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류 수집에 열을 올렸던 유명 작가로 나보코프가 있었던가.   

일제시대,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생물학, 그 중에서도 나비 연구에 힘을 쏟아 조선의 인시류(나비, 나방) 연구에서 세계적 반열에 오른 학자 석주명.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는 알아도(내가 사는 부산 동래에는 기념관 및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석주명의 이름은, 솔직히 책을 보기 전까지는 뉘신지? 라는 정도였다.  

낙제 점수를 받고서 대오각성, 촌음을 아껴가며 연구에 또 연구를 거듭하고, 남들이 대충대충 수집한 나비로 학명 올리기에 분주할 때 직접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수만 개체의 표본을 수집해서 기성 학설을 뒤엎고 새 방법론을 만들어낸 업적은 정말 대단하다.

미쳐야 미친다 : 무슨 일이든 일만 시간 정도를 투자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남들을 뛰어넘는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모습은 가장 평범하지만, 그러기에 아무나 하기 힘든 것. (최근에 본 [아웃라이어]에서도 일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요즘 꾸준한 노력이 부족하니 이런 가르침을 주는구나 하고.)


   

 

 

 

내 고민거리 중 하나가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인데 반성이 많이 된다. (그러고 보니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의 실제 주인공도 곤충수집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던 기억이 난다. 풍뎅이였나?)  



 

 

(정신세계사에서 나왔었는데, 요새는 제목이 약간 변경되어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다.)  

위대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위대한 것이다 : 이런 전도양양한 세계적 곤충학자였던 그는 동란의 와중에 길 가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만다. 학자로서 기반을 다 닦아 놓고 막 펼치고 집대성하고... 할 무렵에 비명횡사. 데리다였던가. 60년쯤 연구를 하다 보면 대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던 사람이? 

헌데 엄청난 연구를 하다보니 가족과의 불화로 결국 이혼에까지 이른 모습을 보면 또 저렇게 되서는 안 될텐데, 요새 누가 저런 남편을 이쁘다고 봐주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일진데, 명예와 긍지를 소중히 여겼던 천상 조선 사람인 그는 죽어서도 학문의 세계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택했다면(명예욕의 충족)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 자본의 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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