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다. 한국 최초의 남극 탐험 영화 <남극일기>는 시작도 힘들었지만 마치기는 더욱 힘들었던 영화다. 제대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던 불귀(不歸)의 설원, <남극일기>에서 돌아온 임필성 감독을 만났다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게 주가 된 영화이긴 하지만, 볼거리도 만만치 않다.
내가 처음 제작사인 싸이더스픽쳐스의 차승재 대표를 설득했을 때, 구경거리로서도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다. 촬영지인 뉴질랜드의 스펙터클한 광경도 있고 스타 배우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몇 번의 공포 장면,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면 영화라는 매체의 원초적인 매력인 구경거리로서도 114분이라는 상영 시간과 7천 원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고.
어떤 관객들에겐 이야기보다 스펙터클이 더 강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내가 담아내려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세계를 모두가 공감해 주길 바라진 않는다. 단편영화 때부터 그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쪽에선 예선 탈락한 영화가 다른 쪽에선 상을 받고, 부산은 떨어졌는데 베니스는 가고. 이런 영화를 찍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면에서 첫 장편 상업 영화인 <남극일기>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 대중의 보편적인 취향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지금 내 레벨이 대중 입맛에도 맞고 영양가도 높고 먹기도 편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스펙터클과 스타, 그런 조건조차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였을 텐데, 그걸 최소한의 접점이라 생각하고 내가 의도한 나머지 부분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설득하고 싶진 않다.
그런 생각 때문인가, 확실히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사가 안 들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섯 명 대원들이 구분이 안 간다고도 하고.
단편영화와 비교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노력을 안 한 거는 아닌데 내가 생겨 먹은 게 이러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능동적으로 보면 그런 배려를 느낄 수가 있는데 관객들에겐 떠서 먹여 주는 게 너무나 익숙한가 보구나, 어떤 절망감 같은 걸 느낀다. 자막도 추가로 넣어주고 대사도 ‘줄줄줄’ 설명적인 것까지 많이 살린 데다 다른 사운드를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낮추면서 대사를 키웠는데 이해가 안 된다니,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의상도 고민이 많았다. 탐험복이 우주복 같지 않아서 디자인이 한정적이다. 딱 나와 있는 디자인 내에서 그나마 색을 조절해야 구별이 간다. 내 취향대로라면 대원들 의상도 전부 모노 톤으로 가고 싶었는데 정정훈 촬영감독이 "그러면 관객들이 구별 못한다. 색깔로 구별해줘야 한다"고 해서 그나마 빨강, 노랑, 검정으로 갔다. 여섯 명을 여섯 색깔로 입혀 놓으면 무슨 독수리 오형제 같지 않나.(웃음) 지금도 세 가지 색깔 대원들을 잡은 장면을 보면 무슨 텔레토비 같은데 전부 다르게 입었다면 이런 영화에 얼마나 생뚱맞았을까.
탐험대장 도형(송강호)과 민재(유지태)에게 똑같이 빨간색 의상을 입힌 건 둘이 유사 부자관계라는 설정 때문이었나?
도형, 민재, 성훈(윤제문) 셋이 빨간색이다. 도형과 민재를 같은 색으로 표현한 건 명백히 그런 의도가 있었다. 성훈은 그 구도에서 어차피 멀리 있으니까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봤고. 그런데 아뿔싸, 김선민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헷갈리는 거다.(웃음)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편집 기사가 헷갈리니 나도 당황했다.
그런데 왜 탐험대가 여섯인가? 다섯이나 일곱이면 안 되나?
처음 시나리오는 ‘독수리 오형제’에 입각해서 다섯 명으로 썼다. 근데 다섯 명으로 출발하면 클라이맥스에선 세 명밖에 안 남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끌고 가나 막막했다. 지금도 투 샷 다음에 스리 샷 나오고 다시 포 샷, 그리고 투 샷 이렇게 가는데 다섯이었으면 그 조합이 더 적을 테니까. 또, 일곱은 너무 많았다. 일곱으로 가면 도형과 민재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2대 1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초반에 이해준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남극의 자연 현상 중 어떤 게 인격적인 게 될까 고민을 했다. 동상, 화이트아웃(온 세상이 아득한 빛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백시 현상),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남극의 겨울 폭풍), 크레바스(‘악마의 틈새’라 불리는 빙하 표면의 균열) 등이 나오더라. 그것에 대입해 하나씩 사고를 당하는 게 어떨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생각했다.
