 미장원 주인들조차 농업이 망하고 어려워진 만큼 그 이익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농민들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대다수 국민들이 절대로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안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한미FTA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이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FTA가 실제로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부에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나라당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상당수 한나라당 당원들은 일단 ‘자유무역’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
한국정부는 자동차 부문의 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모양새다. 미국정부도 한국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 조금 더 팔자고 3,000cc 이상의 대형자동차에게나 적용될 제도들을 없애고,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수도권 대기관리대책까지 없애라고 하는 미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환경정책의 틀 정도는 지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협상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부문의 변화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어차피 타는 수입자동차, 독일제를 타나 미제를 타나 국민경제에는 별가시적 변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에게는 어차피 해당사항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민들이 미국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벤츠와 BMW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아직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독일제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나 보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캐딜락을 타고 싶다는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자신의 첫 번째 외제 승용차는 벤츠이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정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자. 국민들은 식품 안전에 관심이 없다
정부가 아는 또 한 가지 사실 중에서 가장 슬픈 일은 한국 국민이 식품안전에 사실상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떠들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다. 광우병 의혹이 있는 미국산 축산물도 문제지만, 한미FTA로 정말 곤란하게 되는 것은 유기농산물의 기반이 무너지고,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식품공급시스템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런 근본적인 식품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도 OECD 국가 중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인식수준이 가장 낮은 국민이라는 점을 정부는 잘 알고 있다. WTO협상에서도 다른 선진국이 전부 만들어 넣은 학교급식 재료조달에 관한 예외규정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게 한국이다. 정말 한국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다음 장의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자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FTA체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민직접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 유일한 의사표시 방법은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래봐야 이민 갈 정도로 용기 있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사실까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붕괴된 교육시스템에 불만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공부 못하는 애들 유학 보내봐야 인생만 망가진다”는 ‘조기유학 위험론’으로 협박을 일삼던 정부다. 가끔 소주 마시며 대통령을 씹어대긴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무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쉽게 정리해보면, 정부는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면 ‘노무현 시스템’은 외국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감각기관이 기이하게 발달․진화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정부’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대체 어떤 시스템을 가진 정부인지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 126~133>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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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장봉군 화백의 만평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끌고 과속질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앞길에는 미국과의 FTA협상으로 국민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멕시코가 있다.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아마도 우석훈 선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대신에 이민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이대로 살기도 어려운 국민들만 망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FTA를 막을 길은 국민직접행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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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퍼온글]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임필성 감독이 말하는 "남극일기"

 어제밤에 ocn에서 <남극일기>를 봤다.

무쟈게 무섭더라... 끄고 싶은 걸 결말이 넘 궁금해서 끝까지 봤다.

TV로 봤으니 중간중간 광고가 있어 다 볼 수 있었지 극장에서 봤으면 고문당하는 것 같았을 것 같다.

다보고 자려니 방에 불이 켜 있어도 불은 끈 것처럼 시야가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꽤 무서웠다.

근데 앞에 각색인가 각본에 봉준호 감독이 있어 오늘 검색해보니 두 감독이 막역한 사이란다.

<괴물>에서 박해일의 선배로 출연하기도 했었단다.

영화는 무서웠는데, 인터뷰는 넘 웃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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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임필성 감독이 말하는 <남극일기>
[필름 2.0 2005-05-25 20:00]

무릇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다. 한국 최초의 남극 탐험 영화 <남극일기>는 시작도 힘들었지만 마치기는 더욱 힘들었던 영화다. 제대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던 불귀(不歸)의 설원, <남극일기>에서 돌아온 임필성 감독을 만났다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게 주가 된 영화이긴 하지만, 볼거리도 만만치 않다.

내가 처음 제작사인 싸이더스픽쳐스의 차승재 대표를 설득했을 때, 구경거리로서도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다. 촬영지인 뉴질랜드의 스펙터클한 광경도 있고 스타 배우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몇 번의 공포 장면,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면 영화라는 매체의 원초적인 매력인 구경거리로서도 114분이라는 상영 시간과 7천 원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고.

