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 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 조금만 잘못해도 금세 물이 스며드는 그런 돛단배 말이오. 그 배의 선장은 양심 없는 자로, 생각하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항해 비용을 절감할까 하는 것뿐이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오? 날마다 승무원들 중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골라내어 처단하는 거요. 어떤 이들이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지 아시오? 잡놈이나 게으름뱅이나 바보천치일 것 같소? 천만에. 바다로 내던져지는 이들은 선장에게 이미 봉사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오...... 한 번 써먹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지. 단물 다 빨린 것들한테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었어? 자, 사정없이 쓸어내버리자고, 여엉차! 그들은 난간 위로 내던져지고, 바다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삼켜버린다오. 그렇소, 기자 양반, 그런 식으로 날마다 수없이 많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다오. 처벌도 받지 않는 살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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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 <비밀 노트>를 읽는 동안, 경악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괴롭고 힘든 것에 익숙해진다며 서로를, 스스로를 학대하는 쌍둥이 모습은 지극히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졌고, 그러한 작가의 메마른 시선은, 어린 그들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이해되지 않음도 아니건만, 일말의 동정심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소년들은, 좋고 싫다는 기본적인 감정마저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은 채 팍팍한 세상을 견뎌나갈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그건 세상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오로지 자신들의 내부만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편을 독살한 할머니나 수간을 하는 소녀, 변태성욕자인 장교, 자신들의 몸을 탐하는 하녀 등을 비난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대할 수 있으며, 자신들만의 판단으로 타인을 벌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이 이들을 그렇게까지 내몰았다고 말하기는, 그러나 쉽지 않다. 인간에게 이들이 보여주는 원초적인 폭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하게 된다.

. <타인의 증거>에서 루카스는 혼자다. 그는 클라우스라는 형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으므로, 형제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 루카스가 제시하는 증거는 그가 쓴 비밀 노트 뿐이다. 루카스의 주변 인물들도, 독자도, 클라우스는 루카스의 또 다른 이름, 즉 환상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데 인간의 존재는 증거나 타인의 시선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일까.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클라라는 죽은 남편에게, 그리고 마티아스는 루카스에게 매달린다. 마치 자신의 존재 여부가 상대방에게 달려있다는 듯. 결국 삶이란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등장 인물들이 처절하게 주장하는 것 같지만, 어쩐지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 드러나는 진실, 드디어 만난 형제. 형제의 삶은 <비밀 노트>나 <타인의 증거>에서 보여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잔혹하지는 못했고, 세상을 등질 수도 없었다. 5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지난한 삶의 흔적과 외로움이다. 형제를 찾음으로써 루카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절대적인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지만, 그의 바람은 클라우스의 부정에 의해 소멸된다. 그리고 죽음. <50년 간의 고독>에서 쌍둥이 형제는 전편들보다 훨씬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건 초췌한 삶의 외양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일 뿐, 황량한 그들의 내면에서 인간미를 찾지는 못하겠다. 바람부는, 텅 비고 스산한 거리에 서 있는, 그런 기분이다.

. 한 권을 덮으면 바로 다음 권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엇갈리는 진술과 모순으로 가득찬 이야기에 당혹해 하면서, 점점 증폭되는 쌍둥이에 관한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다. 세 편을 연달아 읽으면서, 한참을 달린 것 마냥 숨이 가빴다. 그러나 세 편의 작품은 각각 2~3년의 시차를 두고 출판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세 편을 각각의 작품대로 따로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쌍둥이 형제의 존재가 사실인가 아닌가와 관계없이 각 작품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이다.

다섯. 원제는 <커다란 노트> <증거> <세 번째 거짓말>이라고 한다. 역자가 옮긴 제목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 간의 고독>은 작품의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는 한다. 그러나 작가의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와 그로 인해 형성된 분위기에 비교하자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생각이다.

여섯. 이만큼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표지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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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렐라 2004-11-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나머지 원본의 표지들도 찾아봤는데...그것도 좋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건 좀 심플한데 그쪽은 어두운 색조라고 할까...작품 전체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더라고요^^

urblue 2004-11-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시체렐라님.
원본 표지들은 못 봤는데, 아무렴 아동용 표지로 만들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
 

최후의 만찬

로버트 랭던과 레이 티비 경은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여자라고 한다.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다. 예수와 이 여자는 서로 반대되는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여자의 오른쪽에서 베드로가 여자를 위협하고 있다.

좀 더 분명하고 큰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확실히 저 사람은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좀 더 여성스러운 얼굴과 몸짓을 보여준다. 그러나...확인 불가다. 

작가가 꽤나 꼼꼼하게 작품을 구상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이미 누군가가 주장한 얘기인가. 프리메이슨이나 성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주장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다. 흠... 

 


레드 칸나, 핑크 스위트 피, 조지아 오키프

장미가 여성의 성을 나타내는 원시적인 상징이며 활짝 핀 모양은 외음부를 닮았다면서 예로 든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상당히 관능적이고 강렬하다.

 

영국 템플 거리의 템플 교회

성전 기사단이 세운, 솔로몬의 신전을 기려 이름을 붙인 교회. 교회 지붕이 둥글다고 하는데 사진을 찾지 못했다.

