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신기한 듯 한참을 들여다보던 참이다.
나이는 12세이지만 기훈이의 정신연령은 6세이다.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데다 간질 증세도 있어 병원에 실려갈 때도 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이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는커녕 정상적으로 교실에 앉아 있기도 어렵다. 하지만 올해 기훈이는 달라졌다. 난생 처음 학급회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30명을 이끄는 것도 그의 몫이다. 친구들은 “표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잘해요”라며 기훈이를 치켜세운다.
담임인 정송자(鄭松子·45) 교사는 당시를 돌이키며 “장애아를 회장으로 뽑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는 건가, 제가 기훈이를 많이 챙기니까 괜히 반항하는 건가 싶었죠. 아이들이 ‘우리가 잘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정 교사가 기훈이를 맡게 된 올 3월. 첫 시간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이론과 실제사례 등을 엮은 장애통합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가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친구를 때리는 기훈이의 행동에 놀라는 학생들이 이해심을 갖도록 수시로 다독였다. 장애를 가졌던 위인(偉人)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토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정 교사 스스로는 ‘학기 시작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발작도 잦아진다’는 기훈이 부모의 말을 듣고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학교로 데려오는 일을 한 달간 했다. 수업시간에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바로 옆에 앉혀놓고 손을 놓지 않으며 강의를 했다. 기훈이만 덧셈·뺄셈·문장 베껴쓰기 정도의 단순 특수학습을 시키는 것은 물론, 음악·미술·체육시간에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필요로 했다.
가끔 과격한 행동을 할 때는 껴안고 달래느라 녹초가 되기도 했다. 며칠 만에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작전’을 짠 것이다.
기훈이의 발작은 3월에 네 번, 4월에 두 번으로 줄었다. 5월에는 한 번도 없었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정 교사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다. “특수학생만 가르치는 것보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자칫 다른 아이들을 ‘들러리’로 만들 수가 있거든요. 누가 다른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공존(共存)할 수 있게 하려면, 모두에게 더 신경을 써줘야죠. 이젠 부모님들도 우리 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세요.”
교직 경력 25년인 정 교사는 지난 2000년 야간대학원에 2년 반을 다니며 특수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바 있다. 정 교사는 “장애아가 부모를 가려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들도 수많은 단계의 장애아를 만나게 된다”며 “제대로 공부해야 장애아와 비장애아 모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데 편하다’며 거의 매일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정송자 교사는 “요즘 똑똑한 젊은이들이 교직을 많이 택한다는데 교사를 ‘안정적으로 월급 받는 직장인’쯤으로 생각한다는 게 섭섭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지식을 가르치는 일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 애정과 헌신 같은 게 없다면, 해나갈 수 없는 일이죠.” 정 교사는 “나는 장애아를 돌보고 가르치느라 고생하는 세상의 수많은 선생님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 분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