어떤 관객들에겐 이야기보다 스펙터클이 더 강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내가 담아내려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세계를 모두가 공감해 주길 바라진 않는다. 단편영화 때부터 그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쪽에선 예선 탈락한 영화가 다른 쪽에선 상을 받고, 부산은 떨어졌는데 베니스는 가고. 이런 영화를 찍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면에서 첫 장편 상업 영화인 <남극일기>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 대중의 보편적인 취향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지금 내 레벨이 대중 입맛에도 맞고 영양가도 높고 먹기도 편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스펙터클과 스타, 그런 조건조차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였을 텐데, 그걸 최소한의 접점이라 생각하고 내가 의도한 나머지 부분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설득하고 싶진 않다.

그런 생각 때문인가, 확실히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사가 안 들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섯 명 대원들이 구분이 안 간다고도 하고.

단편영화와 비교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노력을 안 한 거는 아닌데 내가 생겨 먹은 게 이러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능동적으로 보면 그런 배려를 느낄 수가 있는데 관객들에겐 떠서 먹여 주는 게 너무나 익숙한가 보구나, 어떤 절망감 같은 걸 느낀다. 자막도 추가로 넣어주고 대사도 ‘줄줄줄’ 설명적인 것까지 많이 살린 데다 다른 사운드를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낮추면서 대사를 키웠는데 이해가 안 된다니,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의상도 고민이 많았다. 탐험복이 우주복 같지 않아서 디자인이 한정적이다. 딱 나와 있는 디자인 내에서 그나마 색을 조절해야 구별이 간다. 내 취향대로라면 대원들 의상도 전부 모노 톤으로 가고 싶었는데 정정훈 촬영감독이 "그러면 관객들이 구별 못한다. 색깔로 구별해줘야 한다"고 해서 그나마 빨강, 노랑, 검정으로 갔다. 여섯 명을 여섯 색깔로 입혀 놓으면 무슨 독수리 오형제 같지 않나.(웃음) 지금도 세 가지 색깔 대원들을 잡은 장면을 보면 무슨 텔레토비 같은데 전부 다르게 입었다면 이런 영화에 얼마나 생뚱맞았을까.

탐험대장 도형(송강호)과 민재(유지태)에게 똑같이 빨간색 의상을 입힌 건 둘이 유사 부자관계라는 설정 때문이었나?

도형, 민재, 성훈(윤제문) 셋이 빨간색이다. 도형과 민재를 같은 색으로 표현한 건 명백히 그런 의도가 있었다. 성훈은 그 구도에서 어차피 멀리 있으니까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봤고. 그런데 아뿔싸, 김선민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헷갈리는 거다.(웃음)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편집 기사가 헷갈리니 나도 당황했다.

그런데 왜 탐험대가 여섯인가? 다섯이나 일곱이면 안 되나?

처음 시나리오는 ‘독수리 오형제’에 입각해서 다섯 명으로 썼다. 근데 다섯 명으로 출발하면 클라이맥스에선 세 명밖에 안 남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끌고 가나 막막했다. 지금도 투 샷 다음에 스리 샷 나오고 다시 포 샷, 그리고 투 샷 이렇게 가는데 다섯이었으면 그 조합이 더 적을 테니까. 또, 일곱은 너무 많았다. 일곱으로 가면 도형과 민재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2대 1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초반에 이해준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남극의 자연 현상 중 어떤 게 인격적인 게 될까 고민을 했다. 동상, 화이트아웃(온 세상이 아득한 빛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백시 현상),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남극의 겨울 폭풍), 크레바스(‘악마의 틈새’라 불리는 빙하 표면의 균열) 등이 나오더라. 그것에 대입해 하나씩 사고를 당하는 게 어떨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생각했다.

[[0]]그들은 모두 각자의 도달 불능점을 향해 탐험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것을 남성적인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섯 가지 유형의 남자가 필요했겠다.