 

템플 교회의 내부

누워 있는 기사들의 석상이 보인다. 모든 것이, 책에 묘사된 그대로라, 찾아보면서 꽤나 재미있었다. 아래는 각 석상의 스케치다. 모양이 모두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웨스트민스터는 성당이나 교회가 아니라 왕가의 사유재산이란다. 영국 황실의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고, 삼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기에 묻혀 있다.

 

여기도 엄청나게 거대하단다.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미로같은 복도에서 길을 잃고 마는, '관광객의 덫'이라고.  

 

 

아이작 뉴턴의 묘, 웨스트민스터 사원

책 더미에 몸을 기대고 있는 뉴턴과 날개를 달고 두루마리를 든 두명의 소년.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피라미드에 박힌 구.

 

챕터 하우스, 웨스트민스터 사원

로버트 랭던이 마지막 열쇠를 풀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장소. 스테인드 글라스와 천장의 장식이 근사하다.

 

로슬린 예배당, 영국 에든버러

이 예배당은 고대 미트라교 사원 터에, 정확히 남북 자오선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유대교, 기독교, 이집트, 프리메이슨, 이교도의 전통에서 비롯된 여러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잘 모르는 내 눈에도, 기독교 교회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을 듯한 조각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예전부터 이곳에 성배가 보관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로슬린 예배당의 기둥

로버트 랭던은 이 기둥이 솔로몬 신전에 있던 기둥의 복제품이라고 말하는데, 어쨌거나 이 기둥은 꽤 유명한 모양이다. 로슬린을 안내하는 사이트에는 죄다 기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로슬린 예배당의 천장

별과 행성을 하나하나 조각해 넣었다. 천장 전체에 이런 별과 여러 가지의 상징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예배당 하나를 짓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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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7-1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빈치 코드를 읽으면서 한 번쯤 꼭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들인데 덕분에 잘 봤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 있었다. 흥미진진한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실재하는 여러 유명 장소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라 실제로 그런지 확인하고픈 욕구가 솟았다. 그러나 언제쯤 프랑스와 영국을 가 보게 될까. 

  

르부르 박물관의 야경

저 피라미드는 미테랑 전 대통의 주문에 따라 666장의 유리로 만들어졌단다. 책에서는 프랑스인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확실히 뒷편의 고풍스런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피라미드 아래의 로비

로버트 랭던은 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왔을까.

 


 

 

 

 

 

 

 

 

 

 

 

르부르 박물관 단면도

전체 길이가 450m나 된다고 하니 굉장하달 수 밖에. 모나리자가 있는 곳이 살 데 제타. 소니에르의 시체는 살 데 제타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으니 16~17세기 이탈리아 그림들이 전시된 곳 쯤이겠다. 책에서는 살 데 제타가 2층에 있다고 했는데, 루브르 안내 사이트에는 1층으로 되어 있다.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

소니에르는 자신의 몸 주위로 원을 그리고 이 그림처럼 누워있었다.

1:1.618 이라는 황금 비율의 예가 몇 가지 나오는데 신기하다. 머리끝에서 바닥까지의 길이를  꼽에서 바닥까지의 길이로 나누면 1.618이라고 한다. 또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잰 길이로 나눈 것도 1.618 이란다. 내 몸을 직접 재보려고 했지만, 줄자가 없는 관계로 실패했다.

 

살 데 제타의 모나리자

가운데 유리로 덮인 게 모나리자이다. 저 유리 위에 소니에르가 불가시광선 펜으로 글을 남겼다. 

 

모나리자의 맞은편

책에서는 모나리자의 맞은편에 <암굴의 마돈나>가 걸려있다고 했는데, 루브르 박물관의 안내 사이트에서는 그 그림을 찾을 수 없다.

 

모나리자

여성과 남성의 결합이라... 왼쪽이 여자, 오른쪽은 남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다 빈치는 여성이 가진 본질을 아꼈기 때문에 왼쪽의 풍경을 낮게 그려서 왼쪽에서 보이는 모습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고.


 

암굴의 마돈나

로버트 랭던은 이 그림에서 마리아와 우리엘의 손짓이 위협적이라고 표현했다. 마리아가 보이지 않는 머리를 잡고 우리엘이 그것을 자르는 듯한 모습이라는 거다. 아래 그림과 비교해보면 좀 그렇게도 보인다.

 

암굴의 성모

확실히 마리아의 손가락이 좀 더 부드럽게 벌려져 있긴 하다. 번역에서는 <암굴의 마돈나>와 <암굴의 성모>로 달리 제목을 붙였는데, 원제는 같은 모양이다. Vergine delle rocce



생 쉴피스 교회

사일래스가 쐐기돌을 찾으려고 찾아간, 생 쉴피스 광장의 생 쉴피스 교회.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위한 고대 사원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좀 더 작은 교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크다. 내부에 정말로 로즈 라인(Rose Line)과 오벨리스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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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ergarden with sunflower

 


 

 

 

 

 

 

 

 

 

 

 

The sunflower

 

해바라기 하면 당장 떠오르는, 강렬한 고흐의 그것과 달리, 클림트의 해바라기는 창백하다. 열정적이지 않은 창백한 해바라기에 마음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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