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국영화에서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다룬 이야기는 많다. 별로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대개 남자들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 여자는 그 남자들만의 교환 경제에 편입될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의 온갖 갈등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은 남과 여의 일대일의 결합이라는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는 서사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빈집의 포스터는, 그리고 빈집의 결말은 언뜻 보기에 일대이의 공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일대이인가?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빈집을 돌아다니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 남자는 빈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할 뿐, 그 밖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그 남자는 남편에게 매맞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이 빈집을 돌아다닌다. 나중에 경찰의 신고로 남자는 감옥에 갇히고 여자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감옥 속에서 남자는 "유령되기 연습"을 통해(어떻게 하는가하면, 자신의 손바닥에 눈동자를 그리는 것이다. 곧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교도소 간수의 혹독하고도 일방적인 공격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을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출소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간 남자는 여자와 함께, 그리고 그 남편과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의 포옹이 이루어지는 체중계 위의 눈금은 0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장자로부터의 인용이 마지막 자막으로 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실로 유령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들은 그를 어떤 서늘한 기운으로 느끼긴 하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 이 남자를 가리켜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빈집을 들르는 이 남자는 자체로는 현전하지 않는, 그러나 동시에 그 빈집의 '소유주'들에게 있어서는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처치곤란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 유령에게 우리가 해야 할 공정한 태도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어떤 평자는 데리다를 따라서 유령의 존재론에 이어 환대의 윤리학이라는 테마를 섣불리 끄집어 내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교훈으로 '무조건적이고 유보없는' 환대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약간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어떤 '노마드적 삶'의 양식을 자본주의적 대안으로던져주고 있다고 보기도 좀 무리가 따른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 남자라는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해 매맞는 여자와 남편의 결혼생활은 다시금 어떤 질서와 안정을 되찾는 것 같다. 곧 남자는 이 둘 모두에게 있어서 현실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환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때 그 남자라는 유령적 환영을 대하는 남편과 여자의 태도는 같지 않지만, 최소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적인데, 이들 모두 남자의 유령되기 연습처럼 손바닥에 그려진 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손등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때 현실적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맹점, 또는 상상적 착각의 필연성의 문제는 자연히 뒤따라 나오는 것이겠다. <말>지에 실린 정성일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영화를 보고나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아쉬움을 거의 흡사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인용해본다.

"그는 점점 더 세상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각자의 구원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기덕은 이제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 자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이제 무능력에서 무관심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고 그가 이제 순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견해에 반대하는 까닭이다. 그는 주관적 목적론의 그 어떤 전도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슬프다. 김기덕은 그 싸움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현실적인 좋은 세상의 환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공동의 객관적 착각의 공존을 위해, 더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관적 착각의 왕국에로 이끌렸다."
"공동의 객관적 착각", 이 말들에 방점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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