동사무소 공무원 출신 대원 재경(최덕문)은 소시민적인 욕망이 가장 큰 인물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집착하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약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최초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분란을 일으키는 악역 성훈은 겉으론 의리를 내세우지만 사실 어떨 때 보면 마초의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훈은 재경을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그게 동료애 때문만이 아니라 한편으론 두렵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거다. 비겁한 남자 캐릭터다. 식사 담당 근찬(김경익)은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이 연기한 수연 같은 순박한 희생자다.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대장에게 반항하거나 상황을 뒤엎을 순 없다. 권위에 순응하는 남자 캐릭터였다. 부대장 영민(박희순)은 콤플렉스가 많은 남자다. 대장에 대한 2인자 콤플렉스와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눈이 나쁘고 체력이 약해서 더 지지 않으려고 탐험가가 됐다. 도형과는 달리 탐험 그 자체보다는 탐험으로 얻어지는 크레딧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편집 단계에서 이상 네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을 생략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중요한 캐릭터는 도형과 민재다. 그들의 도달 불능점은 뭔가?

민재는 도달 불능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진짜 막내, 아직 남자가 되지 않은 소년이다. <플래툰>의 찰리 신 캐릭터처럼 전쟁 자체는 모르고 전쟁의 추상적인 면만 아는 캐릭터다. 반면 도형은 전쟁 자체인 사람이다. 도달 불능점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강한 게 아니라 어쩌면 이 사람 자체가 ‘인간 도달 불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는 <주먹이 운다>의 류승완 감독이 좋아한 설정인데, 도형이 애 죽고 이혼당하는 데 불치병까지 걸려서 죽으러 남극에 왔다, 이런 설정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너무 심하다 싶어 다소 객관적으로 그린 거다. 도형은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도달 불능점에 간다고 해서 어떤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소시민적인 욕망도 명예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지점에 가야 한다. 그게 광기다. 광기라는 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광기가 아니다. 도형이 거기 가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둥 여기서 평생 살아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다른 대원들을 설득하는데, 이런 게 광기다.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선 옳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거.

도형은 왜 미쳐갈까? 남극 때문인가?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초반에 발견된 영국 탐험대의 일기가 미칠 것을 예상했으니까 미친 건가? 개연성이 부족한 거 아닌가?

일기는 설정상 드라마의 실체로 유도하는 ‘매거핀’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광기를 그린 원형적인 이야기라 관객에게 따라갈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시작부터 미쳐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 도형은 크레바스의 조그만 구멍을 쳐다보다가 나중엔 빙벽 내부로 들어가서 큰 구멍을 쳐다본다. 남극이 인체 같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도형이 자궁 속으로 들어간 듯한 의도로 연출했다. <모비딕>에서 노선장 에이허브가 모비딕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폭풍 속으로>에서 파도타기 선수 패트릭 스웨이지가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도형이 남극 속으로 사라져가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원형적인 주제는 어떤 스토리냐에 따라 본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전형적인 상투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남극일기>가 전형적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전혀. 전형적이라면 투자가 빨리 됐겠지.(웃음) 전형적으로 안 가려고 온갖 몸부림을 한 것이 이 영화다. 난 이 영화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충무로가 상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성의 파시즘 같은 걸 느꼈다. 이런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을 하느라 거의 인종차별주의에 가까운 핍박을 받았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이 상업성을 보장해 준다는 거지? 그냥 관객의 무의식에 익숙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찍는다면 뭐하러 작가와 감독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고민을 했다. 난 그런 전형성에 맞춰가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리뷰는 영화가 미스터리라고 해놓고 촘촘하지 않다고 지적하던데, 나는 이 영화를 미스터리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라는 것도 기본적인 틀이 있을 뿐이지 어떤 규칙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난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단초를 던져주면서 온 것 같다.

[[1]]단초를 던진 다음에 적절한 시점에서 결론을 내주고 보상을 줘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타지 않은 건가?