[[0]]그들은 모두 각자의 도달 불능점을 향해 탐험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것을 남성적인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섯 가지 유형의 남자가 필요했겠다.
동사무소 공무원 출신 대원 재경(최덕문)은 소시민적인 욕망이 가장 큰 인물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집착하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약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최초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분란을 일으키는 악역 성훈은 겉으론 의리를 내세우지만 사실 어떨 때 보면 마초의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훈은 재경을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그게 동료애 때문만이 아니라 한편으론 두렵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거다. 비겁한 남자 캐릭터다. 식사 담당 근찬(김경익)은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이 연기한 수연 같은 순박한 희생자다.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대장에게 반항하거나 상황을 뒤엎을 순 없다. 권위에 순응하는 남자 캐릭터였다. 부대장 영민(박희순)은 콤플렉스가 많은 남자다. 대장에 대한 2인자 콤플렉스와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눈이 나쁘고 체력이 약해서 더 지지 않으려고 탐험가가 됐다. 도형과는 달리 탐험 그 자체보다는 탐험으로 얻어지는 크레딧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편집 단계에서 이상 네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을 생략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중요한 캐릭터는 도형과 민재다. 그들의 도달 불능점은 뭔가?
민재는 도달 불능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진짜 막내, 아직 남자가 되지 않은 소년이다. <플래툰>의 찰리 신 캐릭터처럼 전쟁 자체는 모르고 전쟁의 추상적인 면만 아는 캐릭터다. 반면 도형은 전쟁 자체인 사람이다. 도달 불능점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강한 게 아니라 어쩌면 이 사람 자체가 ‘인간 도달 불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는 <주먹이 운다>의 류승완 감독이 좋아한 설정인데, 도형이 애 죽고 이혼당하는 데 불치병까지 걸려서 죽으러 남극에 왔다, 이런 설정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너무 심하다 싶어 다소 객관적으로 그린 거다. 도형은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도달 불능점에 간다고 해서 어떤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소시민적인 욕망도 명예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지점에 가야 한다. 그게 광기다. 광기라는 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광기가 아니다. 도형이 거기 가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둥 여기서 평생 살아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다른 대원들을 설득하는데, 이런 게 광기다.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선 옳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거.
도형은 왜 미쳐갈까? 남극 때문인가?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초반에 발견된 영국 탐험대의 일기가 미칠 것을 예상했으니까 미친 건가? 개연성이 부족한 거 아닌가?
일기는 설정상 드라마의 실체로 유도하는 ‘매거핀’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광기를 그린 원형적인 이야기라 관객에게 따라갈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시작부터 미쳐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 도형은 크레바스의 조그만 구멍을 쳐다보다가 나중엔 빙벽 내부로 들어가서 큰 구멍을 쳐다본다. 남극이 인체 같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도형이 자궁 속으로 들어간 듯한 의도로 연출했다. <모비딕>에서 노선장 에이허브가 모비딕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폭풍 속으로>에서 파도타기 선수 패트릭 스웨이지가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도형이 남극 속으로 사라져가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원형적인 주제는 어떤 스토리냐에 따라 본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전형적인 상투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남극일기>가 전형적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전혀. 전형적이라면 투자가 빨리 됐겠지.(웃음) 전형적으로 안 가려고 온갖 몸부림을 한 것이 이 영화다. 난 이 영화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충무로가 상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성의 파시즘 같은 걸 느꼈다. 이런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을 하느라 거의 인종차별주의에 가까운 핍박을 받았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이 상업성을 보장해 준다는 거지? 그냥 관객의 무의식에 익숙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찍는다면 뭐하러 작가와 감독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고민을 했다. 난 그런 전형성에 맞춰가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리뷰는 영화가 미스터리라고 해놓고 촘촘하지 않다고 지적하던데, 나는 이 영화를 미스터리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라는 것도 기본적인 틀이 있을 뿐이지 어떤 규칙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난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단초를 던져주면서 온 것 같다.
[[1]]단초를 던진 다음에 적절한 시점에서 결론을 내주고 보상을 줘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타지 않은 건가?