솔직히 난 그 리듬을 잘 모른다. 물론 흉내낼 순 있겠지. 하지만 체화되지 않은 걸 사용하면 ‘구경하는 연출’이 된다. 신인감독 영화들에서 그걸 많이 보면서 난 안타를 일곱 개, 여덟 개 맞아도 승리 투수가 되자는 마음으로 찍었다. 엄청난 스펙터클도 중요하지만 난 표정의 스펙터클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부담이 되는 규모의 영화가 됐지만, 이 시나리오를 조그만 고치면 연극으로도 올릴 있는 소극이라고 생각한다.

감독한테 따질 건 아니지만, 그럼 뭐 하러 70억 원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드나?

감독한테 따져도 된다.(웃음) 왜냐하면 그건 감독으로서 또 다른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를 몇 천 명의 관객에게 보여 주는 작은 연극으로 만들기보다는 관객에게 볼거리도 주면서 이런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한국영화가 도전하지 않은 어떤 영역에 일천한 신인감독이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거, 그게 나의 도달 불능점이었다. 이 영화에는 단 한 컷도 내가 동의하지 않은 컷이 없다. 차승재 대표나 송강호 선배가 뭐라 해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 지켜왔다는 거에 자부심을 느낀다.

<남극일기>는 이기심과 탐욕이 부른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는 영화다. 그러면서 막상 당신은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이 영화를 완성한 건가? 뭔가 역설적이다.

재미있는 시각이다.(웃음) <남극일기>는 도달 불능점이 거대한 환상이라고 말하는 영화지만 <남극일기> 뿐 아니라 모든 야심적인 목표를 가진 영화들은 다 그런 거대한 환상을 좇았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 영화 <살인의 추억>도 그렇고. 그런 거대한 환상이 의미가 있다면 관객들이 반응을 해주면서 영화 자체가 생명력을 가질 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극일기>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건 영화의 운명이다.

당신의 단편영화 <소년기>는 부자관계에 있어 ‘반역 모티프'를 공포 장르로 풀어냈는데 <남극일기>도 그런 면이 있다.

실제의 나는 닭살스러울 정도로 단란한 가정에서 컸다. 일찍 결혼해서 딸애가 있고 내 여동생도 일찍 결혼해서 애들 쑥쑥 낳고 잘산다.(웃음) 사람들이 <소년기>를 보고 자서전적인 얘기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주인공이 뚱뚱해서 그렇지 내가 할아버지 죽이고 그런 거 전혀 없다.(웃음) 다만 그런 얘기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나한테는 기존의 가치나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거의 꼴찌하고 지진아 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난 우등생들이 쉽게 적응하는 규범들을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군대 가서 줄 맞춰 총검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게 영화에선 반역의 모티프로 드러나는 거 같다.

<남극일기>는 민재의 시선으로 시작해 민재의 시선으로 끝난다. 하지만 중간중간 민재의 시선뿐 아니라 탐험대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 남극을 인격화한 전지적인 시점이 혼재한다.

내 모든 단편영화의 시점은 1인칭이었다. 하지만 <남극일기>는 1인칭과 3인칭이 혼재한다. 그게 또 나한테는 도전이었다. 위에서 바라보는 명백히 전지적인 시점이 있는가 하면, 텐트 밖에서 창문을 통해 가까이 지켜보는 것 같은 3인칭 시점도 있다. 그런 시점들이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점이 일관성이 있어야 된다는 걸 누가 정한 건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남극이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든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점을 섞어 썼다. 혼동된 시점을 통해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같은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이해한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체험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혼동스럽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세계에 빠졌다 나온 듯한 쾌감이 있다. 관객에게 그런 체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점을 정리해 편하게 이해시키기보다는 다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시점을 섞었다.

중간중간 자연스런 편집 흐름에서 이탈한 기법들이 등장한다.

김선민 편집 기사가 <색즉시공>부터 <살인의 추억>까지 다양한 영화를 작업한 사람이다. 그중에서 <남극일기>가 가장 독특하다고 하더라. 처음 김선민 기사에게 보여 줬던 영화가 <인썸니아>와 <레퀴엠>이었다. 일견 정적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점프 컷이나 강렬한 인터 컷이 섞여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더 과해진다. 난 <남극일기> 이야기가 원형적이고 클래식하다 하여 편집을 정공법으로 가기보다는 모던하게 해보고 싶었다. 초반에는 약간씩 점프 컷이 들어가다 나중엔 과격한 인터 컷이나 감각적인 장면 전환을 많이 썼다. 영화 후반, 민재가 영국 탐험대의 시체를 보다 영민한테 가는 장면에선 피 흘리는 장면이 인터 컷으로 짧게 들어간다. 그걸 편집실에서 보는데 스탭 중 한 명이 녹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구별 못하는데 오죽했겠나.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렵다고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편집이 관객의 무의식에 잔상을 남겨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한 효과를 내길 바랐다. 그게 영화의 목표였고, 내가 원하는 리듬이었다.

[[2]]불쑥 끼어 드는 하얀 손이나 붉은 피 같은 인터 컷은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서였나?

흰 눈에 피가 뿌려지면서 쫘악 스며드는 느낌, 그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최초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 장면이 한 컷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다. 그 컷에 대해 ‘저거 뭐야 도대체?’ ‘괜히 무섭게 하려고 피 뿌리는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난 그 컷 하나가 80년 전 영국 탐험대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남극에 흘렸던 피, 그리고 지금의 탐험대가 앞으로 남극에 흘리게 될 피의 이미지를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두 가지 기능 모두를 통해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은 일관된 거다. 남극이 도형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악마의 손이라면 생뚱맞지만 도형한테는 아들의 손이고 남극의 손이다. 그래서 관객에게만 보이고 대원들한테는 안 보이는 거다.

그 손에 대해 관객들이 갖는 배신감이 있다. 예를 들어 <알포인트>에서는 희미한 귀신의 존재가 나중에 여자로 밝혀지는데, <남극일기>에선 결국 안 밝혀진다.

난 <알포인트>에서 그게 밝혀지는 장면이 제일 싫었다.(웃음)

정말 모든 컷을 원하는 대로 찍고 붙인 것 같다. 얼마나 만족하나?

배우 연기에 대해선 90%, 영화를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다는 면에선 60%.

나머지 40%는 뭔가?

더 영화적인 언어로 설득하고 싶었다. 남극을 캐릭터로 체험시키기 위해 여섯 단계로 구상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처음에는 평온한 설원의 모습으로 가다가 나중에 도달 불능점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르는 그런 어마어마한 낭떠러지 같은 걸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작 여건상 불가능했다. 그런 부분이 목표치까지 갔다면 심리 체험극 느낌을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왕 거대한 환상이라면 더 무시무시한 거대한 환상을 해볼 수 있는 건데 이 제작비와 여건에선 이 정도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단한 성과다. 특히 CG가 뛰어났다.

내 머릿속에 있는 비전을 시각 효과 회사 EON이 최선을 다해 백업해줬다. 도달 불능점 밤 장면은 모두 양수리에서 소금 뿌리고 찍었는데 그 정도로 나온 게 대단하다. 합성 장면 중엔 뉴질랜드, 한강 고수부지 스케이트장, 강원도 피닉스 파크, 양수리 세트에서 나눠 찍은 후 붙인 게 있다. 미친 짓이지.(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면 표가 나지 않는다. EON에겐 그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이다. 어제 <반지의 제왕>을 했던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의 관계자가 왔다. EON에게 몇 명이 했나고 물어봐서 8명이 했다고 하니까 기겁을 하더란다. 그러면서 웨타로 오라고 제의를 했단다. 정성진 팀장이 그런 제의받고도 안 가겠다고 했다. <남극일기>가 그런 예술가로서의 투지를 한국영화에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기쁘면서 고맙다.