솔직히 난 그 리듬을 잘 모른다. 물론 흉내낼 순 있겠지. 하지만 체화되지 않은 걸 사용하면 ‘구경하는 연출’이 된다. 신인감독 영화들에서 그걸 많이 보면서 난 안타를 일곱 개, 여덟 개 맞아도 승리 투수가 되자는 마음으로 찍었다. 엄청난 스펙터클도 중요하지만 난 표정의 스펙터클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부담이 되는 규모의 영화가 됐지만, 이 시나리오를 조그만 고치면 연극으로도 올릴 있는 소극이라고 생각한다.
감독한테 따질 건 아니지만, 그럼 뭐 하러 70억 원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드나?
감독한테 따져도 된다.(웃음) 왜냐하면 그건 감독으로서 또 다른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를 몇 천 명의 관객에게 보여 주는 작은 연극으로 만들기보다는 관객에게 볼거리도 주면서 이런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한국영화가 도전하지 않은 어떤 영역에 일천한 신인감독이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거, 그게 나의 도달 불능점이었다. 이 영화에는 단 한 컷도 내가 동의하지 않은 컷이 없다. 차승재 대표나 송강호 선배가 뭐라 해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 지켜왔다는 거에 자부심을 느낀다.
<남극일기>는 이기심과 탐욕이 부른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는 영화다. 그러면서 막상 당신은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이 영화를 완성한 건가? 뭔가 역설적이다.
재미있는 시각이다.(웃음) <남극일기>는 도달 불능점이 거대한 환상이라고 말하는 영화지만 <남극일기> 뿐 아니라 모든 야심적인 목표를 가진 영화들은 다 그런 거대한 환상을 좇았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 영화 <살인의 추억>도 그렇고. 그런 거대한 환상이 의미가 있다면 관객들이 반응을 해주면서 영화 자체가 생명력을 가질 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극일기>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건 영화의 운명이다.
당신의 단편영화 <소년기>는 부자관계에 있어 ‘반역 모티프'를 공포 장르로 풀어냈는데 <남극일기>도 그런 면이 있다.
실제의 나는 닭살스러울 정도로 단란한 가정에서 컸다. 일찍 결혼해서 딸애가 있고 내 여동생도 일찍 결혼해서 애들 쑥쑥 낳고 잘산다.(웃음) 사람들이 <소년기>를 보고 자서전적인 얘기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주인공이 뚱뚱해서 그렇지 내가 할아버지 죽이고 그런 거 전혀 없다.(웃음) 다만 그런 얘기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나한테는 기존의 가치나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거의 꼴찌하고 지진아 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난 우등생들이 쉽게 적응하는 규범들을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군대 가서 줄 맞춰 총검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게 영화에선 반역의 모티프로 드러나는 거 같다.
<남극일기>는 민재의 시선으로 시작해 민재의 시선으로 끝난다. 하지만 중간중간 민재의 시선뿐 아니라 탐험대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 남극을 인격화한 전지적인 시점이 혼재한다.
내 모든 단편영화의 시점은 1인칭이었다. 하지만 <남극일기>는 1인칭과 3인칭이 혼재한다. 그게 또 나한테는 도전이었다. 위에서 바라보는 명백히 전지적인 시점이 있는가 하면, 텐트 밖에서 창문을 통해 가까이 지켜보는 것 같은 3인칭 시점도 있다. 그런 시점들이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점이 일관성이 있어야 된다는 걸 누가 정한 건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남극이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든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점을 섞어 썼다. 혼동된 시점을 통해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같은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이해한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체험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혼동스럽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세계에 빠졌다 나온 듯한 쾌감이 있다. 관객에게 그런 체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점을 정리해 편하게 이해시키기보다는 다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시점을 섞었다.
중간중간 자연스런 편집 흐름에서 이탈한 기법들이 등장한다.
김선민 편집 기사가 <색즉시공>부터 <살인의 추억>까지 다양한 영화를 작업한 사람이다. 그중에서 <남극일기>가 가장 독특하다고 하더라. 처음 김선민 기사에게 보여 줬던 영화가 <인썸니아>와 <레퀴엠>이었다. 일견 정적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점프 컷이나 강렬한 인터 컷이 섞여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더 과해진다. 난 <남극일기> 이야기가 원형적이고 클래식하다 하여 편집을 정공법으로 가기보다는 모던하게 해보고 싶었다. 초반에는 약간씩 점프 컷이 들어가다 나중엔 과격한 인터 컷이나 감각적인 장면 전환을 많이 썼다. 영화 후반, 민재가 영국 탐험대의 시체를 보다 영민한테 가는 장면에선 피 흘리는 장면이 인터 컷으로 짧게 들어간다. 그걸 편집실에서 보는데 스탭 중 한 명이 녹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구별 못하는데 오죽했겠나.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렵다고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편집이 관객의 무의식에 잔상을 남겨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한 효과를 내길 바랐다. 그게 영화의 목표였고, 내가 원하는 리듬이었다.