어떤 면에서 <남극일기>는 모든 스탭들에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 같다.

4, 5년 전 35mm 단편영화 찍고 2년 전 DV 작업을 했던 나로선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 한국영화 퀄리티의 상당 부분이 스탭들의 엄청난 노력과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정말 뛰어나다. 난 그런 노력이 참 신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훈 촬영감독도 <친절한 금자씨> 촬영 일정 때문에 마지막 5% 정도를 못 찍고 떠났다. 감독으로서 서운함이 적지 않았지만 후반 작업하면서 보여 준 열정과 집요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디지털 색보정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 영화가 주는 히스테리컬한 느낌이 잘살았다.

드디어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장편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더라. 정말 외로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든든한 마음으로 작업한 기간이 길었다. 다 스탭들 덕이다. 앞으로도 나보다 뛰어난 스탭, 그게 확실히 ‘뜬’ 스탭이라기보다는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EON이나 황인준 미술감독처럼 잠재력과 열정이 큰 스탭들과 함께 영화를 하고 싶다.

사진 김춘호 기자
한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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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남성들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필요악 아닌가요?


성매매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던 가장 오래된 직업이며, 필요악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과 같은 범죄들 역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근절되지 않았지만, 인류는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성매매가 필요악이라면, ‘누구의 필요에 의해 누가 피해를 입는 것인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남성들의 성적욕구를 위해 성매매를 인정하는 것은 여성차별과 여성(Gender)폭력을 인정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유산이며,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일 뿐입니다. 

 

<반론>---> 매춘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던 가장 오래된 직업인 이유는 남성들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타의 이유로 남편을 잃은 여성, 가족에서 쫓겨난 여성, 죄를 지은 여성 등등 빈곤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수단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인도의 매춘을 봐도 알 수 있다.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여성들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매춘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역사상 매춘이 사라지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다. 남성의 본능 운운하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는 자본의 권력과 축적비밀을 수요와 공급에서 찾는 것처럼 비사회과학적 인식의 전형을 보여줄 따름이다. 성욕문제가 초점이 아닌 것이다. 남성성욕의 문제는 생존수단을 선택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이지 매춘의 존립근거와는 무관하다.

매춘이 가부장적 사회의 유산이라면, 가부장적 사회가 지독히도 잔존하고 있는 사회와 가부장제와 가장 거리가 먼 자유화된 여성이 많은 나라에서 하나같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매춘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현실은 가부장제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매춘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여성의 인권이 전반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춘이 증가하는 것도 설명이 안 된다. 그 모든 현상을 모두 젠더 정치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것이다.

또한 매춘을 살인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성노동자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살인은 피해를 주며 타인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한편, 성구매자는 구매행위를 통해 자본축적을 하는 것도 아니요,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가 얻는 이득이라고는 쾌락, 필요의 충족이다. 그는 빈곤에 의해 성노동자가 된 여성의 섹스를 소비한다.   

 

 

 

 

>>성매매가 왜 여성에 대한(Gender) 폭력인가요?

성매매는 남성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폭력입니다. 남성들은 생물학적 본능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성을 파는 방식이 아닌 여성의 몸을 사는 방식으로 그 욕구를 해결하려고 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남성지배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살 수 있는 성’ = ‘여성의 성’ = ‘남성에 의해 취득, 점유될 수 있는 성’이라는 이중규범이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적으로 식품위생법에서 (합법적인) 유흥접대부를 ‘부녀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보여집니다.

군대에서 회사에서 남성들의 성구매행위는 놀이문화로 접대문화로 공공연히 허용되고 있는 반면, 성판매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회적 낙인과 매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성구매자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허용도가 높을수록 한 여성의 성매매 경험을 더욱 매도하는 구조는 가부장제 이중성문화의 논리로써 설명될 수 있습니다.