[[2]]불쑥 끼어 드는 하얀 손이나 붉은 피 같은 인터 컷은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서였나?
흰 눈에 피가 뿌려지면서 쫘악 스며드는 느낌, 그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최초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 장면이 한 컷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다. 그 컷에 대해 ‘저거 뭐야 도대체?’ ‘괜히 무섭게 하려고 피 뿌리는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난 그 컷 하나가 80년 전 영국 탐험대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남극에 흘렸던 피, 그리고 지금의 탐험대가 앞으로 남극에 흘리게 될 피의 이미지를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두 가지 기능 모두를 통해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은 일관된 거다. 남극이 도형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악마의 손이라면 생뚱맞지만 도형한테는 아들의 손이고 남극의 손이다. 그래서 관객에게만 보이고 대원들한테는 안 보이는 거다.
그 손에 대해 관객들이 갖는 배신감이 있다. 예를 들어 <알포인트>에서는 희미한 귀신의 존재가 나중에 여자로 밝혀지는데, <남극일기>에선 결국 안 밝혀진다.
난 <알포인트>에서 그게 밝혀지는 장면이 제일 싫었다.(웃음)
정말 모든 컷을 원하는 대로 찍고 붙인 것 같다. 얼마나 만족하나?
배우 연기에 대해선 90%, 영화를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다는 면에선 60%.
나머지 40%는 뭔가?
더 영화적인 언어로 설득하고 싶었다. 남극을 캐릭터로 체험시키기 위해 여섯 단계로 구상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처음에는 평온한 설원의 모습으로 가다가 나중에 도달 불능점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르는 그런 어마어마한 낭떠러지 같은 걸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작 여건상 불가능했다. 그런 부분이 목표치까지 갔다면 심리 체험극 느낌을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왕 거대한 환상이라면 더 무시무시한 거대한 환상을 해볼 수 있는 건데 이 제작비와 여건에선 이 정도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단한 성과다. 특히 CG가 뛰어났다.
내 머릿속에 있는 비전을 시각 효과 회사 EON이 최선을 다해 백업해줬다. 도달 불능점 밤 장면은 모두 양수리에서 소금 뿌리고 찍었는데 그 정도로 나온 게 대단하다. 합성 장면 중엔 뉴질랜드, 한강 고수부지 스케이트장, 강원도 피닉스 파크, 양수리 세트에서 나눠 찍은 후 붙인 게 있다. 미친 짓이지.(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면 표가 나지 않는다. EON에겐 그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이다. 어제 <반지의 제왕>을 했던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의 관계자가 왔다. EON에게 몇 명이 했나고 물어봐서 8명이 했다고 하니까 기겁을 하더란다. 그러면서 웨타로 오라고 제의를 했단다. 정성진 팀장이 그런 제의받고도 안 가겠다고 했다. <남극일기>가 그런 예술가로서의 투지를 한국영화에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기쁘면서 고맙다.
어떤 면에서 <남극일기>는 모든 스탭들에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 같다.
4, 5년 전 35mm 단편영화 찍고 2년 전 DV 작업을 했던 나로선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 한국영화 퀄리티의 상당 부분이 스탭들의 엄청난 노력과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정말 뛰어나다. 난 그런 노력이 참 신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훈 촬영감독도 <친절한 금자씨> 촬영 일정 때문에 마지막 5% 정도를 못 찍고 떠났다. 감독으로서 서운함이 적지 않았지만 후반 작업하면서 보여 준 열정과 집요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디지털 색보정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 영화가 주는 히스테리컬한 느낌이 잘살았다.
드디어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장편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더라. 정말 외로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든든한 마음으로 작업한 기간이 길었다. 다 스탭들 덕이다. 앞으로도 나보다 뛰어난 스탭, 그게 확실히 ‘뜬’ 스탭이라기보다는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EON이나 황인준 미술감독처럼 잠재력과 열정이 큰 스탭들과 함께 영화를 하고 싶다.
사진 김춘호 기자
한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