 

<반론>---> 매춘이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말은 뭔가 더 분석될 것을 남긴다. 성노동에 성폭력이 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단지 우리사회가 성노동을 바라보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에 의해 포착된 재현의 질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맥락에서 '폭력'을 말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녀거래에 있어 여성을 파는 쪽의 입장에 서게 강요 하는가 일 것이다. 여성이 불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성뿐만 아니라, 남녀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거래에서 일반화된 관계성일 것이다. 이 불리함은 빈곤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여성들에게 사회활동의 많은 기회들이 닫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은 두가지 선택에 직면하곤 한다. 결혼에 의해 가족의 소유물화된다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운 노동력이 되어 시장에 내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이 시장은 가족의 통제권과 소유권을 부여받은(또한 가족부양의 의무를 책임지는 제도적 대표성으로서의 남성권력) 남성간의 경쟁질서로 가득하다.

결혼에 있어서 여성은 프로포즈를 받는 쪽의 입장에 서게 되며, 성관계에 있어서도 요구받는 쪽에 서게 되며, 성거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관계성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프로포즈자체가 폭력은 아니며, 요구하는 자체가 폭력은 아니고, 거래를 하는 것이 폭력은 아니다.

폭력은 항상 여성을 피해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생계를 박탈하고 있는 자본축적, 그리고 여성에게서 성욕을 박탈하고 '비여성'이게끔 통제해온 남성 중심의 소유권을 비롯한 가족제도 및 국가정책일 것이다. 매춘여성과 부인의 성이 다른 점은 매춘여성은 성욕이 박탈된 '비여성'이고, 부인은 성욕이 주종관계에 의해 생식수단(생식수단이 아니라 성욕이 성욕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으로 전락하고 가족구조안에 구속되고 통제되고 소유된 것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의 차이다. 이러한 기본적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여성'들의 자유는 자유로운 노동력이 될 자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비여성'인 매춘여성들의 필요에 의한 자유는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거래에 있어 구매자는 그렇게 형성된 사회질서속에서 향유하는 소비자로 나타난다. 구매자는 자신의 필요를 교환을 통해 충족한다. 우리는 여기서 성구매자가 상품생산사회 일반의 소비자와 똑같이 어떤 '필요'를 충족하는 소비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거래가 폭력이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 폭력의 내재성은 그녀가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와 필요를 충족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회적 질서다. 이렇게 폭력과 그것의 메카니즘을 분석하지 않고, 무한정 확대적용하는 한 폭력은 인간성에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생태계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성거래는 곧 성폭력이라는 도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인식은 아주 퇴보적인 조치들을 낳을 뿐이다. 모든 성거래가 성노동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리고 성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게끔 노동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투쟁과 성노동자의 주체성에 중심을 두는 정치학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배적 거래형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고, 폭력으로서의 사회질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매춘여성이 '비여성'으로 존재한다는 나의 생각은 가족구조안의 '엄마'로 대표되는 '대문자 여성'에 매춘여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현실 속에서 '여성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담론형성과정에 있어 매춘여성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매춘여성은 '비여성'이고, 이들은 주체성은 대문자 '여성'안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이러한 실례를 증명한다. 대문자 '노동자'가 '비노동자'를 배제하듯이, 대문자 '여성'은 '비여성'을 배제한다. 배제는 또한 포섭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은 정규직노동자이며,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제함으로써 권력과 교섭지위를 갖는다. 오늘날 이런 패턴은 대문자 '여성'의 정치에도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비노동자'를 낳고, '비여성'을 또한 낳는 과정이다. 우리의 현실은 비노동자와 비여성이 주위에 득실댄다. 여기에 비노동자로부터, 그리고 비여성으로부터 각각 출발하는 정치학이 탄생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 위의 질문과 성매매근절주의 입장속에서 나온 대답들은 사회당 홈페이지의 올려진 내용들이다. 그 대답밑에 나의 대답을 반박형태로 추가했다. 이것은 비단 사회당이라는 특정 단체의 입장만이 아니다. 주요한 논리는 모든 성매매근절주의 입장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깨철이님 블로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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